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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주 Nov 10. 2023

30화 과학기술로 신이 될 사람 (上편): 「로라」

김초엽의 「로라」를 읽고

<1> 김초엽로라신체강화(증강)의 전제는 무엇인가?  

   

마블(MARVEL) 아이언맨(Iron Man)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영화 속 토니 스타크(Tony Stark)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본격적인 프로젝트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그중 하나가 ‘뇌-기계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로 이를 위해 만든 회사가 뉴럴링크(Neuralink)입니다. 일론 머스크는 이 기술이 신체가 마비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업그레이드가 처음에는 치료를 이유로 정당화된다. 유전공학 또는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와 관련한 실험을 하는 전문가들을 찾아가 왜 그런 연구를 하는지 물어보라. 십중팔구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호모 데우스』, 김영사, 2017, 85쪽.) 의학은 언제나 의학적 표준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을 구하는 일로 출발하지만, 그다음에는 같은 도구와 노하우로 표준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도 이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는 뉴럴링크가 치료를 넘어 증강(augmentation)으로 가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곧 인간에게 위협이 될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뉴럴링크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시켜 인간지능을 증강시키는 것으로 신체 마비 환자를 위한 치료는 첫 계단일 뿐입니다. 이 기술의 첫 번째 수혜 대상은 표준 아래에 있지만, 증강 기술이 확보된 뒤에는 이를 표준에 적용시켜 증강을 실천할 계획입니다. 그런데 과연 증강이 인간 1.0에서 시작되는 것일까요?     


김초엽 작가의 단편 SF소설 「로라」(『방금 떠나온 세계』, 한겨레출판, 2021.)는 증강 기술이 인간 1.0에게 쉽게 이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입니다. 작품 속 화자인 진은 자신의 연인인 로라를 이해하기 위해 긴 취재를 진행합니다. 그 결과물로 펴낸 책이 《잘못된 지도》입니다. 인간은 고유의 신체 지도를 가지고 있어서 팔과 다리를 의식하지 않을 때도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압니다. 인간에게는 몸의 위치와 움직임을 감지하는 고유수용 감각이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어긋난 고유수용 감각, 즉 ‘잘못된 지도’를 갖게 되는데, 연인 로라가 그런 경우였습니다. 그는 어릴 적에 큰 교통사고를 겪는데, 그때 이후로 ‘세 번째 팔’을 인지하게 됩니다. 이 새로운 팔은 로라에게 극심한 통증을 줍니다.     


일반적인 환상통은 사고로 절단된 사지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로라는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던 신체에서 통증을 느낍니다. 양팔 이외의 다른 팔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어떤 재활 치료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나마 효과가 있었던 치료는 가상현실 시뮬레이션 치료였습니다.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로라는 세 번째 팔을 만드는 것을 유일한 방도라고 믿게 됩니다. 그러나 진은 이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고 후유증으로 거짓 감각을 경험하게 되었다면 거짓 감각을 고칠 일이지, 가짜 팔을 다는 것이 어떻게 해결책이 될 수 있단 말인가?”(116) 진이 환상통을 겪는 사람들을 취재해서 《잘못된 지도》를 쓴 것도 이러한 로라를 이해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로라」에는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분투도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과학기술을 통해 인간의 신체를 증강(강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코네티컷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 트랜스휴먼 연합은 ‘신체 증강 시술을 합법화하기 위해 증강 자율화 법안을 추진’하는 중입니다. 로라는 트랜스휴머니스트는 아니지만, 세 번째 팔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들의 투쟁의 기묘한 당사자가 됩니다. 로라는 세 번째 팔을 다는 수술이 신체 증강이나 취향에 따른 신체 변형이 아니라 자신이 지닌 ‘불일치’ 증상에 대한 치료 목적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던 것입니다. “뇌의 잘못된 지도와 몸의 불일치를 신체의 변형을 통해 바로 잡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몸 정체성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로라는 유사”했습니다. 하지만, “신체에서 무언가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더한다는 점에서는 트랜스휴먼들”과 유사합니다.(119)     


일론 머스크와 같은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치료에 의해 발전될 증강 기술이 인간 1.0에 당연히 적용될 것으로 전제합니다. 여러 SF소설에 등장하는 트랜스휴먼의 경우도 기계와 안정적으로 결합된 형태를 주로 묘사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행은 만만치 않습니다. 로라는 어렵게 증강을 치료로 승인받아 새로운 팔을 달게 되지만, 이는 증강이 아니라 ‘몸에 대한 훼손’, ‘차라리 결함을 갖기로 선택한 것’이 됩니다.    

 

세 번째 팔은 오른쪽 어깨 부근의 근육과 신경에 연결되는데, 로라는 적응하지 못합니다. 팔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고, 신체 접합 부위를 덮은 인공 피부에는 계속 진물이 났습니다. 무거운 세 번째 팔 때문에 자주 균형을 잃었고, 염증으로 계속 고생합니다. 종국에는 원래 가지고 있던 팔마저 기능이 저하됩니다. 이러한 추이를 확인했던 담당의는 차라리 기계 팔을 떼는 것이 낫겠다고 조언합니다.      


세 번째 팔은 치료이자 증강 기술이었지만, 신체는 이물질에 적극 저항했습니다. 그럼에도 로라는 의사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세 번째 팔에 대한 감각의 강렬함이 진물로 인한 고통보다 더 강했기 때문입니다. 진은 《잘못된 지도》를 집필하는 여정 속에서 고유수용 감각 오류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다양한 이들을 만납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스스로 결함을 갖는 결정을 내리는 자’이기도 했습니다. 로라는 언 듯 보기에 증강된 사이보그처럼 보였지만, 실은 결함을 선택한 자가 되었습니다.     


한편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증강의 조건입니다. 그것은 강렬한 고통입니다. 잘못된 지도, 과잉 인지에 따른 심대한 고통입니다. 물론 기술이 발달하여 로라의 세 번째 팔이 좀 더 가벼워지고 유연해진다면 피부를 덜 짓누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향상된 기계 팔도 로라의 고유한 팔일 뿐입니다. 인간 1.0은 세 번째 팔에 대한 고통이 없습니다. 신체는 존재의 장이지, 패션 액세서리가 아닙니다. 증강은 매끄러운 연장이 될 수 없으며,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계획과 달리 숱한 굴절과 한계 속에서 현실화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따라서 증강의 실천을 위해서라도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이미 존재하는 포스트휴먼, 즉 포스트휴먼 조건으로서의 호모사피엔스를 살펴야 합니다. 즉, 소수자의 존엄과 가능성을 탐구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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