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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의 서재 Nov 28. 2020

나, 너, 세계를 만나기 위한 기나긴 여행

서평 시리즈 #76 :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채사장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가 이 세계에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

인류가 사고라는 것을 시작할 수 있었던 그 순간부터, 삶의 문득의 순간마다 찾아오는 이 질문에 닿는 존재는

아마,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아마, 닿지 못하리라 생각된다고 하여 닿으려 도전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리라는 사실이다. '나'는 누구일까.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존재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되풀이되는 질문에 답을 찾고자 노력한 자들은 저마다 타인은 미처 떠올리지 못한 생각의 가지를 만들었다.

그 가지에는 본연의 질문인 '자아'에 대한 인식부터, 무엇이 '자아'를 행복하게 만든가에 대한 고민,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타인과의 관계, 마침내 나와 타인이 함께 어우러져 만드는 세계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나'와 '너'는 언젠가 만난다. 나와 너는 언젠가 만나 세계 속의 작은 부분을 이룰 것이다. 또 다른 나와 너의 집합들은 무수히 많은 세계를 만든다. 너와 나는 또 다른 너와 내가 만든 세계를 만난다. 그 세계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나'의 존재 이유는 '나'를 만나고 '너'를 만나 물리적인 세계가 아닌 나의 관념 속 '세계'라는 대상을 만나는 긴긴 여행이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는 우리 시대에 가장 돋보이는 인문학 작가 중 하나인 채사장의 저서이다. 맞춤법도 모르는 소년은 고등학생이 되어 '시'를 지으며 언어의 세계에 빠져버렸다. 애매모호한 단어들의 집합을 덜고 덜고 덜어 내어 우두커니 남아 있는 몇 개의 시어로 만드는 시의 매력은 그를 관념적인 세상에 대해 탐구하게 만들었다.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개념어들을 '학습'하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뿌듯함을 느꼈지만 '이해'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함께 병행했던 하루 한 권의 독서를 통해 생각의 외연이 한껏 확장된 후 어느 날 문득 찾아온 '이해'는 그를 사람들에게 '생각'이 무엇인가 전해주고자 마음먹게 만들었다.


덕분에 그의 책은 어렵다. 한 글자 한 글자를 눈에 담을 때 마음에 피어나는 추상적이고, 추상적이기에 두근거리게 만드는 그의 글은 분명 마음을 뜨겁게 만든다. 누구나 마주하는 고민에 대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헨젤과 그레텔을 꾀려는 마녀의 과자 조각들처럼 그의 글자를 따라가다 보면 해답이라는 과자집이 보일 것만 같다. 생각해보면 마녀의 과자 조각이 이끈 곳은 기껏해야 어린아이를 현혹시키는 과자집이었던 것처럼 저자는 자신의 글을 따라오기만 해서는 과자집에 이를뿐이라 얘기한다. 인문학 책을 줄곧 써왔던 작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매력적인 단편의 '대하여'라는 이야기집을 통해 저자는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나', '타인', '의미', '도구', '세계'라는 거대한 키워드와 그 아래의 각각의 이야기를 어떻게 머릿속에서 연결해야 할지부터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보는 세계는 나의 눈앞에 실제로 펼쳐져 있는 것일까, 어쩌면 머릿속에 그려져 있는 대상은 아닐까. '나'라는 존재가 실재의 세상을 인지하는 방법부터 '타인'의 세계가 '나'의 세계에 스며 오래도록 그 향취를 남기는 점은 일상을 생각게 한다. 이별은 지독한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각자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떠나간 사람의 세계라는 '자리' 그 자체와 오카리나를 통해 우리는 일상을 '타인'이라는 세계로 생각해보게 된다.


생각의 외연은 점차 넓어진다. '나', '너', '세계'. 단 3단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로서 그들이 지니는 의미를 생각해봐야 하고, 의미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의미 자체를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여 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지만 되려 가능하다면 수십 번이고 다시 생각하고픈 즐거운 시간을 이끈 고민이었다.


'~에 대하여'라는 간단하고도 명료하면서도 추상적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과자집'에 도달한다. 저자가 나름의 생각으로 도달한 자신의 결론. 우리는 우리가 무엇이고 왜 존재하는가를 질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 그 질문을 통해 우리는 사유하게 되는 것이다. 끝내 다다를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를 질문하고 존재에 대해 고민하며 마음의 외연을 넓히는 것. 허나 장구한 글의 뒤에 나타나는 몇 단락의 짤막한 결론은 과자집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당신만의 세계를 만나라는 것. 존재라는 단어를 고민하다 보면 마침내 만나게 될 나, 너, 세계, 그들을 만나기 위한 여행을 시작하라는 것이 저자가 우리를 만나는 방법은 아니었을까.


나, 너, 세계, 단 3단어를 만나기 위한 기나긴 여행,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웨일북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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