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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atsall Jan 07. 2022

사무실은 왜 더럽나

UI/UX 관점에서의 총무/오피스 매니징

사무실 문 앞에 쌓여있는 택배박스가 출입문의 절반가량 넘어올 만큼 쌓인 적이 있었다.

직원들은 박스를 치우지 않고, 좁아진 입구로 통행했다. 겨울이라 두꺼워진 옷 때문에 몸 부피가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박스에 옷이 조금 닿는 것을 감내했다. '도대체 누가, 언제쯤 저 박스를 치울까' 궁금해지기도 해서 지켜보다가... 그냥 내가 치웠다. 놀랍게도 박스들은 내 키만큼이나 쌓였지만 너무나도 가벼웠어서, 주머니에 손 넣은 채 몸으로 슬쩍 밀면 되는 정도였다. 즉, 아무도 시도조차 안 한 것이다.


비슷한 일은 사무실 냉장고에서도 일어난다.

냉장고를 사용하는 인원은 전체 사무실 직원 중 절반이 채 안된다. 소수의 인원이 냉장고 이용률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수의 냉장고 이용자들은 점점 냉장고를 쓰레기통으로 만들어간다. 누구보다도 냉장고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고 있지만, 냉장고를 더 잘 사용하기 위한 관리에는 관심이 없다.


'본인이 사용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능동적으로 관리하지 않고,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한다'라는 점에서 이 두 가지는 공통적이다. '인간은 왜 지구를 더럽히는가?!'와 같은 심오한 이슈와 연결 지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약간 다른 게, 한 개인이 지구 전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냉장고와 사무실 입구는 일상생활에서 너무나도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것들이니까.


사람들이 '원래 지저분하고 게으른 사람'이 아닐 것이라 가정하고,

그들은 왜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는지 고민해봤다.


R&R을 어지럽혀서는 안 돼

사무실을 정리하고, 공용 비품을 관리하는 것은 오피스 매니저(총무)의 역할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혹여나 내가 마음대로 물건을 옮기는 것이 오피스 매니저의 업무를 침해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오피스 매니저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을 수도 있고, 어찌 됐든 조직 내에 '정리정돈'을 전담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부로 그 업무를 굳이 나서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너는 너의 일을 하고, 나는 나의 일을 하는 것이 회사니까.


'치우는 사람' 낙인 이론

공동생활을 하다 보면 자주 겪게 되는 문제인데, 결국 치우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그게 내가 되기 싫을 뿐이다. 냉장고의 지분율을 한 명이 50% 이상 차지하고 있더라도, 어쨌든 공용이니까 괜히 나서서 관리를 열심히 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있다. 공용 비품을 선의로써 관리하기 시작하면, 모두가 행복해지겠지만, 계속 내가 관리하게 될 것이고, 모두가 그것에 익숙해질 테니까.


사무실에 살지만, 사무실이 집은 아니야

1주일 168시간 중 40시간을, 경우에 따라서는 52시간 혹은 그 이상을 사무실에서 지내고 있으면서도 '이곳은 내 공간이 아니야'라고 인식할 수도 있겠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의 절반 이상을 지내는 장소임에도 회사는 나의 것이 아니고, 마음이 불편한 장소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굉장히 많은 시간 귀속이 되는 장소임에도, 주인의식을 갖지 못하는 것이 사무실을 마구잡이로 사용하게끔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택배박스가 사무실에 쌓이지 않고, 

냉장고에 곰팡이가 피지 않고, 

여름에 초파리가 날리지 않을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봤다.

(경영지원팀이 오피스 매니징 업무를 덜어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하수 : 내가 한다.

그 더러운 꼴을 가장 못 참는 사람이 직접 나서는 방법이다. 보통 이 역할은 경영지원팀에게 할당된다. (경영지원팀 내에 오피스 매니저가 없는 상황이더라도!) 비용이 적게 들고 가장 간단한 방법이지만, 인생이 슬퍼지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공유 오피스에서 일반 임대 사무실로 옮겨간지 얼마 안 됐을 때, 회계감사 대응하던 와중에 여자화장실 변기 고치러 갔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중수 : 돈을 쓴다.

청소용역에 돈을 더 주고 청소 범위를 넓히던지, 공유 오피스로 이사를 가던지 하는 방법이다. 하수 -> 중수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그간 본인이 절감했던 비용(=오피스 매니징의 부가가치)이 얼마인지 깨닫게 된다. 얼핏 보면 굉장히 간단한 방법처럼 보이나, 작은 회사일수록 고정비 증감에 민감하고, 이것을 경영진에게 설득하는 과정 또한 제법 힘이 든다.


고수 : 행동 유도

앞서 사람들이 왜 능동적으로 사무실을 관리하지 않는지, 왜 귀찮아하는지에 대해 나름대로 원인 분석을 해봤다. 그 원인을 토대로 몇 가지 장치를 이용해 사람들의 능동성을 이끌어내게끔 유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가령 썩어가는 냉장고를 불시에 다 비워버리고, '냄새나는 음식, 먹다 남은 음식은 버려도 됩니다.'와 같은 문구를 붙여놓는 것은 사람들에게 '아 이 냉장고를 내 마음대로 관리해도 괜찮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 택배 박스를 쌓아놓는 공간에 바닥에 검정테이프로 일정 영역을 표시하기만 해도 '박스를 여기 안에 쌓아야 하는구나!'라는 무언의 규칙을 만들 수 있다.


경영지원/경영관리 부서는 회사의 규칙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규칙이 올바르게 작동하고,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용자들의 입장에서 규칙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어떠한 제도를 만드는 것은 UI/UX와 매우 유사한 점이 있다. 냉장고를 쓰던, 온도 체크 출입 명부를 쓰던, 차량 운행일지를 쓰던 똑같이 고려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이용자들이 이 업무를 편리하게 수행할 수 있을까'이고 그 과정에서 조금 심도 있게 파고들어 가면 디자인이나 행동경제학(넛지 같은) 개념들까지도 생각하게 된다. 독단적인 판단과 전통적인 방법을 그대로 따라가서는 모두가 불편해지기만 할 뿐이다.

잘 설계된 규칙은 회사 생활을 즐겁게 만든다.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고, 모두가 협력하는 느낌을 주게 한다. 사소할지언정 좋은 규칙들이 하나하나 쌓이면 결국 그게 HR에서 입이 닳도록 말하는 조직문화가 될 것이고, 좋은 규칙이 자리 잡은 회사는 그 자체로 훌륭한 직원 경험이 된다. 회사의 잔소리꾼이 되기보다는 스마트한 설계자가 되어보자. (물론 너무 힘들고 귀찮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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