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_고비사막 ep.04
(이어서)
우리는 모래산에서 내려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라면을 끓여 먹었고, 곧이어 미친 낙타를 만났을 때 내가 먹은 라면이 마지막 만찬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모래산에서 차로 몇 시간을 달려 황량한 사막에 떨궈졌다.
그곳에는 유목민들의 터전이 있었다.
그리고 유목민들이 사는 곳에는 역시나 게르를 찾아볼 수 있었다.
게르는 그들의 터전이자 삶이다.
오늘 우리가 타게 될 낙타들은 열 마리 정도 모여있었다.
개중에 머리를 연신 쳐드는 행동을 하는 온전해 보이지 않는 낙타가 한두 마리 보였다.
그래서 아빠와 동생한테 우리 저 낙타는 타지 말자고 일러두었다.
그런데 우리 앞에 단체로 온 팀이 있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낙타 위로 올라타고는 우리에게 신나서 손을 흔들어 댄다.
"안녕~!"
'응..? 한국사람들인가?'
한국 사람들이었다.
2017년, 몽골 여행 당시 유난히도 한국 사람들이 많았다.
고비 사막 어디를 가든 한국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낙타를 타고 유유히 사라져 갔다.
잠깐만.. 그럼 남아있는 낙타는..
우려하던 일이 결국 현실로 다가왔다.
결국 우리 차례에 남은 낙타들은 타지 말자고 했던 낙타들 뿐이었다.
방법이 없었기에 우선 올라타기로 한다. (느낌이 안 좋았지만)
우리가 탄 낙타는 쌍봉낙타이고, 몽골 낙타라고도 불린다.
단봉낙타와 다르게 등에 혹이 두 개 있는 모습이다.
현재 국제보호동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쌍봉낙타라서 그런지 두 개의 혹 사이에 폭- 안겨 안정감 있게 앉을 수 있었다.
앞에 있는 혹은 손잡이가 되어 주었고 뒤에 있는 혹은 등받이가 되어 승차감은 아주 편안했다.
동생, 아빠 그리고 나 이렇게 순서대로 나란히 낙타 위에 올라타 가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만 아빠가 탄 낙타 녀석이 계속 내 가까이로 자기 몸을 갖다 댄다.
녀석의 몸을 보니 이곳저곳 똥이 묻어 있어서 혹시라도 나한테 닿을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계속 예의 주시하며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녀석이 동생이 탄 낙타에 머리를 갖다 박는 것이 아니겠는가.
둘은 순간 목이 꼬이는 듯하더니 이내 세 마리 모두 흥분해서 싸우기라도 할 것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낙타 위에서 등골이 오싹해지고 정신이 아찔해진다.
빨리 내려달라고 소리친다.
너무 무서웠다.
낙타의 주인은 우리 앞에서 길을 안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낙타들이 날뛰자 달려와서는 낙타들의 고삐를 잡아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세게 잡아채도 녀석들은 통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낙타들은 소리를 더 크게 지르며 몸부림은 더욱 거세졌고 나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다.
동생이 탔던 낙타는 그나마 순한 편이어서 동생이 먼저 내렸고, 아빠가 탔던 문제의 낙타를 겨우 앉히고 아빠는 떨어지듯이 뛰어내렸고 뒤이어 나도 낙타 등에서 뛰어내렸다.
낙타에서 내리고 나니 손발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동생은 무서움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빠도 애써 웃어 보이려고 했지만 분명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우리 셋은 낙타에서 내려서는 혼이 나간 상태로 멍-하니 있었다.
낙타의 주인은 낙타들을 통제하려고 해도 녀석들은 소리를 꽥- 지르며 말을 듣지 않았다.
특히 문제의 낙타는 아무리 고삐를 당겨도 머리를 숙이지 않고 오히려 하늘을 향해 머리를 쳐들고는 기싸움에서 지지 않았다.
주인과의 한참의 사투 끝에 상황은 겨우겨우 정리되었다.
우리는 처음 낙타 탄 곳으로 돌아왔다.
아빠는 우리의 가이드를 통해 강하게 항의했다.
그들도 이런 일이 처음이었는지 당황한 모습으로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이내 진정이 되었지만 동생은 여전히 놀란 모습이었다.
우리는 자동차나 오토바이 같은 기계를 탄 것이 아니다.
그들이 기계를 다루는 것이 아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자식을 데리고 온 부모였다면 당연히 우리 아빠처럼 강하게 항의를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다행히 홀몸(?)이었고 재밌는 경험을 했고 결론적으로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나 혼자 일찍 돌아온 텐션으로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들어오니 먼저 주차되어 있는 푸르공들이 우릴 반겨준다.
많은 게르들이 마을처럼 형성되어 있는 오늘의 숙소는 규모가 좀 있는 편이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저녁을 먹고 나오니,
어김없이 이 시간에 해는 저물어가고 있다.
나는 와인과 과일을 펼쳐놓고 앉아,
영화관에 온 것 마냥 자리에 눌러앉아 해가 넘어가는 것을 감상했다.
해가 지평선 끝에 걸려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인다.
넘어가는 해를 보며 아까 만났던 낙타 생각을 한다.
동생을 울렸던 낙타에게 꿀밤 한 대 먹여주고 싶지만,
오늘 하루 종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같은 길을 오갔을까.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아닐 텐데 말이다.
괜스레 안쓰러워진다.
그리고 어딘가 나와 닮아 있는 모습에 연민 같은 것을 느낀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에 생각 없이 끌려다니다 보니 내 인생의 주체가 누구인지 잊고 있었다.
좀 더 나답게 사는 법을 연구해봐야겠다.
어느새 해는 완전히 넘어갔고 와인은 바닥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