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상자가 하나 있어요.
상자는 아주 오래 전부터 그 곳에 덩그러니 있었기에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얻지는 못했지요.
상자의 존재도 모르는 사람들이 허다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똑똑한 학자 한 명이 상자 앞에 섭니다.
그리고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질문을 던지죠.
"이 상자 안에 무엇이 있을까?"
상자를 이리 저리 살피던 과학자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두들겨 봤어요.
그랬더니 상자 안에서 '멍멍'하고 개 짓는 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학자는 뜻하지 않은 발견에 너무 흥분했고
이내 상자 안에 개가 있음을 확신하죠.
상자 속 개에 대한 이야기는 일파만파 퍼져
이웃 나라 다른 학자의 귀에도 들어가지요.
"상자 속에 개가 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이웃 나라 학자는 한 달음에
상자가 있는 곳까지 달려 왔어요.
그리고 상자를 유심히 살펴 본 뒤 조심스레 상자를 두들겨 봤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상자 안에서 "야옹" 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아니, 이 상자 안에는 개가 아니라 고양이가 있는게 분명해!"
두 학자는 서로를 흘겨 봤어요.
명예가 무엇보다 중요한 학자 사이에서
자신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은
피를 부르는 결투 신청과 같으니까요.
두 학자는 사람들을 모아 두고 상자의 진실에 대해 첨예한 논쟁을 이어 갔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어떤 학자의 말이 옳은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했지요.
왜냐하면 상자에서 들리는 소리가 그때 그때 달랐거든요.
어떤 때는 개 짓는 소리가 들리다가,
또 어떤 때는 고양이의 울음 소리가 들렸던 거지요.
상자의 비밀은 결국 전 세계적 관심사가 되었고
내노라하는 학자들이 모두 모여 난상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이 상자 안에 개와 고양이 둘 다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럼 왜 개와 고양이 울음 소리가 동시에 들리지는 않는 거지? 꼭 한 번에 하나의 울음 소리만 들리잖아?"
"만약 개와 고양이의 울음 소리를 둘 다 낼 수 있는 동물이 있다면?"
"그런 동물은 존재 하지 않아!"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종일 수도 있지!"
그렇게 상자 속 개와 고양이의 논쟁은 몇 년간 더 이어졌고
학자들도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어요.
결국 학자들은 적당한 선에서 합의하기로 합니다.
"이 상자 안에는 개이면서, 동시에 고양이인 무엇이 존재 한다. 더 이상 논쟁 금지!"
이 상자는 '빛'입니다.
토마스 영은 이중 슬릿 실험으로 빛이 파동이라고 주장했어요.
반면 아인슈타인은 빛이 일종의 알갱이라는 입자설을 내놓았고 많은 과학자들이 빛이 입자임을 증명하는 실험에 성공합니다.
"빛은 과연 파동일까? 입자일까?"
이 질문의 답은 상자 이야기의 결론과 비슷합니다.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라는 거죠.
어느 누구도 그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과학은 우리가 경험한 범위에서 설명할 수 있는 현재 진행형의 믿음일 뿐, 절대 진리는 아니에요.
언제든 새로운 발견과 함께 수정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과학은 재미있습니다.
신이 만든 세상에서 관찰된 단서들을 빼곡히 적은 탐정 수첩 같거든요.
우리는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꼬깃 꼬깃한 탐정 수첩을 펼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