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쓴 딸의 교환학생 체험기
인연
빈 몸뚱이를 서로 기댄 채 긴 겨울을 이겨 낸 나무들도 서서히 봄을 준비한다. 일 년 동안 딸이 북유럽의 잿빛 날씨와 바람을 견뎌낼 수 있었던 힘은 겨울나무처럼 어깨를 빌려주고 보살펴 준 지인들 때문이었다.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독일 공항에 내린 딸을 친 이모처럼 안아주고, 라인강이 내려다 보이는 제일 좋은 방을 수시로 내주며 환한 웃음으로 맞아 준 아내의 지인.
독일에서 처음 만나 기숙사 이웃이 되어 뛰어난 음식 솜씨로 곱창전골과 두루치기 심지어 닭발까지 요리해 허기진 마음을 기름지게 채워주고, 생일날 미역국까지 끓여 준 대구 언니.
몇 달 동안 힘들게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딸을 위문하러 떠난 친구들.
수시로 오고 가며 기대고 의지할 수 있었던 학교 동기나 선후배.
낯선 이방인을 크리스마스에 초대하고, 떠날 때 눈물까지 글썽였다는 독일인 가족에게 감사할 뿐이다.
여행을 다녀와 오랫동안 마음 깊이 각인되는 건 낯선 도시에서의 이국적 향기와 멋진 풍경 보다 사람과의 만남이 남긴 배려와 미소였다.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일 겁이라는 아주 긴 시간의 기다림이 있었다고 말하는데 딸이 경험한 인연들을 3천 년에 한 번 꽃 피운다는 우담바라의 향기처럼 깊고 소중하게 간직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