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드인에서 그를 알게 된 건 눈이 내릴랑 말랑하는 11월의 어느 날이었는데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이주호 (Philip) 대표님 글의 댓글에서 처음 본 것으로 기억한다. 멋들어진 장발 머리를 한 그의 프로필 사진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고 그가 남긴 정성스러운 댓글은 내 마음을 울렸다. 저마다 바쁜 사정 속 모르는 누군가를 향한 애정 듬뿍 담긴 정성스럽고 자신만의 통찰을 담은 댓글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중남미 국가에서 틱톡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글은 어떤 특정 틀이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이국적이어서 읽는 이에게 짜릿함마저 안겨 주었다. 그런 그를 누구라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의 글에 꾸준히 호감을 표현하며 꽃들이 앞다투어 피기 시작하는 지난 5월, 용기 내어 그에게 커피 챗을 신청했다.
평소 호감을 갖고 있던 슈퍼스타와의 만남이라니 이 기회를 놓칠세라 나는 그에게 그간 궁금했던 여러 질문을 던졌다. 놀랍게도 그는 이번이 두 번째 남미 여행이고 지난 1년간 한국에 머물렀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왜 한국에 돌아갔는지 물었다.
그는 조금 망설이다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해서 모든 정신병을 아는 것은 아니다. 마치 두통 환자가 위장 장애 환자가 겪는 증상을 모르는 것처럼. 공황장애와 중증 우울증을 앓으며 정신과에 몇 해째 들락날락하는 나지만 조현병은 생소했다. 다른 건 몰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병에 시달리면서도 저 멀리 중남미까지 가서 이렇게나 씩씩하게 활동하고 있다니, 가뜩이나 그에게 호감이 있었건만 이제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의 마음이 닿은 이야기는 바로 이거다.
정신병을 앓는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 그도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 그중 하나가 마음 챙김과 명상이었는데 거기서 강조하는 개인 의지에 감화되어 약을 끊는 실험을 했단다. 약 부작용을 견딜 수가 없어 의사와 상의 없이 약을 끊고 엄청난 금단 현상에 시달려본 나로서는 그의 시도가 백번 이해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조현병의 특징상 약을 끊으면 망상이 시작되는데 문제는 구분하기 어려워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그는 급기야 길거리 부랑자들과 함께 지내는 지경까지 이르렀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대사관의 도움으로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1년간 몸을 추스르며 건강을 회복한 그는 지난 남미 여행에서 본 가능성을 바탕으로 다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가족들은 극구 반대했고 그의 도전을 불안해했다. 그가 지난번 처했던 어려움을 생각하면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정신병을 앓는다는 이유로, 그로 인한 수많은 가능성 중 단 하나의 결과 때문에 여생 내내 아무 도전도 못하게 되는 건 별개의 문제다.
다행히도 그의 병은 약을 먹으면 괜찮다고 했다. 정신과 약은 좀처럼 나에게 맞는 약을 찾기가 어려운데 부작용이 본래 병보다 더 고통스럽게 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운이 좋은 그는 본인에게 잘 맞는 약을 찾았고 부작용도 없는 데다가 무엇보다 유명한 약이라 중남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그는 가족들과 6개월에 한 번 한국에서 상태를 점검받기로 약속하고 어렵게 중남미로 떠났다. 그는 한국을 떠나온 지 3개월 만에 팔로워 3만 명을 달성했고(현재는 약 5만 명) 얼마 전에는 공중파 TV에 출연할 만큼 중남미 틱톡 유명 인사가 되었다.
나는 첫 번째 결혼에 실패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별다른 능력 없이 아이를 낳았다. 이는 내 몸뚱이 하나 건사하면 되는 게 아니라 또 하나의 어린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걸 의미했다. 그렇기에 그간 내 삶은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었고 스스로 무능력하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했고 부모님께 아이를 맡겼다. 부모님께서는 감사하게도 아이는 잘 돌봐 주셨지만 폭언은 감당해야 했다. 인생의 사랑을 만나 아이를 데리고 캐나다로 올 때, 그리고 그와 결혼 후에도 약 2년간 부모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 한국 대체 언제 오니? 어차피 너 또 이혼할 건데 그럼 우리가 또 책임져야 하잖아. 얼른 와서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해라. 그럼 너 아이 키우면서 잘 살 수 있어."
상황은 다르지만 어쩐지 가족들의 걱정과 두려움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과 내 마음이 닮아 있어 우리는 서로를 다독였다. 가족들에게 감사한 마음이지만 나에게 허락된 단 한 번뿐인 생, 세상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호기심, 불타는 열정을 가진 우리 둘은 도전해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나는 이 멋진 사람을 어떻게든 돕고 싶었다. 그가 특별한 부탁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는 늘 깨어 있으려 노력했는데 자신이 망상에 빠질 땐 스스로 알아차리기 어려우니 혹시나 자신의 글이 이치에 맞지 않거나 궤변을 늘어놓는 형식이면 즉각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비상 연락망이 될 것을 자처했고 그의 가족의 링크드인 프로필도 받아놨다. 현재 가족들에게 무한한 서포트를 받고 있는 운이 조금 더 좋은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기뻤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그의 글을 유심히 살폈다. 증상에 링크드인을 쉬고 있을 때에도 꼭 하루 한 번은 접속해 그가 쓴 글들을 읽어보고 점검했다.
지난 한 달간 나는 링크드인 활동을 중단할 만큼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활동이 뜸해진 걸 알아본 그는 나에게 괜찮은지 DM을 보냈고 당시 답을 할 수 없을 만큼 지쳐 있었는데 그런 내가 걱정되었는지 그는 그의 팬 카톡 단톡방을 통해 내게 한 번 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 그의 연락에 눈물이 났다. 그 덕에 기운을 차리고 괜찮다고 회복 중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조현병이나 우울증 같은 정신병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걸릴 수 있다. 내가 걸리지 않은 건 그저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저 운이 조금 더 좋은 내가 그렇지 못한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추석 보름달을 보며 베이비 Moon � �� Julian 의 승승장구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