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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은둔자 Feb 12. 2022

아버지와의 3박 4일

새해맞이로 들썩한 메시지들은 애초에 접어둔 채  

12월 31일 밤, 시골집에 갔다.


정확한 날짜 약속도 못 했는데

겨울에 올 손녀를 위해 트리를 꺼내 두고

그 밑에 작은 선물을 하나하나 모아 오신 아버지



큰 집에 아버지 혼자 남으셨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탓인지 허전함도 쓸쓸함도 덜하다.


어쩌면 그렇게 빈자리들은

반쯤 빈 물건들이 자리를 채웠는지도 모르겠다.

요새도 가끔씩, 자주 안 쓰는 건 시골집에 가져다 두라고 하신다^^;;


"금요일에 갈게요. 12월 31일."

한 2주 전에야 정확히 말했나 보다.


작년에는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었는데

올해는 아버지께서 초등학교 동창분들과 가볍게 보내신다고

먼저 알려온 통에 마음이 한결 가벼운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이 또한 자식들에게 부담주기 싫은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분들의 노력이라는 것을 안다.



Photo by Louis Hansel on Unsplash



아버지는 종종 외할머니가 없는 손녀딸이 가엾다면서

엄마가 자주 하던 음식들을 재현해 내곤 한다.


달걀프라이 하나도 해 본 적이 없던 분인데..

엄마는 마지막 힘겨운 투병 기간 동안

혼자 남을 아버지에게 이런저런 요리를 가르쳐주셨다고 한다.


엄마의 레시피는 엄마만의 감, 손맛이었을 텐데..

엄마가 옆에서 말로 읊으면

아버지가 실현해 내는 그런 시간이 꽤나 되지 않았을까 싶다.

솔직히 아버지의 음식이 내 것보다 낫다.



시골의 겨울은 왠지 더 춥고 쓸쓸하다



다음날 아침, 살짝 눈 내린 마당 위에서 눈썰매도 좀 타고

다 같이 <Wonder> 영화도 보고,

즐겨 찾게 된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꼬맹이는 스팀밀크)..

춥다는 핑계로 여느 때보다 야외 활동은 덜 했다.


어릴 적 나의 아버지는 우리 삼 남매를 부단히 데리고 다니셨다.

아버지 역시도 타고난 올빼미형인데,

매년 다른 곳에서 새해 일출 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정말 울고 싶을 정도로 끌려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ㅋㅋ


아버지의 의견에 늘 적극 동의하고 나서던 엄마도 신기할 따름이다.

애 셋을 키우면서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래도 늘 엄마는 행복해했다.


시부모님 모시고 사는 엄마에게 그런 시간이 아마

자유롭고 숨통 트이는,

온전히 내 새끼들과 즐기는 그런 순간이었겠구나!


내가 며느리가 되고, 부모가 되어보니

그때의 엄마가 다시 보인다.


시골집에만 오면 방바닥과 한 몸이 되는 우리 부부를

영 못마땅해하시는 아버지 마음을 나는 알고 있다 ㅎㅎ

평소에도 늘 주변 어딘가를 검색하고 탐색하고

손녀딸이 오면 데려가려고 계획하시는 분이니까:)






이틀 밤 정도 자고 나면

이제 아버지도 나도 좀 지치고,

아버지도 우스갯소리로 "너희 언제 가니?"

나 역시도 내 집이 몹시 그리워진다 ㅎㅎ  


그래도 이번에는 아이 방학이기도 하고

남편도 재택이라 큰 제약 없이 일을 하다

3박 4일을 끝으로 어제서야 다시 집에 돌아왔다.


특별할 것 없는 익숙한 공간이지만

주택에서 지글지글 끓는 방에 요를 펴고

세 식구 나란히 누워 자는 호사를 누렸다.


남편은 시골집에 가면 잠을 푹 자게 된다고 만족스러워하고

정말 잘 쉬었다는 말로 내 마음을 잘 매듭지어준다.



Photo by Toa Heftiba on Unsplash



2022년 1월 4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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