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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Mar 31. 2024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하)

내 인생에 영화 같은 순간 #4 

안녕하세요!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글을 쓰는 작가 #라이팅게일 권영희입니다.



* 전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로 배경은 한창 이혼 소송과 민사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14년의 일입니다. https://lnkd.in/e3PsD8rq



마을 인접 숲 속에 한 성질 나쁜 뱀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뱀은 사악하고 심술궂으며 속이 좁았죠. 그래서 단순히 재미로 사람들을 물곤 했습니다. 어느 날 이 뱀은 사후 세계가 궁금해졌대요. 그간 온갖 종교에 속아 넘어가는 순진한 뱀들을 경멸하다가 이제 본인도 의문이 든 것이죠. 뱀이 사는 곳 가까운 산꼭대기에(대체 왜 성자들은 산꼭대기를 좋아할까요? � ) 살고 있는 성자 뱀을 찾아갔고 그의 설법에 이 사악한 뱀도 공감하게 되었고 눈물을 흘리며 일생동안 지은 죄를 고백했고 성자 뱀 앞에서 다시는 사람을 물지 않겠음을 맹세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사악한 뱀이 바뀐 것을 몰랐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 뱀이 위협적이지 않음을 알게 되었죠. 이 뱀이 가부좌 형태로 똬리를 틀고 명상하고 있을 때면 사람들은 바로 코앞까지 지나다닐 정도가 되었는데 문제는 몇몇 짓궂은 아이들이 일부러 괴롭히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사악한 뱀이 괴롭힘에도 무저항적인 태도를 보이자 아이들은 대담해져서 돌을 던지기 시작했죠. 돌멩이가 뱀에 명중하면 아이들은 신나서 웃어댔습니다. 사악한 뱀은 마음만 먹으면 아이들 중 하나를 덮칠 수 있음에도 성자 뱀 앞에서 한 서약 때문에 참고 또 참았죠. 이제 아이들은 더 가까이 다가와 막대기로 사악한 뱀의 등짝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아파 견딜 수 없던 사악한 뱀은 깨달았어요. 현실 세계에서는 자신을 보호하려면 인정사정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요.



결국 종교라는 것은 헛소리에 불과했다고 한탄하며 상처투성이가 된 사악한 뱀은 산꼭대기 성자 아니 사기꾼 뱀을 찾아갑니다. 자신의 서약을 취소하기 위해서요.



잔뜩 두들겨 맞아 피를 흘리며 기어 오고 있는 뱀을 보고 성자 뱀이 무슨 일이 있었는가 묻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 탓이오!"



"무슨 뜻인가?"



"당신은 내게 물지 말라고 했소. 그런데 그 결과는 지금 이모양이오. 종교는 현실에서는 아무 소용..."



성자 뱀이 말을 가로막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어리석은 뱀이여, 내가 물지 말라고 했지 쉭쉭 거리지도 말라고 하진 않았지 않은가!"



이것이 제 가슴속을 내리친 이야기입니다. 성자 뱀의 '쉭쉭'. 그리고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됩니다. 



"때로 삶 속에서는 성자라 할지라도 쉭쉭거려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결코 물 필요까지는 없다."



#####


용기 내어 아잔브람 스님께 이메일을 보낸 다음날 리트릿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웨이팅리스트에 자리가 하나 났다고요!



그렇게 떠난 호주에서의 명상 리트릿은 제 인생의 첫 나 홀로 여행이자 제 영적 스승을 만난 멋진 경험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저는 누군가와의 갈등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웬만하면 갈등을 피하거나 예방하려고 노력하지요. 그런데 한 때 사랑했던 이와의 소송이라는 결코 원치 않은 지저분한 싸움에 휘말려 싸울 의지 없이 꾸역꾸역 힘겹게 일처리 하듯 응한 상황에서 무엇보다 괴로웠던 것은 죽을 때까지 변치 않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의 아빠라는 사람과 최선을 다해 싸워야 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는 것이에요.



뱀의 쉭쉭 이야기는 제 의문에 해답이 되었고 아잔브람스님께서는 저의 질문에 타인을 보살피고 배려한다는 것이 반드시 온순하고 관대하고 수동적인 것만이 아니라는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10년전인 2014년 1월.



한국에 살던 어리석은 뱀이었던 제가 호주에 계신 성자 뱀, 아잔브람 스님을 찾아가 지혜를 구했던 경험은 제 인생에 영화 같은 순간입니다.



에필로그로 이어집니다.



#라이팅게일 #내인생에영화같은순간 #아잔브람




잊지 못할 아잔 브람 스님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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