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간증집에 내기 위해 이 글을 써놓은 것이 2023년 5월의 봄이었다. 그리고 간증집은 다음 해 2024년 봄에 출간되었다. 간증집이 나온 이후에 글을 다시 브런치에 올리려던 것이 이렇게 벌써!! 가을이 되었다. 글을 다시 퇴고하여 올려본다.
요즘 나의 생각의 화두는 '모든 일의 시초’ 다. 그러니까 ‘지금 이 일의 시초는 언제부터였지?’ 하며 과거로, 더 이전의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가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정적인 시작지점을 만나게 된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읽어봤니?"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 C.S. 루이스 - 경험 많은 사단이 자신의 조카에게 인간을 유혹하는 방법을 충고하는
31통의 편지)
근 2년 동안 지인들을 만나면 대화 속에는 늘 이 질문이 있었다. 기독교서적을 많이 읽었지만 신기하게도 C.S. 루이스의 저서는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았었는데 2021년 여름 처음으로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만났다. 갑자기 읽게 된 이 책은 나의 머리를 탕! 하고 깨우더니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교회의 같은 부서에 있었지만 관계의 접점이 전혀 없던 한 친구와 우연히 약속을 잡게 되어 알게 된 책이다. 식사를 하던 중에 친구는 카톡으로 온 기도편지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기도편지에는 책의 일부가 쓰여 있었는데 일부였음에도 울림이 컸다. 그렇게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시작으로 한동안 C.S. 루이스의 저서에 빠져 살았다. 또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반복해서 읽으면서 챕터마다 나의 생각을 기록하기도 했다. 시간의 간격을 두고 써 내려간 기록들은 내 삶의 모든 것을 이전보다 더 민감하게 바라보게 해 주었다. (우리는 얼마나 치열한 영적전쟁터에서 살고 있는가!!)
그러니까 전혀 접점이 없었던 사람과 식사를 하게 되고, 그곳에서 기도편지를 읽게 되어, C.S. 루이스의 저서를 거의 다 읽게 되는 지점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던 지난한 사회적 거리두기 시절에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일상이 회복되자 어떤 대화를 하던지 C.S. 루이스의 책은 화두가 되고, 서로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우연한 식사는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의 결정적인 시초였을까? 그래서 과거로 더 과거로 거슬러가 보았다. 그렇게 해보니 그 시간과 연결되어 있는 무수히 많은 순간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의 시초는 무엇으로부터 시작됐을까?
(이것은 어떤 일의 원인을 찾아서 인과관계의 퍼즐을 맞추는 작업이 아니다. 또는 어떤 꼬여 있는 사건의 결정적 원인을 찾고, 어디서부터 뒤엉킨 것을 풀어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감사한 일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그 일의 과거로 돌아가서 결정적인 발단부터 현재까지를 시간순서대로 잘라서 세세하게 들여다보니 그 안에는 인생의 기복이 있었다. 내가 겪는 기분, 감정을 비롯하여 내 삶의 모든 것들의 기복이 있었다. 구름 위 같은 기분 좋은 지점도 있었고, 이해할 수 없는 어둠 속 골짜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 모든 상황과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소해 보이는 것들의 전부를 사용하시어 나를 그 지점에 이르게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을 마음에 품고 삶을 바라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곁에서 사소하게 벌어지는 일상들. 지금 내가 마주하고 대화하는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나의 인생에서 일어났던 기이하거나 기적 같았던 일들. 이 모든 일의 결정적인 시초는 우연같이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의 연속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내 눈에는 아무 상관없어 보였던 일들일 지라도 말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_로마서 8장 28절
주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이르게 된 인생의 흐름을 생각하고 더불어 시초를 생각하다 보니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이 더 깊게 마음에 다가온다. 결국 시초를 찾아가는 작업은 '영원 전에' 이미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결정하셨고 우리를 사망에서부터 살리시려 계획하셨음을 깊이 깨닫게 된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이미 택하셨고 언제나 늘 나를 사랑으로 바라보며 지키고 계셨다. 영원 전부터 내 삶이 이미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안에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으면 지금부터 내 삶이 다시 보인다.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삶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선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것을 정말 깨닫는다면 우리는 늘 감사와 평안으로 살게 될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를 '지금' 보고 계시고, '시간외적'으로 계시는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무한한 은총을 늘 깨닫고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
하나님께서 언제나 내 삶에 함께 하고 계시는 것을 온전히 신뢰한다면 삶에서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마음에 들고 싶어 진다. 하나님이 금지하신 것에는 다가가고 싶지 않고 하나님을 내 삶의 최우선순위로 모시고 살고 싶어 진다. 삶의 순간마다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내 욕망이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쪽으로 선택해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매우 커진다. 나의 삶에서 사랑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고 있는 것, 몰입하고 있는 것을 늘 분별하며 하나님보다 우선이 아닌지 늘 깨어있어야 한다. 내 마음을 훔치고 지배하는 우상을 합리화하며 나의 관점으로 내 인생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하여야 한다.
