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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 Nov 29. 2022

만나본 작가, 작가 채지민

작가 채지민 <걷고 멈춰서서 바라보다>

채지민 작가의 그림 속 인물이 걷고 멈춰서서 바라보는 세계는 뭔가 이상합니다. 평면성과 공간감. 이 두가지 상반된 느낌이 하나의 캔버스에 동시에 존재하며 이상한 세계를 만들어 내죠. 자꾸만 들여다 보고 싶고 궁금한 채지민 작가의 이상한 세계의 시작은 무엇이었을까요?


편집/이미지 '마니' , 디자인 '임그노드' , 디렉팅 '해리'  





이상한 세계에 들어서며  

사진 모두 아뜰리에 아키 제공

Q) 자신을 소개할 때 ‘이상한 장면을 만드는 작가’라고 소개하곤 하시죠. 평면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공간감’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일까요?

이상하면서 애매모호한 경계에 있는 장면을 그리는 걸 좋아해요. 그런 애매모호한 경계에 놓여진 상태가 저라는 사람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이런 방식의 작업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어요. 10년 전쯤, 평면성과 공간감의 특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지점을 찾는 작업을 시작했고 점차 확장되어 현실과 비현실, 자연과 인공적인 것처럼 상극 사이 어떤 중간에 있는 상태를 추구하는 자신을 발견했죠. 의도적으로 지금의 세계를 만든 게 아니라 점차 제가 그리고자 하는 것이 확실해졌고, 작품의 방향성이 저라는 사람의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Q) <걷고 멈춰서서 바라보다> 에는 실제 인물이 그림에 등장하죠. 이상한 세계를 배경으로 하지만 실존하는 패션 브랜드와 모델의 협업이기도 해요.

보통 패션 브랜드와 아티스트가 협업할 경우 옷의 디자인에 아티스트의 작품이 활용되는 방식을 브랜드에서 제안하지만 이번 전시는 제가 패션 브랜드 쿠어(COOR)와 제임스 리 맥퀸(James Lee McQuown)에게 협업을 제안했어요. 보통은 작업에 그릴 인물을 선택할 때 지금까지 촬영해 둔 인물들 중에 선택하곤 했어요. 사진 속 인물들을 굉장히 단순화시켰죠. 제 그림의 어떤 심상에 맞추기 위해 단순화했고 컬러감도 다 없앴어요. 하지만 평소 좋아했던 쿠어의 옷은 디자인 자체가 미니멀해서 그런 작업을 거칠 필요가 없었죠. 모델인 제임스 리 맥퀸은 10년 전부터 봐왔어요. 언젠가 한번쯤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해왔고 흔쾌히 제 제안을 수락한 덕분에 이번 전시를 완성할 수 있었죠.


Q) 그 동안의 작업 방식과는 다른 식의 과정이 있었을 것 같아요.

브랜드와의 협업이긴 하지만 의상이 부각된 작업은 아니었어요. 모든 그림에는 쿠어의 착장을 입은 제임스 리 맥퀸 한 명만 들어간 다는 것이 기본 콘셉트였고 실재하는 인물이 제가 만들어낸 이상한 구조가 놓여 있는 인위적인 풍경을 배회하고 여행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전시를 준비했어요.


Q) 특정 착장이나 모델이 없이도 작품은 충분히 완성될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협업을 제안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어떤 강박 같은 게 있어서 작업을 위한 모든 과정과 소스가 작품과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길 바라요. 예를 들어 제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동작들을 대단히 연출하지 않아요. 전시 제목처럼 걷고 멈춰서서 바라보는 정도죠. 하지만 막상 구조를 만든 후 인물을 선택하려고 하면 딱 그 구조에 존재할 것 같은 인물을 찾기가 힘들어요. 모델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어도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혹은 동작이 마음에 안들 때가 있죠. 그렇다고 인물이 원래 가진 것들을 바꾸면 ‘오리지널티’가 훼손되는 기분이고요. 완벽한 소스로부터 작품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협업을 제안하게 되었어요.




채지민 세계의 시작  

사진 모두 아뜰리에 아키 제공

Q) 지금의 이상한 세계는 어떻게 시작된 걸까요?

대학에서 미술을 할 때는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 지 답을 쉽게 찾지 못했어요. 테마를 정하고 그테마를 그림에 적용해 말로도 작품 내용을 잘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저와 어울리지 않는 내용을 넣을 때도 있었죠. 그런데 그때도 ‘이상한’ 걸 그릴 때면 즐거웠어요. 그때 한 교수님이 캔버스에 물감을 찍는 과정에서 형식적인 고민이 분명 있을 것이며, 어떤 내용을 담으려고 하지 말고 물감을 칠할 때 느낀 고민도 작품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죠. 그림을 그리며 느낀 것이 곧 주제인 건데 저는 자꾸 그림을 그리고 내용을 넣으려고 한 거였어요. 그리고 교수님의 ‘어떤 이야기든지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한 문장에 담아 설명해.’라는 말씀이 지금까지도 제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죠.


