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 정 Nov 29. 2022

아니 에르노의 <사건>을 읽고,

어릴 때 나는 꽤나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초등학생 때 동네 만화책방에서 하이틴 만화를 빌려보기 시작했다. 대여비가 한 권에 백 원이었던 것 같은데 하루에 3~40권씩 완결까지 보는 재미가 들려 적지 않은 돈을 책 대여비로 써댔다. 

갑자기 하루 종일 만화책만 보는 딸램이를 보며 속이 터지시는 엄마는 등짝을 휘갈기며 한 번만 더 만화책 빌려오면 아주 책을 다 찢어버리겠다고 으름장 놓기 바쁘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책은 어떤 책을 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책을 보느냐 마느냐가 중요하시다며 만화책이어도 되니 뭐든 보라며 매일 같이 엄마 몰래 돈까지 쥐어 주신 게다. 난 엄마를 아주 좋아했지만 이렇게나 나와 코드가 쫙쫙 맞는 아빠를 더 더 좋아했다. 내 이 만화책과 소설을 향한 열정과 에너지는 15세 관람 가능한 책을 모두 읽었을 때 끝이 났다. 더 이상 내 나이에 볼만한 책이 없으니 서점 이모가 그만 좀 오라고 사정하시면서부터.. 


그렇게 책을 좋아하던 나도 중, 고등학교를 가서는 필독서 위주의 독서만 했고 대학 때에는 워낙 일과 학습에 치이다 보니 기행문이나 에세이, 소설 같은 책만 보면서 내가 겪어보지 못한 삶에 대한 동경을 꿈꿨다. 또 그 당시에는 자기 계발서가 유독 인기라 자기 계발서 보면서 오늘보다 내일 더 나아질 내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인생의 시간과 맞바꿔가며 치열하고 전투적으로 했던 알바들을 그만두는 여유로움이 생기자 독서모임이 너무 하고 싶어 졌었다. 하지만 인생의 시계는 언제나 바쁘게 돌아갔다.


2020년 신년 목표에 당당히 독서모임 하기를 적어 넣었다. 12월 말에 네이버에서 독서모임을 검색하다 우연히 광양에서도 독서모임이 열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난 남편한테 양해를 구하고 말 것도 없이 독서모임을 신청했다. 사실 우리는 아이가 여럿이기에 개인적인 일정을 잡을 때는 서로에게 어느 정도 양해를 구해야 한다. 전부터 하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으나 독서는 이해해도 독서모임은 이해가 안 된다는 남편 설득은 일단 뒤로 제쳐두기로 하고 2020년 첫 독서모임을 시작해 3년째 한 번도 빠짐없이 이어오고 있다.


이번 분기에 읽은 책 중에는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의 <사건>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1960년대 작가가 불법 낙태를 하게 되면서 겪은 사실을 쓴 자전적 소설이다.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는 낙태가 불법이었기에 엄밀히 말하면 작가는 불법 낙태를 한 경험을 책을 통해 고백한 것이다. 하필 여섯째를 사랑이 충만한 마음으로 키우고 있을 때 이 소설을 만나 나는 고문을 받는 듯한 느낌으로 이 책을 읽었다. 당시 작가의 현실과 감정, 상황적 묘사가 너무 생생한 만큼 한 줄 한 줄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었다. 태어나 처음 경험해보는 당황스러운 감정이었다. 그리고 얇디얇은 이 책이 왜 이렇게 길고 긴 터널을 건너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에르노는 대학생이었고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서 임신을 하게 된다. 낙태가 불법이었기에 작가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누군가는 그런 시대적 배경에 공감을 하고 누군가는 당시에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 당시 여성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임신과 중절의 현주소에 대해 이야기했으나 내 신경은 온통 빵 봉지에 대충 쌓여 변기 물에 떠내려간 태아에 머물러 있었다.

'물의 아이' 

프랑스에서는 그 당시에 중절된 태아들을 물의 아이라 지칭하기도 했다고 한다.

태아를 인격체로 볼 것 인가에 대한 논쟁은 여전하지만 나한테 태아는 그냥 지금 내 품에 안겨 웃는 이 아이와 같았다. 아니 에르노가 어렵게 낙태 시술을 해줄 사람을 찾고 목숨까지 걸어가며 불법 낙태를 했음에도 그저 불법 낙태자 낙인이 찍히며 불편한 시선과 고통을 고스란히 혼자 떠안아야만 하는 그 모든 부당한 현실은 안중에 없고 난 그저 버려진 태아 생각에 숨이 턱 막혔다. 책에 몰입하며 책장을 넘길 때마다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작가가 너무 밉게만 느껴져서 이 책이 픽션이길 간절히 바랐다.


독서모임을 앞두고 책의 총평을 정리하면서 불현듯 내가 이 책을 통해 화가 난 진짜 이유를 마주할 수 있었다.

여섯째가 생겼을 때 잠시나마 지워야 하나 생각했었던 나에게 화가 나 있었다는 사실을.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내 얼굴을 마주하면 얼굴 가득 함박미소로 인생의 효를 다 하는 것 같은 이 아이를 나 또한 지우려고 생각했던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이 작가에게 투영되어 지독하게 밉고 고통스러웠나 싶다.


[아이는 순진 무고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며 성스러운 긍정이 아닌가. 창조라는 유희를 위해서는, 형제들이여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눈물로 떠내려간 수많은 물의 아이들이 하늘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기를 바라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이런 일 저런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