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다. 세상이 초록빛으로 빛나고, 부드럽고 포근한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길을 가다 담장 너머로 피어올라 있는 장미 꽃송이들을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한 두 달 정도는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들이 추위나 더위에 시달릴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감사하고 고마운 계절이기도 하다.
더불어서매년 이 계절에는 따로 누리는 나만의 즐거움이 있다. 3월 초에 새로 수의대에 입학한 학생들이 눈부신 흰 가운을 갖춰 입고 찍은 사진을 보내주는 것이 바로 매년 이맘때이기 때문이다.
꽃 피는 교정에서, 각 수의대의 건물 앞에서, 강의실에서 실험실에서, 심지어허름한 자취방에서...... 사진을 찍는 배경은 다 제각각이지만 사진 속에서 그분들은 모두 환하게 웃는 모습들이다.
한 달 한 달 말라서 비틀어져 가던 준비생 과정을 숨죽이고 지켜보던 나에게 어느 날 날아드는 사진 속의 모습들은 피어나는 꽃들보다 찬란하고 움트는 새순들보다 생기가 넘쳐 보였다.
2020년 봄이 되기 전 까지는 그런 사진을 받아 보고, 그런 분들을 뵙는 것은 매년반복되며 돌아오는 보람이고 기쁨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에 못 가는 상황이라서 아무에게도 그런 사진을 받을 수가 없게 되었다.
매년 봄마다 누리던 나만의 즐거움이 사라진 것이고
봄이 왔지만 봄이 아닌 것이다.
곁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 받아 보던 사진을 못 보는 아쉬움도 이렇게 큰데, 수의대에 합격하고도 학교를 가지 못하고 꿈에 그리던 가운을 입어볼 기약조차 없는 당사자분들의 심정은 어떨지쉽게 가늠도 되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에 예전에 받아 본 사진을 들춰보다 보니 수의대 시절에 내가 찍은 비슷한 사진도 찾을 수 있었다. 한껏 폼을 잡고 찍었지만 어딘지 많이 어색한 모습이다.
심지어 첫 가운은 단체로 맞춰서 입은 가운이었는데도 남의 가운을 빌려 입은 듯 사진 속의 내 모습은 불편하게 굳어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때에는 흰 가운이 의사나 수의사의 상징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그 가운이 의학, 수의학, 생명과학 등 실험을 하는 분야에서 입는 실험용 Lab gown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학 약품 등이 튈 것에 대비해서 입기도 하고, 실험이나 진료과정에서 교차 감염 등을 막기 위해서 입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흰색은 폼 나게 보이라고 선택된 색이 아니라 오염이 되었을 때 바로 발견하기 위해서 선택된 색이고, 자주 빨고, 버리고, 갈아입으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수의대에서, Lab gown을 입고 절대 음식을 먹거나, 가운을 입고 식당에 가면 안 된다고 배웠고, 가운을 입은 상태에서 간식거리를 먹다가 들키면 F 학점을 각오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으시는 교수님도 계실 정도였다.
호그와트라는 영국의 어느 학교에서는 우리로 치면 가운같은 망토인 로브를 입고 식당에서 모여서 저녁식사를 하지만 우리는 식당에 가기 전에 가운을 벗어서 곱게 접어두고 길을 나서야 했다.
수의대 공부를 시작하던 당시에 그 흰가운은 호그와트의 망토나, 신선계의 도포, 선녀 세계의 날개옷에 버금가는 귀물이자 영물(?)이었다,
남들 앞에서는 별로 신경 안 쓰는 것처럼 무심하게 행동했지만 마음속으로는 혹시라도 때나 얼룩이 묻을까 걱정해서 모든 행동거지를 단정하고 간결하게 했으며, 저녁에 고시원에 돌아가면 만사를 제쳐놓고가운부터 세탁해서 옷걸이에 걸어서 건조시켰다.
군대에서 군복을 빨아 입던 경험이 있다는 것을 하늘에 감사했다.
본과 1학년이 끝날 무렵까지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초인적인 의지와 노력으로 순백의 가운을 지킬 수 있었다.
첫 번째 위기는 해부학 실습이었다.
