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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니스 Apr 25. 2022

1. 우리 엄마는 깜박쟁이에요

기억유지장치의 부재

이건 건망증의 문제와는 좀 다르다. 주의력이 지속되지 못함에 따라, 기억해야 할 정보도 끝까지 붙잡지 못하는 현상. 머릿속에서 떠오른 생각이 아련하게, 언제 내 머릿속에 들어왔었냐는 듯 스르륵 흩어져버리는 경험이 있는가? 분명 양치를 하면서는 '물통 챙겨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해가 중천에 뜬 시간이 되어서야 ‘아..우리 딸 오늘 체육하는데, 목마르겠다ㅠ’ 며 늘어놓는 걱정과 미안함..하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일상적인 것이라,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늘 반투명한 막이 뇌를 감싼채로, 선명하지도 개운하지도 않는 느낌에 시달리는 것 역시, 그게 이상하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정도로 나에겐 일상적인 것이었다.


나의 주의력 결핍을 진지하게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첫째를 낳고 나서였다. (MBTI를 신봉하지는 않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ESTJ 성향이 다분한 남편 관점에서는, 외출을 할 때마다 주방에 몇 번을 들락이고, 아이 방에도 몇 번을 들락이고, 그렇게 하는데도 늘 한 가지, 두 가지  빠뜨리는 물건이 발생하는 내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육아 참여도를 논하는 자리는 아니니 각설하고) 이런 나의 부주의와 신랑의 성향은 늘 싸움의 불씨를 조마조마하게 지펴갈수밖에 없었고, 질책 아닌 질책, 추궁 아닌 추궁이 일상적인 남편과 큰 마찰과 갈등을 빚는 것도 수차례였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나의 자존감을 꺼뜨렸고, '내가 산만하긴 한거지' 라는 어렴풋한 인식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것은 쉽게 나아지지는 않았고, 그렇게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신랑은 이런 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며, 나 또한 최대한의 섬세함을 발휘하려 노력해가며, 다름과 부족함을 함께 수용하는 방법을 터득해 왔다.


 동안, 딸이 유치원 3년을 다니는 동안, 그녀의 인지능력이 판단이라는 것을 가능하게  만큼 성장할 동안.  아이는 '엄마가 미안, 깜빡했어', ' 엄마가   챙겨줬네 미안해' 라며 사과하는 모습을    발을  합쳐도   없을 만큼 마주할 수밖에 없었고, 어느  부터  아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엄마는 깜빡쟁이에요, 맨날 깜빡했데요' 라는 농담과 진담 섞인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민망하고 가끔은 짜증도 나고. 다른 아이들은  가지고 있는 그것을 우리 아이만 없이 하루를 보낼 생각하면 한심하고. 이제 초등 1학년이기에 아직까지 나로 인한  사고가 있었던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괜찮다' 넘길 수는 없는 흠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런 나의 깜빡병이 일상화 되었을 , 그것이 삶의 디폴트 값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하나   흘리는 것이 당연하고 누구나  그런 것인줄로 아는 , 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모델링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말이다. 엄마라는 위치가 힘든 이유는 사실 특별할  없다. 아이가 어찌 될까봐 저찌 될까봐 생기는 불안과 긴장 이면에는 , 엄마는 완벽하지 않고, 완벽할  없다는 사실이 전제하고 있는데, 엄마마다  '완벽하지 않음'에서의 편차는 있을테고, 결국은  편차가 아이의 어떠함을 만드는데 영향을 미치는  무시할  없기 때문이다.




약을 처방받은 후 사실 만족감은 다른데서 오는게 아니었다. 커피로 굳이 각성되지 않아도 빠릿빠릿하게 보고서를 쓸 수 있다는 점도 좋긴 하지만, 오늘도 나는 딸의 가방에 물병을 빠뜨리지 않고 챙겨줄 수 있었음에 안도한다. 말로는, 나는 내가 내 삶에서 1순위라고 말하고 다니고, 나의 사회적 역할, 직업적 역량이 가장 소중하다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제대로 해 내지 못하고, 해 낼수 없을거란 무력감에, 엄마라는 이름을 아직까지 마주하기 어려워 던지는 자조적인 농담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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