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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찔레꽃 Apr 19. 2024

어떤 서문

‘수험생을 위한 시경’ 표지와 내용 일부. 

 


9번째 책 ‘수험생을 위한 시경’을 냈다. ‘시경’을 독학하면서 느꼈던 애로 사항을 수험생이라 지칭한 후학들이 조금 덜 느끼며 공부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낸 책이다(애로 사항의 구체적 내용은 서문에 나온다). 직전에 냈던 ‘수험생을 위한 서경’과 자매 격인 책이라 할 수 있다. 이하 책의 서문을 소개한다. 다소 지루한 글이라 읽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관심 있는 분 들만 읽으시길~ ^ ^


책을 내면서

‘시경(詩經)’ 해제를 겸하여  

                     

 ‘수험생을 위한 시경’을 펴낸다. ‘‘수험생을 위한 서경’이라고? 이런 저급한 제목의 책을 내다니…’라고 생각하실 분도 계시겠다. 경(經)을 홀대하는 데 대한 꾸짖음이겠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고, ‘시경’의 내용은 차치하고 그 이름조차 낯설어하는 이가 부지기수이니, 너무 타박하지는 마시기를!    

  

이 책을 손에 쥔 분들은 어느 정도 한문을 배운 분들이겠고, 한문으로 진로를 개척하려는 분들이라 생각된다. 한문으로 진로를 개척하려면 독해력이 관건이다. 그런데 ‘시경’은 한문으로 진로를 개척하려는 이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긴 하지만 독해력을 향상하는 데는 그다지 효험이 없는 책이다. 문법을 중시하지 않는 데다 생략된 표현이 많은 ‘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 이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기 위해 다소 경망한 이런 책을 내게 된 것이다.     


‘시경’ 학습 시 가장 어려운 점은 난자(難字)가 많아 귀찮을 정도로 한자를 많이 찾아봐야 한다는 점이다. 또 하나 어려운 점은 시작(詩作) 배경을 알기 어려워 감상이 용이치 않다는 점이다. ‘수험생을 위한 시경’은 이 점에 착안하여 난자를 원문 바로 옆에 적시하여 한자를 찾는데 과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바로 시를 읽고 해석할 수 있도록 편집했으며, 전통적으로 시경 주석과 시작 배경 해설로 높은 평가를 받아온 주자의 ‘시집전’과 ‘시서변설’의 내용을 각 시제(詩題) 아래 소개하여 시작 배경을 용이하게 파악하고 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시집전’은 ‘시경’에 관한 훈고(訓詁) 및 해설서이고, ‘시서변설’은 ‘모시’에 붙은 시 제작 배경 설명에 대한 비판서이다). 특별한 편집의 본 책을 통해 ‘시경’ 학습을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학습용 ‘시경’인데 왜 원문을 앞에 놓지 않고 번역문 뒤에 놓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다. 이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게 했다. 하나는 ‘시경’은 독해력 향상보다 감상이 우선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읽기 편한 번역문을 앞에 놓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고, 다른 하나는 원문 옆에 붙이는 난자를 고려할 때 원문을 앞세우기보다는 번역문을 앞세우는 것이 시각적으로 보기 좋아서였다.    

 

‘시경’은 시(노래) 모음이기에 음영(吟詠)을 해야 제맛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 소리 내어 읽어보면 확실히 눈으로만 보는 묵독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10번 이상은 소리 내어 읽기를 권해드린다. 시 감상의 왕도는 다다 많이 소리 내어 읽는 것이다. 굳이 더 하나 권한다면 익힌 본문을 손으로 직접 써보라는 것이다. 요즘처럼 타자가 필기 대용이 된 일상에서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이 또한 시 감상에 분명한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권해 드린다.     


‘시경’은 주로 황하와 위수 유역의 노래를 모은 것으로, 본래는 그냥 ‘시’로 불렸다. 경이란 명칭이 붙여진 것은 한초(漢初)이며 본격적으로 ‘시경’이란 이름으로 불린 것은 남송(南宋) 이후이다. ‘시경’ 시의 제작 시기는 대략 서주(西周) 초부 터 춘추(春秋) 시대 중엽까지로 본다.     

 

