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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만나기가 참 힘들어졌다.

by 벤자민 Benjamin

모두가 제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란 초중학교 친구들, 치열하게 공부했던 고등학교 친구들, 청춘을 함께 했던 대학교 친구들까지도. 그 당시 우리는 졸업식에서 피같이 진한 마음을 나누었다. 잘 지내라고, 성공해서 보자고, 꼭 연락하자고.


하지만 현실은 잘 지내는지 성공했는지 궁금해할 틈도 없을뿐더러, 메신저에 이름 세글자를 입력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나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다. 고향을 떠나 혈혈단신 서울에 정착했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는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친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 집의 벨을 누르고 도망가는데 10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좀처럼 그런 시간은 나지 않는다. 가끔가다 우연히 헬스장에서 만나면, 한쪽 바벨을 몰래 빼놓고 도망가는 장난 정도만 칠 수 있을 뿐이다. 같은 헬스장에 있어도 각자의 운동을 한다. 같은 동네에 있어도 각자의 삶을 산다.


오랜만에 바벨 갖고 장난치는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원래는 7시에 만나 밥부터 먹기로 했는데, 약속 당일 내가 9시로 시간을 미루었다. 저녁 식사까지 할 만큼의 여유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녁 9시에 실실 쪼개며 만난 우리는 진지한 얼굴로 새벽 4시까지 떠들었다. 대화 말미에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이럴 수 있는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 상민아."


과연 그런 것 같다. 싱글, 고향 친구, 3분 거리. 이 정도로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 또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많은 시간을 나누고 깊은 고민을 나누었던 우리가, 제대로 된 밥 한 끼도 같이 못 먹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시간이 지나 결혼을 하고 가정이 생기면 얼마나 더 만나기 힘들어질까? 사치스럽다 못해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모래를 뒤집어쓰고 오르내렸던 정글짐은 바쁜 걸음으로 오르내리는 회사 계단이 되었고, 치열했던 수험 생활은 빠듯한 경제생활이 되었다. 그때는 밤새 술 마시며 웃어 제끼느라 목이 쉬었지만, 나중엔 밤새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느라 눈이 부어오르지 않을까.


오랜만에 진한 마음을 다시 꺼내어 본다. 잘 지내자고, 성공하자고, 먼 훗날에도 꼭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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