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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를 아는 사람 Feb 01. 2024

외국인 집들이에 다녀왔습니다.

한국인 아내와 미국인 남편이 사는 가정입니다. 일터에서 매일 만나는 미국인 J는 동생과 나를 집들이에 초대했습니다. 외국인의 집들이에 초대를 받은 것이 처음이라 무척 설레고 기쁩니다. J의 아내도 나와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미국인 J를 알게 된 것은 직장에서 서로 얼굴만 보고 지내던 어느 날 퇴근길이었습니다. 낯선 외국인이 다가오더니 더듬더듬 서툰 한국말로 먼저 말을 걸어왔습니다. 서툰 나의 영어와 서툰 한국어를 사용하는 외국인. 나의 영어 실력에 비해 J의 한국어 실력은 훨씬 나았습니다. 우린 서로 다른 외국어로 어린아이가 처음 말을 배우듯 어설프게 대화했지만, 대 눈치껏 알아 들었습니다. 외국인과 대화하는 상황이 신기하기도 하고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줘서 고맙기도 했습니다.  일이 있은 후 우린 매일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J는 한국어를 배우려는 의지가 강합니다. 궁금한 것이 많다 보니 질문도 많습니다. 잠깐씩 나누는 대화지만 매일 주제가 다릅니다. 주말 잘 보냈냐, 어디 다녀왔냐. 바쁘지 않냐 한참을 묻다가, J가 아침밥으로 먹은 메뉴, 좋아하는 거, 싫어하는 거, 주말에 지낸 이야기 등등 대화거리를 몰고 다닙니다. 나에게 말을 천천히 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선, 무슨 뜻인지 이해하려고 하고 한국어로 조심스럽게 말을 해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좋아 보입니다. 아는 것은 아주 천천히 또박또박 얘기하고, 모르면, "몰라요!"라고 짧게 말합니다. 난 기본 측에도 끼지 못하는 몇 개의 영어 단어로 겨우겨우 묻고 답했고,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면 우리의 해결사 "파파고"를 이용합니다. 파파고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자꾸만 나에게 말을 건네는 J동생 덕에 아는 영어단어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J는 나에게 호칭을 어떻게 부르면 좋겠냐고 물었고, 난 고민고민 하다가 가장 친근감 있고 부르기 쉬운 "누님! 어때요?"라고 말했습니다. J가 만족해 하자, 그날 그 시간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들은 키 작은 중년의 한국인 누님과 키가 크고 배우처럼 잘생긴 삼십 대 후반 미국인 동생의 관계가 재미있는지 서로들 웃고 떠들었습니다. 그날부터 J는 동생, 난 누님이 되었습니다.


나의 친화력과 J의 친화력이 만나니 어쨌든 대화는 됩니다. 친화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언어 장벽은  모래성과 같지 않을까요? 영어 단어 몇 개와 한글 단어 몇 개만으로 제대로 된 문장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간단한 대화는 할 수 있겠다는  느낌입니다.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온 이 외국인의 언어를 잘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덩달아 듭니다. 이제는 나 조차도 놀랄 만큼 한글 보다 영어 단어가 눈에 자주 들어옵니다. 가끔 익숙한 단어가 들리기도 합니다. 아주 가끔. 긍정적인 현상입니다. 요즘 저는 모르는 영어단어를 하나씩 찾아보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남편은,

"당신, 지금  나이에 영어를 배워서 뭐 할 거야?"

"여보, 외국어 하나만 잘해도 삶의 질이 바뀔 수 있어요. 난 그 정도는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들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재밌잖아요."


집들이 당일 퇴근 후, 미리 준비한 선물을 준비해서 택시를 탑니다. 택시에 향기로운 꽃다발의 진향만 살포시 남긴 채 어둠을 뚫고 낯선 시골 마을회관 앞에서 내립니다. J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 어느 집 대문 없는  마당을 지나 현관 앞에서 기웃댈 때 마침 마당에 차 한 대가 들어옵니다. 집주인은 누굴 찾아왔냐고 묻습니다. 아. J집이 아닙니다. 외국인이 사는 집을 찾아왔다고 했더니, 바로 절 아래 기와집 안집이라며 친절하게 가르쳐줍니다. J와 아내가 이 마을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인심을 얻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좁은 길을 몇 번 돌고 나서 찾아낸 그의 집은 왠지 오래전부터 다녀간 적이 있는 것 같은 편안하고 포근한 집입니다.


진디마당 한쪽엔 멋진 정자가 있고 온돌방을 데워줄 아궁이도 있습니다. 이슬비 내리는 날 뜨듯하게 달구어진 온돌방에 앉아 있을 상상만 해도 좋습니다. 한국인인 내가 여태껏 살아온 어느 집 보다 더 한국적인 집입니다. 마당을 지나 현관문 벨을 살며시 누르자 천사 같은 그의 아내가 나옵니다.

"혹시 어느 부서에서 오셨는지요?"

"아, 저는 청소하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누님, 누님이시군요!. 남편에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어서 들어오세요!"

꽃 보다 사랑스러운 그녀의 표정과 환대에 난 기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J의 아내와 예쁜 꽃이 닮았음을 순간 깨닫습니다. J는 잠깐 음식을 사러 나갔다며 집 구경을 해도 좋다고 말합니다. 천장과 벽면 대부분이 나무로 감싼 이 집을 구경하는 동안 편안하고 아늑한 집안 분위기가 J그의 아내의 성향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음식을 사러 간 J가 돌아오자 그의 아내는 "누님 오셨어요!" 하며 반가운 목소리로 나를 소개합니다.  J아내가 있는 안락한 집에 함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행복하고 좋은 기운을 받고 있는 듯합니다. 벽면에 붙여놓은 다정한 부부의 사진을 구경할 때쯤 초대받은 손님들이 들어옵니다. 초면이라 약간의 어색함도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모두들 금세 분위기 속에 빠져 듭니다.


아직은 서툴게 겨우겨우 대화하는 내가 외국인들이 모이는 집들이에 초대를 받다니. 누군가는 외국인에게 초대를 받으면 불편해서 일반적으론 거절을 하는데 어떻게 진짜 왔냐며 신기해합니다. 난 조금의 망설임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저 초대해 줘서 기뻤을 뿐입니다. 영어가 서툴면 서툰 대로 눈치껏 알아들으면 되니까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면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이런 만남이 외국인들의 문화를 직접 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습니다.


J의 아내가 준비한 정성스러운 음식과 손님들이 가져온 음식이 더해지니 테이블이 꽉 찼습니다. 테이블에 모두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 집의 뷰맛을 J에게 듣습니다. 산 뷰, 들 뷰, 강 뷰, 바다 뷰 빠질 게 없습니다. 겨울뷰가 이 정도니 봄이나 여름, 가을에는 또 얼마나 멋진 풍광을 만들어낼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J의 아내는 십여 명 되는 손님 중에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나와 동생을 위해 통역을 도맡아 합니다. 통역이 끝나면 한없이 빠져들 것 같은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습니다. 그녀의 미소와 그녀가 손수 만든 정성스러운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니 행복합니다. 음식은 정성이고, 사람은 모여야 제맛인가 봅니다. 각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밤이 깊어갑니다. 다음날 이른 출근을 위해 아쉽지만 이 자리에서 먼저 나왔습니다. 행복하고 정말 멋진 집들이에 초대해 준 J의 아내를 한번 꼭 안아주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평생 기억에 남을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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