고상하게 앉아서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그림을 그리는 발생학 실습과는 달리 해부학 실습은 실습을 위해 희생당한 동물의 사체를 앞에 놓고 장시간 동안 바짝 붙어서 하는 실습이기 때문에 부패를 막기 위한 고정액이나 조직에서 흘러나오는 액체가 가운 여기저기에 묻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해부학 실습은 체력소모가 커서 해질 무렵에 실습을 끝내고 나면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방전된 상태에서 실습을 끝내게 된다. 실습이 끝나면 대개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 밀린 과제나 시험 준비를 하고 고시원에 돌아가는데, 해부학 실습 당일에 고시원에 돌아가서 가운을 빠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여분의 가운이 있었지만 오염된 당일에 세탁해놓지 않으면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당일에 세탁을 해야 했다.
그래서 이때부터 일부 학생들은 순백의 가운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실습 후 아무렇게나 가운을 접어서 사물함에 처박아두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 그들의 대범함을 보면서 쿨하다는 생각을 잠깐씩 해보기도 했지만 이것은 단지 일부의 일탈일 뿐이라며 이내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면서 나는 소심하게 보일지라도 순백의 가운을 끝까지 지키리라 다짐했다.
길고 긴 봄이 지나가며 시험, 과제, 실습이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점점 학생들은 지쳐갔다.
어느 날부터인가, 잠깐 엎드려서 쪽잠을 자는 학생들이 담요 대용으로 가운을 덮고 자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성한 영물의 비호를 받으면서 잠이 든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나중에는 아예 잠옷처럼 가운을 입고 소파나 심지어 거의 바닥 같은 곳에 뭐라도 깔려있으면 바로 누워서 굴러다니면서 자는 모습들을 보면서 얼마나 피곤하면 저렇게 잠을 잘까 하는 안쓰러운 생각도 들었지만 저 가운을 나중에 어떻게 빨아야 잘 빨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서 혼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 무렵부터 가운은 우리 생활 곳곳에서 실습과 무관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잠을 잘 때 담요처럼 덮고 자는 것은 기본이고, 둘둘 말아서 베개 대용으로 베고 자기도 하고, 불경스럽게도 방석 모양으로 접어서 엉덩이에 깔고 앉거나 무릎담요로 사용하는 학생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급기야 야외 실습을 할 때는 양산처럼 펼쳐 들고 그늘막을 만들기도 하고, 비가 오는 날에서는 우산처럼 펼쳐 들고 교정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추운 날에는 방한복으로 오리털 패딩 겉에 가운을 입고 눈사람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다니기도 했도, 패션 아이템으로 치마처럼 두르고 다니는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단코 가운을 그런 용도로 사용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신물이나 영물을 대하듯이 경건하고 진지한 자세로 가운을 대했고, 묻은 얼룩은 어떤 얼룩이든 당일에 제거해내려고 노력했다.
딱 한 번, 가운을 다른 용도로 사용했던 기억이 있는데, 수의대 도서관에서 가운을 반듯하게 접어놓고 공부를 하다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의 진동음이 너무 시끄러워서 핸드폰 받침으로 사용한 적이 있었던 점은 이 자리를 빌어서 고백하겠다.
아무튼 일부 학생들이 가운을 홀대하고 오만가지 용도로 사용한다고 해도 나는 꿋꿋하게 가운의 신성함을 지키는 '대다수'의 학생에 속한다고 믿고 있었다.
어느 날 '양' 실습을 하기 전까지는......
수의대의 모든 실습이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실습이기 때문에 동물의 배설물이나 냄새가 나는 여러 물질(?)을 접하는 일이 많아서 학생 때부터 웬만한 냄새나 오염물에는 눈도 까닥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양을 대상으로 한 실습을 하고 나서 며칠이 지났는데도 강의실에서 참을 수 없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따뜻한 날씨에 피어오르는 양 냄새는 악취에 단련된 수의대생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요동치고 있었다.
'아니 대부분은 실습하고 바로 가운을 빨았을 텐데, 이렇게 냄새가 남아있다니 이상한데?'
수업이 끝나고 설마 하는 심정으로 학우들에게 큰 소리로 물어보았다.
"야, 누가 양 실습하고 가운 그냥 사물함에 넣어둔 사람 있어?"
그러자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학우들이 사물함으로 우르르 몰려가더니 철컥철컥 문을 열고 양 냄새가 진동하는 구겨진 가운을 꺼내 들었다.
