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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설 Jan 25. 2024

자살의 충격에서 살아남기

자살생존자, 자살사별자를 돕는 방법

무사태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 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나쓰메 소세키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자살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 그리고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그리고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글을 전합니다.


소중한 사람을 자살로 잃어버린 이후 혼란스러운 건 나만이 아니었습니다. 가까운 지인과 가족도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쩔 줄 몰라 했으며 저는 괜찮은 척을 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엔 정말로 내가 괜찮다고 믿기도 했지요.


그녀가 괴롭힘을 당했던 직장에서 그녀의 죽음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는 화가 났습니다. 가해자가 직장에서 징계받았다는 소식은 반가웠지만, 징계 수준이 그녀가 경험했던 고통에 비해 한없이 작았기에(예상했지만) 냉소적일 수밖에 없었지요.      


자살을 경험한 이후 나를 힘들게 했던 부분 중 하나는 섣부른 위로였습니다. 내게 괜찮아질 거라고, 그녀가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고, 시간이 약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의 의도와 마음은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를 아끼는 그들의 의도와 마음을 알았기에 기꺼이 참을 수 있었지요.


저는 이제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 고통 속에 있는 이들에게 섣부른 위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요.   

   

그리고 두 번째는, 스스로 만든 낙인이었습니다. 자살생존자 또는 자살사별자는 스스로 내리는 낙인으로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살을 경험했단 사실은 암묵적으로 숨겨야 하는 이야기였고, 마치 그 사람이 내 인생에 없었던 사람처럼 주위 사람을 대해야 했습니다. 나는 누군가를 지키지 못한 사람이었고, 자살이라는 끔찍한 일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 내리는 낙인은 저를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몰고 갔습니다.    

 

※ 자살사별자를 대하는 지침

1. 우리 모두는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느끼는 슬픔도 저마다 다르다.

2. 사별을 극복하는 데는 정해진 방법이 없다.

3. 사별한 사람에게 어떻게 감정을 관리해야 하는지 말하지 말라. 당신이 사별자인 경우,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좋은 의도에서 하는 말이니 참으라

4. 자살의 상실감으로 인한 고통은 고인과 친인척 관계가 아닌 사람들(예: 친구와 동료)도 심하게 느낄 수 있다.

5. 슬픈 감정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울 수도 있고, 평온한 순간에도 나타날 수 있다.

6. 사망한 지 몇 주, 몇 개월 후에 슬픔의 강도가 어느 정도 일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유일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슬픔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7. 분노에서 충격, 죄책감, 수치심, 거부감, 두려움, 외로움, 속박감 및 낙인까지 다양한 감정과 느낌이 들 수 있다.

8. 슬픔으로 인해 땀, 현기증, 두통 등 신체에 이상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9. 사별자는 우울증, 불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자살 생각을 나타내는 등 정신건강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10. 어떤 사람들은 고통을 겪는 와중에도 사랑하는 사람이 이제 더 이상 고통 받지 않을 것이며, 생을 끝내기로 한 것은 그들의 선택이니 자살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도 한다.    

로리 오코너, 『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 』, 14장 자살의 충격에서 살아남기


제가 사별을 겪으며 가장 위로가 되었던 건, 그저 묵묵히 곁을 내어주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기다렸고, 조언하지 않았고, 제 감정을 섣부르게 예측하지 않았습니다.


자살생존자에게, 그리고 이들을 염려하는 이들에게 이 매뉴얼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사별을 극복하는 과정은 저마다 다르며, 사별한 사람에게 조언하는 일을 삼가야 하고, 이들의 감정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자살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다정하게 대하기 위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당신이 기다려주고 염려해 주었기에 오늘 그래도 웃을 수 있었어요.


오늘도 누군가가 자살로 세상을 떠나고, 누군가는 이들을 그리워하며 세상에 남겨집니다. 비록 우리는 이미 잃어버린 이들을 되찾을 수는 없겠지만, 아직 남은 이들에게 우리의 연민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살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이 안녕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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