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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설 Nov 27. 2023

누구도 정신질환에서 자유롭지 않다

자살시도자를 만나며 (2)

저는 인종, 성별, 나이, 종교, 질환 등에 따라 부정적으로 대우하는 차별에 반대합니다. 하지만 차별에 반대하는 것과 내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뿌리 깊은 편견을 몰아내는 것은 다른 영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살시도자를 만나는 일은 내가 암묵적인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알게 했습니다.


자살시도자의 이야기는 내가 지금 건강한 이유 중 많은 부분이 운에 달려 있었음을 일러 주었습니다. 우연히 학대하지 않는 부모를 만났고, 우연히 부하 직원을 괴롭히는 상사를 만나지 않았고, 우연히 큰 질병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연히 얻었던 것들을 당연하다고(의식조차 못하며) 생각했지요.


정신질환에는 경제적인 요인, 대인관계의 요인, 학대의 경험, 음주 문제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합니다. 그리고 자살시도자 중 대부분은 이들을 심리적으로 취약하게 만드는 다양한 요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우연히 얻었던 것들이 당연하다는 착각은 자살시도자가 자살행위에 이른 이유가 '개인적이고 특별한 요인' 때문이라는 암묵적인 편견을 갖게 했습니다. 머리로는 누구도 정신질환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내적으로는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자살시도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를 심리적으로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들이 '특별하고 개인적'이라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정신질환을 나도 경험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도리어 정신질환을 가진 이들은 나와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지요.


하지만 본질적으로 우리는 같은 존재입니다. 적절한 상황과 조건이 주어지기만 한다면 누구나 그리고 언제든지 아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구도 정신질환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인식은 정신질환자 그리고 자살시도자에게 나였어도 그렇게 느꼈을 것 같아요 정말 힘들었겠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내가 낫게 생각하는 사람과 같게 여겨지는 것을 좋아하고, 낮게 생각하는 사람과는 비교당하는 것을 싫어하지요.


그러면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 길이 맞는 길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다르지 않다고 인식하는 것, 나도 차별하는 존재라는 인식, 내가 당신이었다면 나도 그랬을 것 같아요라고 말할 수 있는 여지들이 모일 때 우리가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이 모일 때 우리가 정신질환자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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