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통통한 편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키도 컸지만 몸무게도 함께 늘어 고3 때는 70kg까지 나갔다. 놀랍게도 나는 내 몸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다이어트를 쿨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몸에 자신이 없거나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말씀에 필터가 없고 흠을 잡아내는 어머니의 영향이 큰데 항상 몸매 관리를 열심히 하셨던 어머니 눈에 뚱뚱한 내가 마음에 차지 않아 무차별한 말로 상처를 주셨다.
상처는 받았지만 정작 주눅 들진 않았는데 그런 모습들이 옳지 못하다 생각했거니와 나는 고등학교 때 새벽 수영을 매일 다닌 덕에 탄탄하고 떡 벌어진 어깨가 제법 맘에 들었고 어떤 특정 미를 위한 다이어트는 죽어도 할 생각이 없었다.
흔히 말하는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기'라는 통상적인 다이어트 룰이 내 몸에 적용되지 않기 시작한 건 출산 이후다. 홀로 아이를 돌보며 과외를 하기 시작했는데 대상이 고등학생이라 수업이 자정이 넘어서야 끝났다. 당시 나는 몸무게가 90kg가 나갔고 살을 빼려면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야 한단 생각에 수업이 끝나면 1시간가량 걷곤 했다. 그런데 살이 빠지긴커녕 몸무게가 더 불어나는 대참사를 경험했다.
당시 이른 아침부터 하루종일 아이를 돌보다 저녁에는 늦게까지 일했다. 잠은 늘 부족했고 반대를 무릅쓰고 한 결혼이라 부모님과 늘 갈등상태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어 마음은 늘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피곤한 몸과 심적 고통으로 면역력이 말이 아니었는지 한창 에너지가 넘쳐야 할 아직은 20대였던 그때 나는 대상 포진에 자궁 근종 수술을 했다.
이혼 소송이 진행된 후 아이가 친정 부모님과 지내게 되면서 그나마 좋았던 건 잠을 실컷 잘 수 있었던 것이다. 신기하게도 잠을 잘 자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몸무게가 10kg가 줄었다. 거기다 운동과 식단을 더하니 드디어 70킬로까지 내려갔다. 그것도 잠시 소송이 본격화되면서 극심한 심적 고통과 무력감에 시달렸고 자기 비하로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약 10년간 내 몸무게의 평균은 75kg이었다. 좋다는 한약도 먹어보고 운동도 열심히 해봤으나 앞자리가 바뀐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전반적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건데 나는 나를 비하하고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에 대해 굉장한 자괴감을 느꼈다. 다이어트는 해봤자 소용이 없었으므로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병가를 낸 한 달 후부터 공황장애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것이 2021년 10월이다. 공황장애는 마음의 감기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약을 먹고 쉬면 저절로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약 덕분에 일시적으로 증상이 줄고 기분도 나아졌으나 복용 후 한 달 반이 지나자 증상은 더욱 심해졌고 약을 추가해야 했다.
어떤 약이든 2주 정도 적응기간을 거치는데 그 기간 동안 침대에서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럽고 구토가 났다. 가슴은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거기다 대표 부작용이 심한 우울감이라니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그 기간이 지나면 나에게 맞는 약인지 판명되는데 운이 좋으면 앞서 말한 증상이 사라지거나 아니면 나빠지기도 한다. 불행히도 나는 후자였다. 그렇게 한 달에 한 번씩 약을 바꿔가며 몇 달간 내 몸을 상대로 생체 실험을 했고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공황 장애 약의 가장 고약한 부작용이 바로 체중 증가다. 약을 먹기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80kg을 훌쩍 넘겨 2년 전 5월 한국에서 한 건강검진에서 나는 87. 5kg가 되었다.
그 후 지난 2년 동안 나는 나를 새롭게 탈바꿈하는 중이다. 이번엔 기존의 다이어트와 확연히 달랐다. 기존의 다이어트- 극단적으로 식단과 운동을 강행해서 무리해서 빼는 것 - 는 두 달 정도 집중하면 몸무게는 확연히 줄일 수 있지만 나라는 사람 자체는 변화시키지 못한다.
오늘 나의 몸무게는 64kg이다. 지난 2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23kg를 감량한 셈이다. 식단도 하고 여러 운동도 병행했지만 절대로 무리하지 않았다. 몸이 조금이라도 힘들어 보이면 잘 먹고 잘 쉬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다이어트는 과거의 나를 이해하고 현재의 나를 독려해 되고자 하는 나로 만드는 과정이다.
과거 오랫동안 길들여진 입맛, 먹고 눕기, 주기적으로 미친 듯이 당기는 맵고 달고 짠 음식들 등, 배달음식과 짠맛에 길들여져 있던 습관을 인정하고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고 급기야 작년부터는 극심한 역류성 식도염을 겪고 20년간 마신 커피를 끊었으며 16시간 이상 공복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카페인 금단현상부터 폭식하고 싶은 마음, 호르몬에 따라먹고 싶은 게 미친 듯이 당기는 내 몸이 싫다고 소리 지르는 거부하는 증상들을 그저 지켜봤다.
이 현상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는데 이건 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간 길들여져 있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 때보다 마음 편히 몸무게가 몇 달째 제자리걸음을 걸을 때도 그래 넌 니 할 일을 해 나는 어차피 이 숫자가 움직일 걸 알아. 나는 계속할 거거든.
지난 과거에서 내가 배운 것은 두 가지다.
비록 오늘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날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몸무게는 내려간다는 것.
그리고 다른 이들을 바라볼 때 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어떤 이는 타인의 몸에 대단히 무례할 정도로 쉽게 판단한다.
뚱뚱함은 게으름의 상징이라고.
그러나 그건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을 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건강이 안 좋아 약을 먹고 있을 수도, 고되고 여유 없는 생활에 자신을 돌볼 틈이 없거나 어린 아기를 돌보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병자를 간호하는 이일 수도 있고 극심한 심적 고통에 처해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정해진 미의 기준에 벗어나 있더라도 그 자체로 그 사람의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일수도 있다.
몸에게 관대해졌으면 좋겠다.
스스로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라이팅게일 #You_Will_Never_Walk_Al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