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의 거처(居處)
[독서 에세이] 임솔아의 『최선의 삶』을 읽고
-파국의 거처(居處)
<1> 망연자실(茫然自失)
소설의 마지막을 읽고 망연자실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소영도 그랬다. 아람도 그랬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떠나가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나는 이제 읍내동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읍내동을 벗어나고 싶었던 나의 소원도 이상한 방식으로 도래해 있었다.”(임솔아, 『최선의 삶』, 문학동네, 2015, 173)
최선의 삶이 파국이라면, 정말 최선이었을까?
<2> 세 친구
중학 삼 학년인 ‘나’와 소영과 아람은 각별한 사이다. 각자의 사연이 서로에게 애착을 갖게 한다. 하지만 이들의 배경에는 차이가 있다. 소설 속 무대는 대전 전민중학교다. 전민동은 원래 낙후된 동네였는데, 연구단지로 개발되면서 단번에 특별한 동네가 된다. 그렇게 탈바꿈된 전민동의 전민중학교는 연구원 자녀들의 학교가 되고, 대전 내 명문고 입학률이 가장 높은 곳이 됐다. ‘나’의 부모가 위장 전입으로 자식을 이곳에 밀어 넣은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읍내동 친구들 사이에서는 가장 비싼 건물에 사는 아이지만, 전민동 친구들 사이에서는 가장 가난한 동네에 사는 아이다.
친구 아람은 연구단지로 개발되기 전부터 전민동에 살았기에 자기가 진짜 전민동 토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학교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런 토박이가 외부인이다. 위장전입해 온 ‘나’는 아람이 자신 같은 외부자로 보였으므로 가장 먼저 친해진다.
친구 소영은 전민동의 주인이 된 이주자다. 부유한 집 딸이고, 공부도 잘한다. 무엇보다 예쁘고 키도 크다. 팔방미인인 소영은 자연스레 또래의 리더가 된다. 하지만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소영의 꿈이 전민중 영어 교사로 알고 있다. 그러나 소영은 그건 엄마가 쓴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진짜 꿈은 영화배우라고 한다. 그래서 어느 날, 대뜸 노는 무리에게 제안한다. “나 집 나갈 거다. 같이 갈 사람?”(29) 리더의 물음에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아람이 먼저 동조하고, ‘나’도 가기로 한다. 그런데 나(강이)는 왜 떠나려 할까?
<3> 가출
강이의 엄마는 기도를 열심히 하는 분이다. 하루는 집에 가보니 초 앞에 엄마가 엎드려 있고, 옆에 성적표가 있다. 엄마는 말한다. “마음이 아파서 죽을 것 같아.” 강이는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모는 사람이 되었다.”(58~59)
집은 만사가 학교 성적으로 요약되는 곳이다. 반면 밖은 먹어보지 못했던 크래커를 먹는 곳이고, 소주로 혀의 마비를 느끼는 곳이며, 네온사인이 꺼지고 도로에 차오르는 새벽 물안개 냄새를 맡는 곳이다.
소영은 자신의 꿈을 위해, 아람은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이는 밖이 집보다 좋아서 나간다.
하지만 오갈 데 없는 밖은 가혹하다. 매일의 생존이 풀어야 할 숙제가 된다. 가출 청소년들은 서울의 길거리에서 아저씨 혹은 오빠와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며 연명한다. 그 과정에서 아람은 성폭행과 사랑을 혼동한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으므로 청주로 내려가 집을 구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월세를 충당하기로 한다. 그렇게 가출의 사건이 일상이 되어가던 어느 날 소영이 선언한다. “집에 가자.”(79) 동료들이 뜨악해하자 이렇게 덧붙인다. “혼자서라도 집에 가겠다.” 가출을 선동했던 리더의 배신이었다.
<4> 귀가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 강이를 본 엄마가 주저앉는다. 강이의 손을 꼭 잡고 울기만 하던 엄마가 말한다.
“네 몸은 네 몸이 아니야. 네 몸은 엄마 몸이야. 엄마 몸으로 아무데나 가지 마.”(80)
돌아온 소영과 강이는 중간고사를 준비했고, 중간고사가 끝난 뒤에야 아람이 돌아왔다. 아람의 머리는 남학생처럼 짧아져 있고 몸은 구타의 흔적이 짙다. 돌아온 아람은 만사를 배신자 소영이 탓으로 여긴다. 함께 놀던 무리는 아람을 보호하기 위해 소영을 따돌린다. 소영이 아람을 배신하고 집으로 돌아간 이유는 부모가 백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투쟁의 결과, 영어 과외를 그만두고 모델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다.
<5> 갈등
소영을 따돌리기 위해 돌아가며 망을 보고 첩자를 붙이는데, 하루는 발각되어 사단이 난다. 소영은 첩자를 잔혹하게 구타했고, 맞은 아이는 입원 후 다시는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덩치가 큰 한 친구도 소영과 시비가 붙는데, 이 날은 소영이 도리어 작살이 난다. 작살난 소영이 강이의 집에 오지만, 강이는 없는 척한다. 그러지 말아야 했을까? 기도는 열심히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친구가 왔다며 인기척을 냈고, 강이는 모든 게 무서워 회피하고 만다.