Q) 평면성과 공간감이 처음으로 하나의 캔버스에 존재했던 때의 그림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해요.

배경보다는 인물을 정말 많이 그렸어요. 흰색 배경으로 인물이 확 튀어나올 것 같은 입체감이 느껴지도록 작업했죠. 이상한 괴리감이 좋았어요. 그런 그림을 그리던 어느 날 타워 크레인 뒤로 파란 하늘이 보이는데 하늘의 공간감이 크게 다가왔어요. 그 경험을 하고 제 그림을 보는데 흰색 배경이 깊은 공간으로 느껴지고 정말 입체적으로 열심히 그린 인물이 껍데기가 되어버린 느낌이 들었죠. 분명한 평면이지만 깊은 공간감이 느껴지는 괴리감을 표현하려고 한 것이 제 작업의 시작이예요.


Q) 지금의 작품 세계를 시작한 지가 10년이고, 그 세계를 찾아가기까지 10년의 시간이 또 있었죠. 그 길을 찾는 동안 그림을 대하는 생각이 바뀌었나요?

그림은 늘 좋았어요. 다만 그림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죠. 제가 그리고자 하는 방향이 결정되기 전에는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어요. 그림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지만 그때는 어떤 각각의 요소들을 명확하게 사람들에게 설명하지 못하면 그림도 그릴 수 없었어요. 설명할 것들을 먼저 예상한 다음 그림을 그렸죠. 그러다 낯선 환경으로 유학을 가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워졌어요. 설명할 필요 없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렸어요.


Q)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기까지 가장 즐거운 순간은 언제인가요?

가장 즐거울 때는 완성의 순간, 그리고 두 번째는 구상이 끝난 순간. 그림을 그리기 전 치밀하게 계획하고 컨트롤해요. 구상한 것 거의 그대로 그림으로 그려요.


Q) ‘완성’이라고 여기는 지점은 작가마다 다를 것 같아요.

제가 존경하는 작가 중에는 완성의 지점을 정하지 않고 계속 쌓아가는 분들도 있어요. 쌓고 쌓아 가다 어느 지점에서 멈추죠. 반면에 저는 완성의 지점이 명확하게 있어요. 구상했을 때부터 계산되어 있죠. 완성에 대한 계획이 날짜까지 나올 만큼 정확해요. 그리는 시간 보다 구상하는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려요. 구상에 확신이 서지 않으면 일단 지켜봐요. 한달 정도 지켜볼 때도 있어요. 그렇게 지켜보며 구상이 바뀌기도 하고 아무리 들여다 봐도 계속 좋을 때도 있어요.




다음 세계  

사진 모두 아뜰리에 아키 제공

Q) 작품에 대한 관람객의 해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지금의 작업 방식으로 한 첫 전시였던 영국 런던의 첼시 예술대학에서의 졸업 전시에서 한 할아버지가 제 그림을 한참을 봤어요. 30분 넘게 한 자리에서요. 제가 그 그림의 작가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감상평을 들려주었죠. “이 그림 안에 많은 이미지가 있고 또 많은 관계들이 있다. 그러다 혼자 있는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하면서 뭔가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보다 보니 사실 이 안에는 어떤 이야기도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도로 그린 것인가.” 정말 제 의도를 그대로 말해주었죠. 제가 이렇게 답했어요. “그렇게 이야기해준 건 당신이 처음이다. 나는 그림에 이야기를 담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이야기를 생각한다. 그렇게 이야기해줘서 정말 고맙고 반갑다.”


Q) 이번 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고를 수 있을까요?

그 보다는 가장 신경 쓰이는 작품을 골라야할 것 같아요.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방식의 시도를 한 작품인데요, 커다란 벽을 그린 그림들이예요. 작년부터는 화면을 비우는 작업을 해보고 있는데 그 시도의 하나로 압도적인 벽을 그리고 싶었어요. '한정된 화면 안에 깊고 넓은 공간감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한 작업으로 줌 아웃을 시켜보고 싶었어요.


Q) 새로운 시도에 대한 욕심이 계속 생기나요?

최근에 많이 생겼어요. 캔버스에 그린 이상한 세계를 좀더 확장시켜 매체 전환을 해 설치 미술을 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그림을 그려왔기 때문에 갑자기 다른 매체에 도전한다는 게 쉽지 않겠지만 제 그림이 공간으로 나와야 하는 이유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어떻게 꺼낼 수 있을 지, 어떤 식으로 연계할 수 있을 지 고민중 이예요.



⚫ 장소 : 아뜰리에 아키

⚫ 주소 : 서울시 성동구 서울숲2길 32-14
⚫ 관람료 : 무료
⚫ 관람시간 : 오전 10시 ~ 오후 7시 (일요일 휴관)
⚫ 기간 : 2022.11.10 ~ 2022.12.17
⚪ 문의 : 02-464-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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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편집), 임그노드(디자인), 해리(디렉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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