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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인 Feb 07. 2023

시어머니와의 전화는 언제나 배틀이다

"띵두댕뚱~"


시어머니: 여보세요오-

나: 어머니~ 잘 계시지요~?


2주 만의 전화다. 주일에 한 번은 전화하려고 알람까지 맞춰놨지만 한국-캐나다 간 시차로 자주 전화를 못 드린다.


그래~ 너거도 다 잘 있재~ 니 마침 전화 잘했다. (갑자기 속삭이며) 야야... 니... 조용한 방에 가서 전화 좀 받아봐라.

네... 지금 옆에 아무도 없어요...

그래, 너그 아부지가 '아이쑥' 알아봤다 아이가. 내 그거 좀 보내주까. 너그 아아들이 생각나서.


* 아이쑥커 = 키성장 기능을 인정받았다는 황기 추출물과 홍삼 성분이 원료에 포함된 건강기능식품

시아버지가 우리 애들이 먹을 성장 보조제를 알아보셨다는 건데, 이 쪽 분야로 말할 거 같으면 내가 빠꼼이다.

  

아휴! 어머님... 그거 효과 별로 없대요... 그냥 영양제래요...

그르나... 나는 네가 하도 걱정을 해 샀길래...


시아버지의 키 175 정도, 시어머니 키 165 정도... 본인들이 키가 큰 편이었기 때문에, 아들이 키가 빨리 안 커도 나중에 크겠지 하고 손 놓고 있었던 게 너무 후회된다고 하셨었다. 이제는 손자도 부모를 닮아 체구가 작은 것이 영 마음이 쓰이시는 거다. 10년 전 내가 입도 안 벌리는 첫째에게 억지로 이유식을 밀어 넣는 것, 내가 한약 해먹인다고 동네방네 쫓아다니는 것을 보고 말리지도 못하고 안타까워하셨다. 애들 키로 애달복달하는 며느리에게 가장 감정이입된 사람은 시어머니다.


야야, 니 걱정하지 마라. 아아들 좀 작으면 어떤노. 우리 동수(=내 남편)는 작아도 스트레스 안 받고 늘 당당했어.

흐흐흐... 우 애들도 스트레스 안 받아요. 저는 애들 스트레스 안 줄 거예요. 저는 한국 가면 애들 공부도 많이 안 시킬 거예요.

니 잘 생각했대이. 니도 알다시피 우리 동수 키는 작아도 공부는 젤로 잘했잖아. 다른 집 아들 전부 코피 터져가 공부해도 우리 동수는 마, 9시 딱 되면 불 끄고 누웠는데 시험은 지가 더 잘 봤다 아이가. 너거 아아들도 똑똑하니까 공부 안 시켜도 좋은 대학 갈끼다.


음... 공부 안 시키고 명문대 보내겠다는 뜻이 아닌데... 문대 못 가도 되니까 억지로 공부 안 시키겠다고 말한 건데... 우리 사이에 오해가 깊다.


니 알재? 희자 아들 병수. 갸는 지금 키는 180 멀대 같이 해가, 즈그 엄마가 갸 공부시킨다고 그마이 뒷바라지 했는데 고마 공무원 때려치더니 지금 작가 할끼라 칸다 아이가... 엄마는 지금 천불이 난다.


으응? 공무원을 관두고 글을 쓴다고? 완전 멋진데?


그래, 들 영어는 이제 많이 늘었다면서?

영어야 많이 늘었죠... 겨울이는 요즘 프랑스어도 엄청 늘었어요. 시키지도 않는데 그렇게 열심히 하네요. 재밌나 봐요.


우리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마인크래프트다. 그래도 프랑스어를 열심히 하는 건 맞다. 마인크래프트가 굉장히 훌륭한 게임인 것도 사실이다.


나도 우리 동수 공부 잔소리 한 번 한적 없다 아이가.

저번에 학교 상담 했었는데요. 선생님 말로는 겨울이가 학교 생활도 참 잘한대요 어머님. 친구들이랑도 잘 지내고요. 수학은 제일 잘해서 별명이 매쓰 보이래요 어머님.

아이고 그래? 즈그 애비가 수학을 그래 잘했다. 원래는 국어도 잘했는데, 수학을 하도 잘해가 공대를 갔잖아. 우리 동수는 법대 갔어도 잘했을끼다.


끙... 기승전 동수.



시어머니 고향 계모임에서는 자식 자랑하려면 전부 만원씩 내놓고 해야 된다 했다. 멤버들이 대부분 자식에 손자손녀들까지 줄줄이 있으니, 전부 한 마디씩 하면 시간이 남아나질 않기 때문이다. 어쩌다 슬쩍 숟가락을 얹어도 다들 남의 집 얘기엔 시큰둥하기 마련이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계절마다 바꾸는 카톡 프로필에, 친구들에게 괜히 질문인 척 던지는 말에 애들 자랑이 슬그머니 배어 있을지언정, 대놓고 떠들진 못한다.


은근하지 않게 직접, 시간을 무제한으로 걸고, 마이크 들고, "제가 애들 잘 낳고 잘 키웠지요?" 해도 되는 사람은 역시 핏줄이다. 흉은 가리고 잘난 점은 부풀려도 언제든 박수만 쳐줄 사람, 할아버지 할머니뿐이다. 자식 뒷바라지에 평생을 쏟은 희생의 아이콘 시어머니에게도, 나는 그런 존재일 것이다.


그래서 나와 시어머니의 통화는 언제나...



... 서로 '자기 자식 자랑' 배틀로 끝난다.


참, 겨울이가 어제는 아빠도 어렵다는 주식 책을 읽대요! 부자 될 건가 봐요!








아들 보온병 뚜껑이 고장 나서 오늘 새로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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