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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끼왕 Mar 05. 2020

남극에도 꽃이 필까?

Halo[올라] 안녕하세요!  남극 세종과학기지 제 29차 월동연구대 생물연구대원 윤영준입니다.

현재 기지 상황은 초속 20m/s가 넘는 바람과 함께 많은 양의 눈이 날리고 있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블리자드(눈 폭풍)가 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날에는 외부작업은 전면 중단되며 미뤄두었던 실내작업을 진행하게 됩니다. 반면 한국에선 벚꽃이 만발하고 대학들은 축제가 한창이라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벚꽃엔딩”이라는 노래 또한 K-POP 차트 순위를 역주행하고 있겠지요. 이곳 남극에선 “눈꽃엔딩”이라는 곡이 있다면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번에 제가 말씀 드릴 <세종기지이야기>는 기지 주변에 생육하고 있는 남극식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구의 가장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지역 남극! 내륙지역의 연평균 기온은 –20℃가 넘고, 1년 내내 눈으로 덮여 있는 불모지의 땅에서도 과연 식물이 자랄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세종기지가 위치하고 있는 바톤반도에는 꽃이 피는 현화식물(관속식물) 남극좀새풀과 남극개미자리, 그리고 꽃이 피지 않는 선태식물(이끼류) 약 30종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2월 중순경 노란색의 꽃이 피는 남극좀새풀은 바톤반도의 남쪽 해안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고, 남극개미자리는 식물체가 작고 분포하는 지역이 협소해서 가끔씩만 모습을 보여주는 남극의 육상식물입니다. 하지만 남극육상생태계의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선태식물입니다.

   선태식물이라 함은 최초로 육상생활에 적응한 식물군이며, 흔히 이끼라고 합니다. 특별한 통도조직은 발달해 있지 않지만 엽록체가 있어서 독립영양생활을 하고, 넓은 분포역을 가지고 있어 남극에서 북극까지 전 세계에 걸쳐 분포하고 있습니다. 남극의 여름이면 눈이나 얼음에 덮여 있던 바위와 흙이 노출되고 그것들의 많은 부분은 이끼로 덮여있어 한국과는 또 다른 푸르른 여름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끼들은 영하의 온도에서 광합성을 할 수 있으며, 물이 없어도 수십 년을 버틸 수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극한의 환경을 순응하고 적응하며 살아온 이끼!! 이들의 끈질긴 생명력은 마치 오랜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닥쳐온 온갖 도전과 시련에도 꿋꿋이 버텨온 우리 선조들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럼 세종기지 주변에서 쉽게 발길이 닿는 곳에 흔하게 분포하는 대표적인 이끼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Polytrichastrum alpinum (산솔이끼)- 바톤반도 전역에 가장 흔하게 분포하고 남극에서도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이끼
Polytrichum piliferum (침솔이끼) - 세종기지 기지 건너편 위버반도에 분포하고 남극반도까지 넓게 분포하지만 개체군 수는 적다

  

Andreaea regularis (작은검정이끼)- 바톤반도 전역에 분포하며 남극반도 까지 분포하는 이끼

  

Sanionia uncinata (낫깃털이끼) - 바톤반도 전역에 분포하며 남극에서 가장 흔하게 분포하는 이끼

   

Bartramia patens (남극구슬이끼)- 바톤반도에 흔하게 분포하며 남극반도까지 분포하는 이끼
Hymenoloma antarcticum (남극선이끼)바톤반도에 비교적 흔하고 남극반도까지 분포하는 이끼



얼마 전 지구의 날을 맞이해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를 찾아보았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미국 캘리포니아 비숍 근처에 있는 화이트 산에서 발견된 소나무의 일종으로 무려 4,900년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 나무는 너무 오래 살고 있기 때문에, 성경에 나오는 인물로 무려 969살까지 산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므두셀라의 이름을 따서 “므두셀라”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또한 이 나무가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확한 위치는 공개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럼 남극에 분포하고 있는 이끼의 나이는 얼마나 될까요? 스웨덴 룬드 대학의 한 연구자에 의하면 남극 엘리펀트 섬에서는 5,500년, 사우스조지아 섬에서는 2,200년을 살아온 이끼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남극에 분포하는 이끼들은 혹독한 자연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성장속도가 느릴 뿐만 아니라 극한의 상태가 되면 자기 스스로 성장을 멈추고 성장에 필요한 여건들이 마련될 때까지 기다리는 자기방어 기작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극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밟고 서있는 모든 이끼들은 적어도 우리보단 나이가 많다는 뜻 일수도 있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남극에서 야외 연구 활동을 하다보면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비록 연구를 위해 남극에 와 있지만, 정작 아름다운 남극을 가장 많이 파괴하는 건 나 같은 연구자들이 아닐까? 숨을 쉬며 내뱉는 이산화탄소, 걸을 때 마다 밟는 이끼, 지의류, 그리고 발에 체이는 돌맹이 하나에게도 미안할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발전이 아닌 보전을 주제로 남극에 다가가야 할 때 인 듯합니다.

   지구상에 최후까지 남겨진 미지의 대륙! 아름다움과 위험한 자연환경이 공존하는 곳!

   남극에 있는 모든 것들은 비록 작은 돌맹이 하나 조차도 그 자리에 그대로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그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의미가 있을 테니까!


세종기지 뒷편 이끼카페트에서 바라본 세종기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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