무리의 승리는 일시적이었고, 소영의 잔인한 복수가 진행된다. 결국 덩치도 전학을 갈 수밖에 없다. 일이 이렇게 되자 패거리는 다시 소영과 어울린다. 흔들렸던 지위에 위기감을 느낀 우두머리는 작은 배신의 낌새에도 신경을 곤두세웠고, 적을 계속 만들어 짓밟는다. 강이는 이 파국이 아람과 소영의 갈등 때문으로 여겼기에, 아람에게 옛날처럼 지내자고 부탁한다. 다행히 아람은 알겠다고 한다. 강이는 이제 예전처럼 지낼 수 있겠다고 안도하는데, 소영은 이를 오해했는지 이렇게 말한다.
“왜 이간질해.”(104)
<6> 절교
강이는 오해를 풀고 싶지만, 소영에게 강이는 새로운 적일 뿐이다.
한 차례 싸움 끝에 소영은 강이에게 제안한다. “평생 나랑 싸울래, 한 번 무릎 꿇을래.” 강이는 굴욕감을 느끼지만, 그래도 모두 잘 지내고 싶기에 무릎을 꿇는다. 하지만 소영은 그 꼴을 혐오하며 도리어 강이를 잔인하게 때린다. 종국에는 절교를 선언하고, 무리의 애들에게도 선택을 강요한다. 아이들은 우두머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7> 어른의 방법
궁지에 몰린 강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에게 도움을 청한다.
다 알면서 모른 척 했던 선생은 강이가 피해자니까 특별히 선택권을 준다며 없던 일로 할지, 다 같이 자퇴할지를 묻는다. 위장 전입까지 들먹이며 고등학교 진학을 종용한다. 강이는 모두를 자퇴시킬 수 없었으므로 학교를 계속 다니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으로 강이는 전교생이 아는 밀고자가 된다.
밀고자는 학생들 곁에서 유일무이한 외부자가 되었으므로 식칼을 가방에 넣고 다닌다. 그런 그에게 아람이 찾아와 묻는다. “같이 가버릴까?”(132)
<8> 최선의 삶
두 번째 가출은 아람의 제안이었고, 아람이 소영이 아닌 자신을 선택했다는 점에 큰 위안을 얻는다. 그렇게 둘은 함께 서울 생활을 하는데, 어느 날 아람이 실종된다. 자신과 함께 모으던 계좌의 돈도 같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는 여전히 기도를 열심히 하고 계신다. 한 날은 엄마가 함께 기도하러 가자고 해서, 강이도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다가 기도 역시 기도 끼리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어떤 기도가 욕망대로 이길수록 어떤 기도는 무참히 지게 되어 있었다. 이것을 기도라고 할 수 있을까.”(163)
돌아 온 강이는 소영을 찾아간다. 소영은 강이가 쥔 식칼을 보며 비웃는다. 찔러보라며 자극하지만, 손이 후들거린다. 소영은 계속 찌르라고 명령했고, 병신이 되지 않기 위해 강이는 결국 전심을 낸다. 칼이 목울대를 자른다.
강이는 아람에게 전화를 건다. 걸어보니 집에 있다. 왜 자신을 배신했냐는 물음에 차에 치인 고양이 이야기를 한다.
강이는 자신이 벌인 일이 엄마의 새로운 기도거리가 될 거라고 짐작한다. 소영은 며칠 동안 사경을 헤맸지만 기적적으로 산다. 이 일 덕분에 사람들의 응원을 온몸에 받는 신인 배우가 된다.
강이는 살인미수자가 되었고, 아빠는 권고사직을 당했으며, 강이의 가족은 주민들의 항의로 동네에서 쫓겨난다.
이것이 최선의 삶이었다.
<9> 구원하는 이야기
망연자실하며, 이것이 정말 최선인지 묻게 되지만, 다행인 것도 있다. 바로 살인미수자가 된 것이 강이라는 점이다.
작가 임솔아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내가 쓴 글들이 대신 말해줄 것이다.’
『최선의 삶』은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간 작품이다. 임솔아는 가출소녀였고, 학교를 중퇴했으며 집 나온 친구들과 살았다. 작가는 자신을 그토록 끈질기게 따라다녔던 악몽 때문에 이 작품을 썼다고 말했고, 매듭을 지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고백한다.(177)
이야기는 한 개인을 구원한다. 그리고 그 구원의 이야기는 때로 널리 퍼져 복음이 된다.
“저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정상적인 성장과정을 전혀 거치지 못했어요.(…) 하지만 비정상이라고 하기엔 또 너무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비정상에 내몰린 아이, 그렇지만 평범한 보통의 아이, 자신의 마음속에 불씨가 있는 아이와 제 소설이 소통되었으면 해요.”(188~189)
강이도, 아람도, 소영도, 엄마도, 각자 책임이 있다.
최선의 삶이었다는 강이의 단언에 동의할 수 없다. 딸의 욕망과 고민, 상처를 모른 채 딸을 위해 기도할 수는 없다. 엄마는 딸을 위한 기도였다고 항변하겠지만, 실은 엄마의 기도였으므로 신은 기도 응답을 할 수 없었다. 강이와 아람과 소영은 자신의 우정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외면하지 말아야 했다. 각자의 욕망과 고민, 상처를 무시한다면 깊은 관계로 나아가기 어렵다. 우정은 마음의 진물을 보듬어줄 때 성숙을 이룬다. 소영은 파국의 정점에서 총망 받는 신인 배우가 되었다. 하지만 누구나 아는 배우가 될수록 학폭 논란으로 꼬꾸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임솔아의 세계에서는 이들의 삶이 최선이었기에, 탁월한 이야기로 남았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었으므로, “최선의 삶이 파국이라면, 어떤 다른 세계가 필요할지”를 계속 고민하며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