‘시경’의 시들은 본래 음악의 가사였던 바 채시(采詩), 진시(陳詩), 헌시(獻詩)의 과정을 거쳐 올라온 시들을 궁중의 악관(樂官)이 최종 정리했을 것으로 본다. 시의 작자는 민간인과 대부들이며 그 이름은 대부분 알려져 있지 않다. 사마천에 의하면 ‘시경’의 시는 본래 3천여 수였는데 공자의 손을 거쳐 현재와 같은 3백여 수의 시로 다듬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마천의 공자 산시설(刪詩說)은 오늘날 부정되고 있다. ‘춘추’의 기사에 오나라 공자인 계찰이 노나라를 방문했을 때 ‘시’ 연주를 감상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 차서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시경’의 내용과 큰 차이가 없는바 당시 공자의 나이는 8살밖에 안 되었기에 공자의 산시설은 근거가 희박한 것으로 본다. 아울러 공자가 ‘논어’에서 ‘시삼백(詩三百)’이란 말을 쓰고 있는데 이는 당시의 ‘시경’이 이 편수(篇數)로 이미 확정되어 통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이 또한 공자 산시설을 부정하는 하나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공자가 ‘시경’의 편수(編修)에 전혀 관계하지 않았다고는 보지 않는바 그가 ‘논어’에서 언급한 “내가 위나라로부터 노나라로 돌아온 뒤에야 아(雅)와 송(頌)이 각각 제자리를 얻었다”란 대목을 보면 그것이 비록 음악을 바로 잡았다는 내용이긴 하나 아와 송이 시경의 가사이기도 한 점을 생각하면 공자가 어떤 형태로든 시경의 편수(編修)에 관여했으리란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위에서 ‘시경’의 편수(編數)가 3백여 수라고 했는데, 정확하게는 311 수이며 이 중 6수는 제목만 있고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시경’의 내용은 풍(風), 아(雅), 송(頌)으로 나눌 수 있다. 풍은 토속적인 민요란 의미이며, 아는 중하(中夏)라 불리던 중원(中原) 일대에서 유행한 왕조에서 숭상하던 노래란 의미이다. 아는 소아(小雅)와 대아(大雅)로 구분되는데, 소아는 연회 때에 쓰인 것이고 대아는 조회 때 쓰인 것이다. 송은 제사를 지낼 때 신이나 조상을 송축하는 노래란 의미이다. 다소 무리는 있지만, 이 풍‧아‧송의 내용을 그 성질과 범위 풍격과 작자 음악 등에 기준하여 다시 한번 개괄적으로 묶으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시경’(조두현, 삼성당)의 허세욱 해제에서 인용).                    

 

<풍>

민간지정(民間之情) / 이항가요(里巷歌謠) / 풍교풍자(風敎諷刺) / 연가(戀歌) / 풍토시(風土詩) / 지방성 / 민요(民謠) / 가요문학

<아>

조정지사(朝廷之事) / 공경대부시(公卿大夫詩) / 잠규권계(箴規勸戒) / 전가(戰歌) / 귀족시(貴族詩) / 정치성 / 연가(宴歌) / 정치문학

<송>

종묘지사(宗廟之事) / 천자예악(天子禮樂) / 양덕고공(揚德告功) / 신곡(神曲) / 제시(祭詩) / 종교성 / 송가(頌歌) / 종묘문학


‘시경’의 시 제작 기교는 부(賦) ‧ 비(比) ‧ 흥(興)인데, 부는 직서(直敍), 비는 직유(直喩), 흥은 은유(隱喩) 정도의 기법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시경’ 시는 대부분 4언(言)이나, 이를 벗어난 경우도 종종 있어 3언부터 9언 까지 사용되고 있다. 시경 시는 중국 시문학의 원류로, 이후 나타난 여러 형식의 시들의 모태가 되었다.     

‘시경’ 해설서로는 ‘제시(齊詩)’ ‘노시(魯詩)’ ‘한시(韓詩)’가 있었는데, 이들은 ‘금문 시경’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이후 ‘고문 시경’을 바탕으로 한 ‘모시(毛詩)’가 등장하는데 분서갱유 이후 경전이 복구되는 한대 초기에는 ‘금문 시경’을 바탕으로 한 세 시 해설이 대세를 이루었으나 한대 후기부터는 ‘모시’가 대세를 이루고 세 시 해설은 사라졌거나 일부 내용만이 전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가 보는 ‘시경’은 ‘모시’이다. ‘시경’에 대한 주석서로 가장 높이 평가받는 것은 당대 공영달의 ‘모시정의’와 송대 주자의 ‘시집전’이다. 주자의 ‘시집전’은 정밀하면서도 간명한 훈고와 적확한 시 해석으로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호응을 받았다.    

 

이번 ‘수험생을 위한 시경’을 내면서 국내에 나온 번역본들을 참고했다. 성백효 씨와 박소동 씨의 ‘시경집전’(전통문화연구회), 이가원 허경진 씨의 ‘시경신역’(청아출판사), 김학주 교수의 ‘신완역 시경’(명문당), 조두현 씨의 ‘시경’(삼성당), 심영환 씨의 ‘시경’(홍익출판사)이 그것이다. 저마다 장단점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굳이 그 장단점을 말하지 않겠다. 그저 이분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어줍잖은 나 같은 이가 이런 책을 낼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드릴 뿐이며, 더불어 본 책의 번역에는 이분들의 번역을 전재(轉載)한 것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린다(일일이 그 출처를 명시하지는 못했다. 저자 분들의 너른 양해를 구한다). 그러나 이번 번역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무엇보다도 주자(1130~1200)이다. 주자의 ‘시집전’이 없었다면 본인은 물론 위 번역자분들의 번역도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주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아니 가질 수 없다.   

   

‘수험생을 위한 시경’은 한문으로 진로를 개척하려는 분들에게 드리는 일종의 보약 같은 책이다. 잘 드시고 기운 내서 좋은 성과 있으시길 기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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