그렇지만 분명 사단은 교묘하고 교활하게 훼방을 놓을 것이다. 우리의 생각을 비틀어서 생각지도 못한 지점까지 데려다 놓을 수 있다. 그러므로 생각의 틈 안으로 치고 들어오는 부분을 늘 민감하게 분별하여야 한다. 무심코 생각이 부정적으로 흘러가고 마음이 움직인다면 '바로' 끊어버려야 한다. 죄를 지을 수 있는 시초에 절대적으로 민감해져야 한다. 매 순간 내리는 아주 작은 결정일지라도 매우 중요하다. 나의 모든 선택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쪽으로 움직여야 하며, 선택의 순간마다 주님의 지혜를 구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분명 주님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알려 주신다. 어떤 상황에서든 내 자아를 내려놓고 하나님 나라를 선택하며 그 이후는 주님께 맡겨야 한다.
근심걱정과 불안으로 마음이 많이 불편하거나 힘들고 답답하다면 혹시 내가 세상 안의 무언가를 내 욕망으로 통제하려 하지는 않았는가 생각해 본다. 시간, 물질, 사람... 세상 안에 나와 관계된 모든 것 중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개입하여 통제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뿐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기에 힘든 것이다. 특히 사람과 관계된 일의 이유를 찾기 위한 강박을 내려놓는다. 내 시선이 아닌 주님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주님께 완벽히 내려놓으면 삶이 평안해진다. ‘그러든지 말든지’ 하는 방관하는 자세가 아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장 39절)’ 는 말씀처럼 내 이웃을 지금보다 더 사랑하기로 결심한다면 관계뿐만이 아니라 많은 일의 해답이 이 범주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에게 주어진 한정적인 시간 안에서 이제 무엇을 시작할까.
2022년 우리 교회 청년부의 레위기 설교를 듣다가 레위기 말씀의 울림이 다름을 마주했다. 때마침 우리 교회 성경대학에서 레위기 강해가 시작되었고, 이 강해를 시작으로 교회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성경강해들을 계속해서 듣고 있다. 놀라운 것은 성경강해의 시간들을 계속 마주하면서 성경의 울림이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성경의 많은 부분을 깊게 생각하지 않고 어두운 눈으로 읽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우리 교회에 수많은 양육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의지만 가지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늘 진행되고 있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성경말씀과 예배로 내가 접하는 모든 통로로 세밀하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알고 싶어 하면 알고 싶어 할수록 자신을 보여주신다. 당신의 존재를 나에게 뚜렷이 알게 해 주시고 세밀하게 말씀하신다. 놀랍고도 기쁘게. 우리는 매일 말씀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살 수 있다.
+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장 28절)
시간이 멈춘 과거로 돌아가 보는 일은 마주하면 할수록 희망이 확실한 미래로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더 명확해진다.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굳게 믿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매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더하며, 주님의 제자로, 증인으로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점진적으로 주님의 도구로 쓰일 수 있게끔 만들어 가시지 않을까.
늘 그렇듯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실 것이며, 지금도 분명하게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일에 의지를 가지고 순종하며 최선을 다해 동참하면 된다. 나에게 주신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일에 힘쓰면 된다. 내 삶을 언제나 지켜보고 계시며 선하게 이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나의 세계와 타자의 세계가 만나서 또 어떤 선한 일의 시초가 될지 기대하며 말이다.
홍성사에서 출간된 C.S. 루이스의 저서를 거의 다 읽게 된 지난해 가을이었다. 한 독서모임에 갑자기 참여하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그곳에서 C.S. 루이스의 저서를 거의 다 읽은 언니를 만나게 되었다. 언니도 반가웠던지 다음날 본인의 책장 속의 줄지어 있는 책들을 사진 찍어 나에게 보내주었다. 그렇게 서로 통함을 느꼈던 우리는 다시 약속을 잡고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책으로 모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둘만의 책모임을 하면서 언니를 통하여 '달라스 윌라드(신학자)'를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달라스 윌라드의 저서들을 현재까지 읽고 있다. (달라스 윌라드의 저서에는 C.S. 루이스의 글이 자주 인용된다.) 달라스 윌라드의 책의 말미에는 추천도서까지 있어서 나의 기독교 서적의 세계가 점점 확장되고 있다. 지금 돌아보아도 C.S. 루이스의 저서에서 달라스 윌라드의 저서로 넘어가는 지점이 참으로 절묘하다.
앞으로도 나의 삶에서 갑자기, 우연히 벌어지며, 타인에게서 무심코 행해지는 일이 나에게 크게 영향을 주는 일은 얼마나 많을까. 어떠한 방향으로든 말이다.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