"아 이게 냄새가 많이 나네요. 원래는 더 이따 빨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오늘 빨아야겠어요. 크크크"
그때 나는 생각보다 많은 학우들이 이미 순백의 가운 따위는 포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서 점점 가운을 입고 하는 실습이 많아졌고, 가운을 입는 것이 익숙해졌고, 그러다 보니 세탁 스킬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어느 날 학교 목장으로 대동물 실습을 가게 되었다. 목장으로 실습을 간다고 하면 아마도 이런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푸른 초원 위에 한가로이 소들이 풀을 뜯고 있고 흰 가운을 입은 남녀 수의대생이 딸랑딸랑 울리는 작은 종을 목에 건 송아지를 매어 놓은 얇은 줄을 잡고 들판을 가로지르는......
하지만 현실 속의 실습 목장은 살벌했다. 어둠 컴컴한 우사 안에 소들이 줄 지어 묶여있었고, 갑작스럽게 나타난 학생들 때문에 소들은 잔뜩 화가 난 상태였다. 그날 우리는 교수님에게서 소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는 매듭법을 배우고 있었는데, 학생들은 차례대로 배운 대로 매듭을 지어서 소의 주둥이 부분을 묶어 보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소들은 콧방귀를 뀌면서 하고 싶은 몸짓과 머리 짓을 마음껏 하면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우리가 배운 대로 하지 못하는 것에 화가 많이 나셨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멋지게 소를 묶어서 처치를 할 수 있는 상태로 보정을 해보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유난히 큰 소의 덩치와 사나운 기세 때문에 소를 묶기는커녕 선뜻 다가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어둡고 질척 질척한 우사 안에 흰가운을 입고 들어온 터라 가운에 뭐라도 묻을 새라 몹시 신경이 쓰이는 상황이었다. 계속 소 주위를 맴돌면서 눈치를 보다가 엉거주춤 한걸음 다가서는데, 갑자기 소가 뒷발차기를 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눈으로 소의 발길질을 발견했을 때에는 이미 발에 차인 후였고, 공중에 떠있는 상태였다. 소의 뒷발에 배를 제대로 차인 것이다. 내가 듣던 소는 이런 동물이 아니었는데... 그리고 소에게 차여서 잠시 공중에 떠서 뒤로 날아가면서 나는 보고야 말았다. 흰 가운에 소똥과 이름 모를 오물로 찍힌 선명한 소발자국을, 그러면서 찰나의 순간 동안에 마음속으로 기원을 했다. 우리가 입고 있는 흰 가운에 슈퍼 히어로들이 입는 슈트 같은 충격 흡수 기능이 있어서 나의 내부 장기들을 이 충격으로부터 지켜주기를, 그리고 이 얼룩을 내가 지울 수 있기를......
잠시 후 천만다행으로 나는 질척한 우사 바닥에 쓰러져 구르지 않고 안전하게 두발로 착지를 했다. 기도했던 대로 가운에 충격흡수 기능이 있어서였는지 큰 부상도 입지 않았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배에 정말로 선명하게 소발자국 하나가 찍혀 있었다.
그날 저녁에 고시원에서 비장한 각오로 빨래를 시작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화학 지식과 빨래 경험, 온갖 세제를 동원해서 발자국을 지우려고 하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지울 수 없는 얼룩이 있다는 것을...... 한번 찍힌 소발자국은 아무리 빨아도 지워지지 않으니까 앞으로는 절대 소에게 차이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소발굽 모양의 멍자국이 찍힌 아픈 배를 끌어안고 누워서, 발자국이 찍힌 가운이 스페어 가운이었다는 것과 나를 찬 동물이 말이 아니라 소였다는 것에 감사했다.
당시에 메인으로 입던 가운은 아직도 병원에 두고 가끔씩 꺼내보거나 입어보기도 한다. 이제는 색도 누렇게 바래고, 다른 가운보다 무겁고 후줄근해 보이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영물이자 보물이다.
혹시 동물병원에 방문했는데, 그곳 수의사가 약간 색이 바랜 가운을 입고 있고 가슴에 '수의사' 아무개라는 명찰 대신 '수의학과 아무개'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면 어쩌면 그 수의사는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뭔가 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물론 진료 중에 개나 고양이가 옷에 똥이나 오줌을 싸서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그럴 가능성이 더 높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학생분들이 학교에 가서 가운을 입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는 그런 봄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그 학생분들이 그렇게 힘들게 입게 된 첫 가운을 오래오래 소중하게 잘 간직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