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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와 어른, 그 차이는 철학에 있다

1,000년 뒤처진 꼰대의 사고방식. 나는 꼰대인가, 어른인가?

by 벤자민 Benjamin
뉴스레터 『주간벤자민』 ​에 발행된 글입니다.


'꼰대'와 '어른', 일상에서 흔히 구분하는 두 단어이다. 하지만 그 차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나는 이 차이가 각자가 가진 철학적 사고 체계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로운 이 가설에 의하면, 꼰대와 어른은 그들이 가진 철학에 의해 결정된다. 스스로 어느 시대의 철학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확인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꼰대: 중세 철학에 머무는 사람

꼰대는 중세시대(5-15세기)의 철학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그들의 세계에는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진리가 존재한다. "원래 그런 거야", "나 때는 말이야", "내가 경험해 봐서 아는데"라는 말버릇을 갖고 있다. 자신의 경험과 기준이 곧 절대적인 진리라는 믿음이 깔려있다. 이것 아니면 저것, 흑 아니면 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관을 가지고 있다. 중간지대나 회색 영역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중세인은 교회나 왕권, 전통과 같은 기존 권위를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마찬가지로 꼰대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권위를 절대화한다. 회사에서는 직급이, 일상에서는 나이가, 사회에서는 자산이 그들의 절대적 기준이다. 그 기준이 모든 가치와 규범의 척도가 된다. 다른 관점은 묵살시켜 버린다. 개인의 판단보다 권위자의 해석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보통: 근대 철학을 살아가는 사람

대다수의 보통 사람은 근대(17-19세기)의 철학으로 살아간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과학적인 사실로는", "합리적으로 해결하자"라는 말이 일상적이다. 개인의 이성적 판단 능력을 믿고, 객관적 관찰과 실험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고자 노력한다. 이성과 과학에 의존하여 세상의 정답을 찾고자 한다.


인권과 자유, 평등 같은 보편적인 가치를 옹호하고, 합리적 토론을 통해 하나의 답에 도달하고자 한다. 사회의 발전을 응원하며, 이는 계몽과 교육을 통해 가능하다고 믿는다. 꼰대보다는 열려있지만, 여전히 어딘가에 정답이 있다는 신념을 놓지 않는다.



어른: 현대 철학을 받아들인 사람

진짜 어른은 현대 철학을 체득한 사람이다. "그것도 하나의 관점이네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겠어요", "정답이 있는 걸까요?"라고 말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답이 없는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 다양한 관점을 인정하고, 맥락을 기반으로 사고한다. 단순하고 확정적인 답변에 대해 회의적이다.


절대적인 기준을 두지 않는다. 어떤 가치관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기준이 흔들린다는 것을 안다. 좋고 나쁨, 옳고 그름으로 판단되는 '이분법적 사고의 한계'를 볼 수 있다. 세상의 진리와 상식에서 누군가의 힘이 스며있다는 것을 느낀다.


말에 담기는 철학적 전제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을 안 한다'라는 사회 현상을 두고, 중세 꼰대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거야. 예전에는 다들 결혼하고 애도 많이 낳았어. 요즘 애들은 참 이기적이야."


보통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경제적 여건이나 사회 구조를 보시면 결혼을 미루는 게 합리적인 판단으로 보입니다. 정책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현대 어른은 이렇게 말한다.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어떤 의미인지, 누구의 관점에서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지를 먼저 고민해 봐야겠네요. 여러 삶의 형태가 가능한 거 아닐까요?"


누군가 하는 말은 그 사람이 어떤 철학을 기본으로 깔고 살아가는지를 드러내 보인다. "원래 그런 거야"라는 말은 본질주의적 사고를 드러내고, "객관적으로 보면"이라는 말에는 근대적 객관성이 담겨있다. "그것도 하나의 해석이겠네요"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해석학적 전회를 체득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사고는 역사적으로 진화해 왔다. 중세의 신 중심적 사고에서 근대의 인간 중심적 사고로, 그리고 현대의 탈중심적 사고로 발전해 왔다. 철학은 세상을 더 잘 파악하기 위한 사고방식의 발전 과정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이런 철학적 진화를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중세에, 어떤 이는 근대에, 어떤 이는 현대에 살고 있다. 같은 2025년을 살고 있음에도 서로의 철학적 시대 배경은 1,000년 이상 차이가 난다. 중세인과 현대인이 서로 말이 통할 리가 없다. 바로 이것이 꼰대와 어른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최신 버전 업데이트

현대 철학을 배운다는 것은 시대를 앞서나간다는 것과 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최신의 철학을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철학이 제시하는 사고의 복잡성과 섬세함을 체득하는 것이다. 현대 철학은 우리에게 확실성에 대한 건전한 의심,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현실 인식, 타자와의 진정한 만남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꼰대와 어른의 차이는 나이나 경험의 차이가 아니다. 그들이 체득한 철학적 사고 체계의 차이다. 결국 진정한 성숙이란, 자신이 서있는 철학적 지반을 두드려보고, 더 복합적이고 섬세한 사고체계로 나아가려는 의지에 달려있다.


신체가 하드웨어이고 정신이 소프트웨어라면, 철학은 펌웨어와 같다. 신체와 정신의 연결을 최적화시켜준다. 중세버전의 펌웨어 위에 현대의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 퍼포먼스를 올리기 위해서는 펌웨어를 최신버전으로 업데이트시킬 필요가 있다. 나는 나의 철학적 펌웨어를 계속해서 업데이트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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