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에세이] 나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 것인가

—자미라 엘 우아실‧프리데만 카릭의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를 읽고

by 최우주

[독서 에세이] 나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 것인가

—자미라 엘 우아실‧프리데만 카릭의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를 읽고


쥐스틴 트리에가 연출한 <추락의 해부>를 봤다. 이 영화는 추락의 해부 끝에서 결심하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가 아니 떠오를 수 없었다. 자미라 엘 우아실과 프리데만 카릭의 공동 저술인 이 책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이야기’라고 답한다. 즉, 이야기하는 원숭이가 인간이라는 것이다.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는 방대한 저술이지만,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춰도 유효하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말할 때도 이야기로 한다. 이야기로 세상을 이해하고, 이야기로 세상을 바꾸며, 이야기로 관계 맺고 소통한다. 그뿐 아니라 이야기는 각자의 이해관계와 믿음 속에서 충돌하기 마련이므로 매번 새롭게 창안되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 <추락의 해부>는 아버지를 사망에 이르게 한 추락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는지를 고심하는 아들의 이야기다. 누구는 엄마가 죽였다고 하고, 또 누구는 자살이라고 하며, 또 누군가는 사고사로 본다. 살인 용의자가 된 엄마는 법정에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자신과 남편의 관계가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증언한다. 이 과정은 아버지가 전에도 자살시도를 한 바가 있음을 밝히는 것이었고, 또 아버지의 참담한 내면을 들쑤시는 것이었다. 소년은 부모의 관계가 파국이었는지도 몰랐고, 아버지의 내적 추락의 깊이도 알지 못했다.


가혹한 진실을 향해 전진하지만, 공백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법적 공방의 끝자락에 소년이 섰다. 그는 결정적 발언을 한다. 그 증언은 엄마를 구제할 수 있는 이야기였고,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가졌던 긍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소년의 이야기는 사실일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진실이 될 수 있었다. 엄마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아버지의 말로는 처참한 실패가 아니게 됐다.


나 역시 얼마 전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사실을 접했다. 나는 어릴 적 한글이 매우 서툰 아이였고, 그래서 받아쓰기 문제로 어머니에게 가혹한 체벌을 받으며 컸다. 그 경험은 큰 상처여서 이후 한글 텍스트를 혐오하고 대신 숫자의 세계에 몰두한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묘한 것이기에, 이후 한글을 너무나 사랑한 소녀를 만나게 되어 상처를 치유하게 됐고, 이 변화는 놀랍게도 지금 내가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게 했다.


이것이 내 성장의 서사였는데, 이를 들었던 하나뿐인 동생이 말했다.


“오빠, 받아쓰기는 내 이야기잖아?”


동생의 증언에 따르면 받아쓰기를 못한 것은 자신이며, 오히려 오빠는 잘했다는 것이다. 엄마 역시 동생과 동일한 증언을 했다. 그 말인즉슨 내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계기가 실은 착각이자 날조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있지도 않았던 사건에서 비롯된 상처가 나를 성장시켰다. 동생에게 감정이입을 강하게 했던 것일까?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사실보다, 이야기 자체다.


<추락의 해부>에서 소년이 말한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더라도 진실이 되어 자신의 정체성이 된다.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에서 저자들은 “좋은 이야기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20쪽)고 말한다. 이것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이야기의 힘에 대한 주장이지만, 개인의 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한 개인들의 사연이 묶여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가 거듭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는 각자의 더 좋은 이야기가 한없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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