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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인 Apr 28. 2023

왜 한국에 돌아가세요?

자전거를 타는 상상


학교 종이 울리고, 아이는 건물을 빠져나오자마자 내게 책가방을 노룩패스한 후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달리기 시작한다. 오늘 처음 보는 친구의 엄마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대화를 나누다 괜한 기대를 품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우리 가족은 곧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밝혔다. 그녀는 이렇게 살기 좋은 나라를 떠나는게 이해가 안 된다는 눈치였다.


왜 한국에 돌아가세요?

돈을 벌기 위해서요.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하셨는데요?

IT 쪽인데 지금은 휴직 중이에요.

그 분야라면 캐나다에서도 쉽게 직업을 찾으실 텐데요.

음... 글쎄요...

캐나다가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나요?


한국 회사 15년 경력이 있지만 내 영어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냉정하게 보면 단순히 언어의 문제아닌데 한 직장에서만 그것도 비슷비슷한 부서에서 탁상공론만 한 경력이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된 들 한국에서라고 팔릴까 싶다. 한 마디로 난 지구촌 이직 시장 어디에서도 경쟁력이 없다(처절). 난민 수용 프로그램으로 캐나다에  그녀에게 안과 빈곤의 이슈를 넘어선 이민의 선택과 혹독한 자기 인식을 묶어 설명하기에 역시 내 영어는 너무 짧았다(분노).




한국에 돌아갈 직장과 집이 있는 형편에 사뭇 감사하며 지내왔다. 여기서 드러운 꼴을 겪어도 "내년에 한국가면 되니까"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남편과 아이들도 처음에는 한국을 더 좋아했던 것 같은데, 우리는 캐나다의 장점보다 단점을, 한국의 단점보다 장점을 더 과장해서 느끼는 축복(?)을 누린 듯 하다. 캐나다 생활은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컸고, 외국에 나오니 생각보다 한국의 위상이 높았고 국내 문제들은 먼발치에서는 흐릿해 보여서 였을까.


그러나 귀국일이 가까워지면서 모두 조금씩 동요하는 것 같다. 요즘 딸아이는 캐나다에서 살고 싶다며 밤마다 운다. 아들은 저항이 덜한 편이지만 벌써 (초등학생인데) 군대 걱정을 시작했다. 남편은 기러기 부부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며 원한다면 캐나다에 남아 아이들을 키우라고 얘기한다. (심지어 2~3년을 생각하고 온 지인도 계획을 바꿔 영주권 전문 법무사를 만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한국에서 살고 싶다. 내 나라가 더 좋다. 아침 댓바람부터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


자기가 캐나다에서 애들 키워.
내가 한국에서 돈 벌게.


뭐???

아빠가 돈 벌고 엄마가 애 키우라는 법 있어? 애들하고 나만 사는 건 서로 안 좋아. 맨날 싸울 테니까.


나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는 편이다. '왜 나만'을 돌림노래로 부르는 억울병 환자로서, 독박육아를 하게 되면 온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풀 것이 뻔하다. 이 말을 꺼낸 것도 '복직하면 애들 저녁밥은 어떻게 하지, 또 이모님을 구해야 되나' 같은 궁리에 남편이 남 일 보듯 하는 게 얄미웠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방관'이 아니라 '역할 분담'이라 할 것이다. 내가 맞벌이 백업 시스템을 설계해 놓으면 남편은 그에 따라 주어지는 역할을 최선을 다해 수행한다. 나는 남편이 설계에도 동참해 주길 바라는 것이고.)


난 퇴직금이 없어서 안돼.

우리 회사는 퇴직금이 수억 인 줄 알아? 내가 오피스텔 살고 우리 집은 월세 주고 거기에 내 월급까지 부치면 되잖아.

음 그렇게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고...


나의 급진적인 제안에 남편은 수비수가 된 듯하다. 어차피 호응을 기대하고 꺼낸 말은 아니란 걸 남편도 못 알아차릴 사람은 아니다. 




산책을 하며 몇달째 반복 중인 질문을 다시 떠올린다. 어른의 희생을 딛고서라도 애들한테는 캐나다가 더 좋은 나라일까? 그게 이산가족의 먹먹함을 극복시켜 줄 만큼 가치 있는 선택일까? '소멸하는 한국', '병든 청소년들', '위기의 한국경제' 같은 추천영상을 오래 외면해서 내가 현실 감각이 없는걸까? 굳이 멀리 안가도 회사에서 시달리고 막상 퇴근 후에는 가족들에게 살벌했던 그때를 떠올려보자. 난 반복할 준비가 되었나.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호주로 이민 간 계나의 이야기다. 나는 주인공 계나가 아니라 그 친구 미연과 은혜 같다. 미연은 한국 회사 거지 같다며, 은혜는 시어머니가 말이 안 통한다며 신세한탄하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모색하지 않는다. 기존 생활이 주는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다. 한 회사에서 비슷한 일만 계속한 것도 결국 그 익숙한 것이 주는 편안함 때문이었다. 소설에서 소개된 '추위를 싫어하는 펭귄' 파블로는 산전수전 끝에 결국 따뜻한 하와이에 도착한다. 나도 추운 걸 싫어하지만, 항해가 언제 끝날지 그때까지 배에서 어떤 고생을 할지 모르는 게 더 싫다. 차라리 겨울 스포츠도 배워가며 추위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게 내 스타일에 맞는 것 같다. 다르게 말하면, 나는 결국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선택하는 것이다. 


우연히 작년 초부터 버릇들인 습관은 미련 많은 나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나는 밤마다 꽤 잘 살아가는 내 모습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그리며 잠에 든다. 가장 자주 떠올리는 이미지는 아파트 거실 한 켠에 만들 나만의 공간이다. 폭신한 의자를 두고 따뜻한 스탠드를 밝힐 곳. 나는 올여름 진짜 그 공간을 만들어 아끼는 소품들, 박완서와 김애란의 책과 추리소설들로 가득 채우고 싶다.


최근에 시작한 상상은 자전거 출근길이다. 운동화와 바지 차림의 나. 빨간 자전거에 올라 타 슬슬 페달을 밟는다. 출발할 때는 아파트 단지 안이니까 천천히. 내리막길이나 코너에서는 빡 긴장이 되지만 언젠가는 능숙해질 것이다. 자신 없는 길은 그냥 자전거를 끌고 걸어야지. 도롯가부터는 수시로 신호가 걸리니 숨이 찰 때쯤 쉴 수 있다. 반 이상 가까워지면 속도도 붙고 허벅지가 부서질 듯 열도 오른다. 회사 앞에서 자전거를 잠근 후 회전문을 열고 들어가며 사람들에게 아는 척을 한다. 땀을 안 흘리는 체질인데, 이쯤이면 땀이 날는지 모르겠다. 땀냄새가 별로 불쾌하진 않기를 소망해 본다.


얼마 전 여행에서 돌아오니, 그래도 집이 편하고 좋지 않냐며 시누이가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니, 아직도 여행 중인 기분이야. 서울로 가야 진짜 집이지."


이제 곧 집으로 간다.


날 기다리는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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