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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정 Feb 23. 2022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곳

이규태 개인전 「순간의 기억」 전시 리뷰

평범한 풍경이 특별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날씨가 좋아 빛이 연출하는 풍경이 드라마틱해서 일수도 있고 또는 지금 함께 있는 사람과 보내고 있는 이 시간이 소중해서 하나의 장면으로 간직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규태 작가는 그런 순간들을 그림으로 그린다.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 이규태. 그래서 그런지 그의 그림은 영화 속의 한 장면 같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바라보는 시선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게 되기도 하고, 배경에 담긴 빛과 풍경은 작가가 담아내고 싶었던 어떤 순간의 정서를 전달한다. 수첩에 작게 그려진 낙서부터 최근에 새롭게 시도하게 된 대형 작업 그리고 미디어 작품까지 원화를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전시였다.



자로 사용할 수 있는 전시회 티켓. 두 가지 그림을 볼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꽤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모두 그가 직접 손으로 그린 작품으로 인스타에 올라온 사진과는 또 다른 원화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그림을 가까이서 보면 그림자로 표현된 곳에 여러 가지 색의 색연필이 섞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디테일이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현장감을 느끼게 한다. 마치 그곳에 그 시간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시간에 따라 변하는 햇빛의 온도와 색감의 표현이 인상 깊었다.


미디어 작품


이런 작가의 장점을 가장 극대화한 작품이 미디어 전시였다. 낮부터 밤이 되고 다시 아침이 되는 한 시골 풍경 속의 작은 움직임을 볼 수 있었던 애니메이션 작품이 2층에 전시되어있다. 습작으로 프레임 바이 프레임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나는 빠른 움직임보다 작고 느린 움직임을 구현한다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런지 잔잔하게 부는 바람에 이파리나 갈대가 은은하게 흔들리는 것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평일 낮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갤러리를 찾고 그의 그림 앞에서 한참을 머무는 것을 보면 아마도 작품에 담긴 정서가 와닿고 공감이 가기 때문인  같다. 초등학교 운동장이라던가, 도시의 야경이라던가, 등산을 하다가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처럼 우리 기억 속에 어떤 순간이나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보통은 상상의 범주 밖의 것을 목격했을 때 그게 중요한 소재가 되는 것 같습니다. 교실이라고 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칠판, 책상, 의자 같은 상상의 범주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닌 교실에 물이 쏟아진다거나 젖어있는 교실 바닥 같은, 삭막한 분위기에서 비치는 창문 밖 빛 그런 이미지들은 지금은 상상일 뿐이지만 현실에서는 좀 더 리얼한 상상의 범주 밖 현상들이 보이거든요. 그런 것들을 많이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 장면들을 목격하면 최대한 사진을 찍고 조금 더 극대화시켜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죠. 그러다 보니 노을이나 빛 같은 것들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규태
작가 인스타그램 @kokooma_


그림을 본다는 것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런 그림을 그리는 그 작가는 어떤 유년시절을 보냈을까? 나와 똑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그가 더 주목하게 되는 장면은 어떤 것일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나와 비슷하구나 혹은 나는 놓치고 지나갔는데 이런 면이 있었구나 하는 자극을 준다. 이번 전시는 전자와 후자를 모두 느낄 수 있는 전시였다.


처음에는 작품의 색감이 눈에 들어왔고, 그다음에는 작은 그림 속에 작가가 놓치지 않고 표현한 디테일함에 놀랐다. 그리고 전시가 끝나갈 때쯤에는 그가 너무 부러웠다. 나도 너무 표현하고 싶었던 순간과 비슷한 장면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너무 잘 전달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나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세상을 관찰하고 그것을 화폭에 그리는 작업에 쏟았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다 알고 있는데도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 많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것이 잘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절실히 느끼고 있는 요즘, 나는 그에게 질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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