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r Jun 19. 2022

유럽 처음, 파리

메르시와 함께(19. 4. 8~)

유럽은 처음이라 오로지 이탈리아만 생각했던 일정은 주변의 온갖 추천 덕분에 여행을 일주일 앞두고 파리와 인터라켄까지 추가하는 복잡한 일정이 되었다. 이탈리아를 책과 블로그를 통해 최대한 디테일한 일정을 짰다면 파리의 경우 공항에 무사히 도착한다, 나비고를 끊어야 한다, 숙소를 잘 찾아간다, 만 생각했다. 이 정도의 마음으로 파리에 가기 위해 마르코폴로 공항으로 향했다.


여행에서 긴장되는 순간들이 종종 발생한다는데, 내 경우엔 로마에 도착해 숙소까지 찾아가는 밤길 다음으론 낯선 나라의 공항에서 낯선 나라로 이동하던 순간이 가장 땀이 났다. 관광지에서 그렇게 많이 보이던 한국 사람들이 어느샌가 보이지 않았고 주변은 온통 외국인에, 한 시간이 지나도 보딩 타임이 뜨지 않는데도 어떤 안내 방송도 들리지 않아 멘붕의 상태로 나와 같은 티켓을 들고 있던 노부부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다행히 두 시간 만에 게이트가 열렸고 승무원이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비행기를 내리니 탈 때는 보이지 않던 한국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해 그들을 따라 교통권을 끊을 수 있는 곳까지 갔다. 여러 대의 티켓 머신 같은 곳에 어마어마한 줄들이 이어졌는데, 나는 도저히 기계를 이용할 자신이 나지 않아 인포메이션으로 향했다. 인포메이션이 안쪽에 있어서였는지, 다들 기계가 더 익숙한 건지 모르겠지만 인포메이션의 대기줄이 훨씬 짧아 빠르고 정확하게 교통카드인 나비고를 만들 수 있었다. 여행 중 만났던 분들이 나비고에 사진 붙이는 걸 깜빡해 이동 중에 벌금을 물었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친절하게 교통카드에 내 사진을 붙여주고 굿! 하며 이름을 적어주던 인포 직원이 생각났다. 지금 생각해도 인포메이션을 이용하길 잘했다.


어떻게, 어떻게 숙소를 찾아가 체크인을 하고 일주일 동안 밀려있던 빨래를 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시간이 벌써  여덟 시였다. 비행기 타고 날아와 숙소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하루치 체력이 바닥났다. 파리 첫날을 이대로 마무리할까 고민 중에 파리는 지금이 피크타임이라며 그 유명한 에펠탑 한 번은 보고 와야 되지 않겠냐는 숙소 사장님의 가벼운 말씀에 뭐에 홀린 듯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왔다.


빨래를 돌리며 찾아봤던, 다음날 타려고 했던 유람선을 타기로 하고 선착장을 찾아갔다. 밤의 파리는 아무래도 무서워 겁먹었는데, 나의 몰골이 너무나도 처참해서인지 어떤 호객행위도 겪지 않고 안전하게 선착장에 도착해 유람선에 올랐다.


내가 탔던 유람선은 바토 파리지앵이었는데, 안내에 따라 휴대폰 와이파이를 켜고 언어를 한국어로 맞추자 유람선의 이동에 맞춰 파리 시내에 대한 오디오 가이드가 시작됐다. 유람선이 출발하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졌다. 아홉 시의 에펠탑이 승선을 환영하듯 반짝이고 있었다. 검은 강물 위로 빛나는 에펠탑을 뒤로 두고 나는 느릿한 유속을 느끼며 파리의 물결 속으로 흘러갔다.


센 강에 놓인 다리를 통과할 때마다 다리 위의 사람과 아랫사람들의 환호성이 이어졌다. 내가 탄 유람선의 승객들의 분위기가 좋았던지 출발했을 때 터졌던 환호성이 재미 섞인 웃음소리와 함께 마지막 다리를 지날 때까지 이어졌다. 어색해서 더 잘 들렸던 오디오 가이드와 그들의 웃음소리가 배경음처럼 들렸다. 파리의 반짝이는 야경보다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한 이들이 한 배를 타고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는 순간이 더 낭만으로 느껴졌다.


유람 끝에 기다리고 있는 열 시의 에펠탑과 함께 파리의 첫날이 기분 좋게 마무리됐다. 내게 파리는 친절과 함께 기억될 것 같다. 못 알아듣는 영어로 길을 묻는 내게 역명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길안내를 도와준 공항직원과 퇴근시간의 지옥철 속에서 민폐가 되어버린 내 캐리어를 말없이 잡아준 청년의 미소가 너그러웠다. 지하철 문이 열릴 때마다 길을 비켜준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메르시가 정겨웠고 셀프빨래방의 건조기 앞에서 바보가 되어버린 내게 1,2,3 스텝으로 기계 작동법을 알려준 아저씨의 목소리가 친절했다. 매서운 찬 바람 속에서도 서로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야경을 즐기던 관광객들은 여유가 넘쳤다. 그렇게 내게 파리는 친절로 남았다.


밤의 에펠탑



매거진의 이전글 유럽 처음, 베네치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