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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인 Apr 06. 2023

시한부 미식가의 저녁상


코스트코 진열 냉장고 안에 시커멓게 쌓여 있는 홍합 더미가 내 발길을 붙잡았다. '대서양 PEI 산'이라 붙은 스티커를 보고 냉큼 사 왔다. 껍데기 안에 속살이 든 해산물은 무조건 맛난 데다 자연산이니까. 싱크대에 부어보니 생각보다 양이 많고 비린내가 전혀 없다. 대신 철수세미로 따개비를 박박 문지르다 보니 철 냄새가 올라와, 껍데기끼리만 대강 비빈 후 채로 받쳐 헹궈냈다. 오늘 저녁 메뉴는 홍합찜.




10년 전 산후우울증 대신 '방사능 포비아'를 겪었다. 조리원에서 나온 지 얼마 후였는데 동일본 대지진이 터져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이어진 때였다. 원래 건강, 안전 문제에 무신경했던 나는 엄마가 되고서 180도 다른 사람이 되었다. 방사능 내부 피폭의 위험성을 알고 겁에 질린 것이다. 지뢰밭처럼 펼쳐진 한반도 원전 지도와 그 위에 겹친 진앙지 분포도를 보니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곤히 잠든 아기 얼굴을 들여다보며 웃다가도 왜 이런 세상에 연약한 널 낳았나 자책했다. 나는 멸치와 소금 몇년치를 사재기하고 더 이상 장바구니에 해산물을 담지 않았다. 시댁에서 보낸 기장 미역은 몰래 버렸다. 일식집 회식 때는 안주빨을 못 살리고 소주만 마시다 제일 빨리 취했다. "그렇게 따지는 게 건강에 더 나쁘다"는 비난이 사방에서 들렸다. 아는 건 병일까, 힘일까. 


방사능 공포에서 한 발짝 빠져나온 건 얼마 후 '초미세먼지 경보'가 울리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수도권 전체가 스모그로 뒤덮이는 날이 이어지고 삼한사미란 말이 일상화됐다. 화가 난 대기질 앱을 볼 때마다 먼 나라 이민을 갈망했다. 초미세먼지의 주범이 고등어라는 헛소리가 뉴스에 버젓이 나오던 그 무렵, 우리 집 식탁에서는 다시 고등어가 주인행세를 시작했다. 걱정은 또다른 걱정으로 이겨지는 걸까.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아파트 단지 건너편에서 대규모 재건축이 발표되었다. 철거 과정에서 '석면'이 날린단 말에 이번엔 동네 전체가 동요했다. 석면은 악성중피종(생존율 10% 미만의 급성 질병)의 주원인이라 '침묵의 살인자'라 불린단다. 애들이 놀이터에서 발암물질을 마실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자다가도 벌떡 눈이 떠졌다. 이제 이민 대신 이사를 고민해야 하나. 하지만 곧 아파트에 비대위도 생기고 플래카드도 나붙고 공청회가 이어져 나도 참여하며 이사를 보류했다. 그때는 정치인들이 모두 미웠다. 내가 항의 문자를 보냈던 구의원 한 명은 당시에는 내 문자를 다 씹더니, 내 개인정보는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건지 아직도 내 생일만 되면 남편보다 더 빨리 축하를 해준다. 석면같은 놈. 공사는 드디어 끝났고 이제 본격적으로 새 건물을 올리나보다. 그래도 그때 석면 조례 통과 등 소기의 성과가 있었으니, 우리의 행동이 의미 있었다고 믿고 사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어쩌자고 애를 낳겠나


요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가 연일 뉴스에 오르락내리락한다. 해마다 봄만 되면 간을 보던 일본이 올해는 진짜 오염수를 쏟을 태세다. 대비책은 안 보이고, 방사능 포비아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가스라이팅만 보인다. 아! 이런 세상에서 어쩌자고 애를 낳겠나. 나처럼 언제든 해산물을 끊을 준비가 된 사람들이 많으니, 생계가 걸린 수산업 종사자들은 또 얼마나 분통이 터질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에서 절대악조부 투바키가 한 말이 생각난다. "전부 다 부질없다고 생각하면 기분 좋지 않아?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했다는 괴로움과 자책감이 사라지잖아." 존재 혹은 함께 한다는 것의 소중함을 말하는 영화였던가, 하지만 난 오히려 이 우주 빌런의 대사에 기대고 싶다. 다 같이 망할 거라고 생각하면, 귀찮고 골치아픈 일은 외면한 채 그냥 엎어져 자도 그만이니까. 하지만 오염수가 전 세계 바다를 도는 동안 시간을 좀 벌 수 있다면, 그전에 인류를 구할 히어로가 나타나거나 새롭게 정착할 에드먼즈 행성을 찾으면 더 좋겠다. 그전까지는 에블린처럼 엉망인 세상에서 부족함을 조금이라도 메울 다정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마늘, 양파, 고추를 잘게 잘라 넣고 화이트 와인과 물을 붓고 휘휘 몇 번 저은 후 홍합을 쏟아부었다. 벌써부터 입을 열려고 하는 홍합을 모른 척하고 뚜껑을 닫았다. 잠시 후 뚜껑을 열자 냄비에 고여 있던 뜨끈한 김이 확 뿜어 나와 내 얼굴을 하얗게 덮었다. 포동하게 익은 살을 날름 다 빼먹고 남은 달달한 육수에 파스타를 넣었다. 면에 간이 배기를 기다리며 남은 와인을 한잔 홀짝인다.


맛있는 걸 먹고 배가 부르니 성난 마음도 조금 풀린다.

먼 훗날 아이들은 감칠맛을 추억이라 부르겠지.

힘들 땐 맛있는 걸 먹자.

당장 걱정을 달래주는 건 더 큰 걱정이 아니라 포만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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