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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봇 Nov 30. 2020

갈수록 사람을 만나는 것이 힘들기에.

1. 관계의 첫 문장


 모든 것은 첫 시작이 있다. 글에는 첫 문장이 있고, 관계에도 첫 만남이 있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중요해서 언제나 심혈을 기울이곤 한다. 글이라면 첫 문장을 보고 흥미가 있도록 쓰려하고, 관계라면 첫인상과 첫 만남을 보고 괜찮은 사람으로 남기를 바라며 노력한다.


 하지만 결국 그 첫 문장에 너무 큰 힘을 주려 한 나머지, 마음에 들지 않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 글이나 첫 시작은 좋았으나 뒤로 갈수록 진부 해지는 글들은 과감히 버리게 된다. 그것이 관계라면 우리는 첫 만남에 너무 괜찮은 사람이고 싶은 나머지, 본인을 혹사하여 향후에는 관계를 그르치는 불상사까지 초래하게 된다.


 그렇기에 갈수록 그 '처음'이 너무 부담스러워졌다. 관계의 첫 문장을 쓰는 그 일이 너무나도 부담스럽고 거북해 쉽사리 손을 대지 못하게 되었다.


 특히 연애에 있어서는 소개팅이 그러했다.




"안녕하세요, A 소개받은 친구 밤봇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B입니다."


 식사 시간에 맞춰 잡은 약속에서 서로 어색한 인사를 하고,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미리 검색해 둔 괜찮은 음식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어색한 말들이 오가나 얼핏 서로가 주선자로부터 들었던 서로에 대한 이야기나, 카카오톡으로 만나기 전까지 했던 말들을 곱씹으며 되묻는 것들로 사운드를 비게 하지는 않았다.


 그런 화제마저도 이제 고갈되어 바닥을 보일 때 즈음 길을 제법 잘 들어 음식점으로 향하다 보면 아니나 다를까,


"여기 자주 와보셨어요?"

"아뇨, 저도 오늘 처음 와봐요. 맛있는 음식점들이 제법 있다고 해서 찾아봤었어요."


 소개팅하면서 적어도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들을 하게 된다.


 음식점을 들어가 메뉴판을 받고 서로는 메뉴판을 보기 위해 제법 가까운 거리에서 이야기를 하게 되고, 음식을 시키고 나서는 제법 조용한 환경이 연출되곤 했다. 물을 마시면서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웃고는 또 아직은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니 '알아가기 위한' 이야기들을 물꼬를 틀면서 하게 된다.


"파스타 좋아하세요?"

"네, 좋아해요. 좋아하세요?"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 와 같은 아주 상투적인 말들의 대화가 오가고 그 시답잖은 화제에 서로 예의를 갖춰 응대하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렇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는 크림 파스타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라는 말에 언제나 '아무거나 잘 먹어요.'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나는 주선자에게 들은 'B는 파스타를 좋아한다'는 정보를 기반으로 파스타 집을 선택했다. 그리고 B가 묻는 것에 나는 '아뇨, 사실 저는 좋아하지 않아요.'라는 말은 않고 기대하는 모습에 부응하기 위해 감추고 연기하였으며, 그 결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크림 파스타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고 또 먹기도 하였다.


 상대방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처음에서부터 내가 잘 보이기 위해 하는 그런 행동들은 사실 내가 좋아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곤 했다. 하지만 B에게 이야기했던 이야기했던 '나도 좋아하는 그 크림 파스타'라는 대목과 그로 인해 괜찮았던 첫 만남이 나를 다음에도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보이게 해 주었고, 그런 몇 번의 만남 이후 연애는 시작되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나의 연애 스토리가 발단과 전개를 넘어 위기에 도달했을 때, 위기의 주역이 된 소재는 다름이 아닌 그 '크림 파스타'였다.


"너도 파스타 좋아했잖아."

"사실은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아. 나는 밥을 더 좋아해."

"나는 네가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시작은 별 것도 아닌 말다툼, 그냥 서로에 대한 불만을 서로 가볍게 토로하는 상황에서 조금씩 감정은 더해졌고 거기에 오늘의 불만족스러운 약속 장소가 대두되면서 우리의 말다툼은 비로소 싸움의 구색을 갖추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는 터져 나온 '크림 파스타'에 B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연애를 시작해주게 했던 그 매개이자, 나를 그 사람과 공통점으로 묶어 주었던 그 '크림 파스타'가 사실은 매개점이 아니란 것을 알았을 때의 B의 배신감은 서먹함의 구름을 만들어내고 그 낯선 구름으로 인해 자존심이 강한 나는 우산조차 펴지 않으며 결국은 그 쏜살같은 비를 온전히 몸으로 받아들여 축 쳐졌다.


 그렇게 연애는 이별의 결말을 맞이하고 그 괜찮아 보이고 싶었던 내 마음은 그 사람을 위한 것임도, 나를 위한 것임도 아님을 알았다. 연애의 시작에는 유용했을 테지만, 그 사람이 좋아한 나는 '크림 파스타를 좋아하는 나'였고 진짜의 나는 아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어떤 괜찮은 사람'을 연기하는 것은 제법 힘이 든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 해야 하는 그 나름의 연기가 제법 귀찮고, 나와 맞지 않을 사람일 수도 있는 그 수많은 사람 중 괜찮은 사람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것도 제법 피로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마냥 신기하고 즐거워했던 그때의 나와 서툰 감정의 자기중심적 발현과 연애에서의 서툰 행동마저도 설렜던 그 첫사랑은 이제 없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온전히 알고 있는 조금은 철이 든 나와 결국은 나만이나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닌 서로가 상호적으로 사랑을 주고받는 기브 앤 테이크 임을 아는 조금은 성숙한 사랑을 꿈꾸는 내가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도 험난함을 알고, 결국은 온전히 나를 좋아해 주고 온전히 좋은 그 사람을 찾기 위한 여정이 길 것을 알기에 그 시작이 이제는 쉽지 않다.


 하지만 답은 아주 간단하다. 첫 문장에 힘을 빼면 좀 더 쉬워진다. 첫 문장 이후에 써 내려가는 많은 단락들과 서사에 의해 글의 주제는 바뀌기도 하고 더 강조되기도 한다. 첫 비극적인 문장 이후 다다르는 해피엔딩이나 비참한 일 이후에 얻는 아름다운 교훈은 결국 끝에 있기에.


 완벽하지 않음을 알고 있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또 성숙함이기에 우리는 온전히 힘을 빼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보면 더 편할 것이다. 그것은 연애이든 혹은 회사에서의 첫 만남이든,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으니 힘을 빼고 첫 문장을 가볍게 써 내려가자. 그 이후의 단락은 분명 더 편해질 것이니.


 물론 말은 알고 있지만 사람은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놈의 첫인상, 그러니까 첫 문장이 읽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또 꾸밀 테고, 그래서 그런 약속을 잡게 되면 나는 매번 고민할 것이다.


 관계의 첫 문장을 어떻게 써 내려갈지. 나답게, 아니면 대중적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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