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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스터테이 Sep 27. 2020

일단은 퇴직입니다

직장생활은 이제 안녕이다. 난 뭘하고 싶은걸까?

자신감으로 가득찼던, 패기어린 시절이 있었다. 

세상을 휘저을 수 있을 줄 알았고, 내 뜻대로 모든것을 이룰 수 있을줄 알았던 내 젊은시절.

이해되지 않으면 그 즉시 물어봐야했고, 납득되지 않으면 이의제기를 해야했던 내 성격은

사회 첫발을 내딛자마자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며 많이도 얻어맞았다. 


학창시절내내 선머스마같은 성격에 골목대장 노릇을 하고 다녔지만, 

처음으로 내딛은 회사라는 조직안에서는 그 누구도 날 이해해주거나 이뻐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미워하고 시기질투하며 공공의 적으로 내세웠고, 하루하루 사회의 쓴맛을 온몸으로 느끼며 눈물로 

매일을 보냈다. 


직장내의 왕따가 남일이 아니었다. 

그때의 선동자를 난 아직도 뼈에 사무치게 기억한다. 나와 동갑인 여직원이었는데, 내가 싫었던 이유는 풍족하고 곱게 자라온 내가 샘나고 싫었다고 했더란다. 참 기가차고 어이없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집은 지극히 평범했다. 

잘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았다. 

외동딸인 내가 형제가 많은 남들에 비해 더 많은 특혜를 받은건 사실이겠지만, (이등분 혹은 삼등분으로 배급되어야하는 혜택을 혼자 다 누렸으니깐), 외벌이 아빠의 월급봉투로 세식구가 생활하며, 누구나 그렇듯 평생의 꿈이었던 집한채를 장만하기위해 돈한번 허투루 쓰질 않았다. 절약정신 투철한 엄마는 롯데리아가서 햄버거 한번사달라고 한달을 노래해야 한번 데리고가줬고, 외식이란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때에나 한번 행해지는 잔칫날이었다. 중학생때였나 처음 먹어본 바나나는 어찌나 맛있던지, 명절이 되어서야 한번 얻어먹을 수 있는 귀한 과일이었다. 그 시절은 그게 보통스러웠고, 평범스러웠다.  


뒷굽이 닳아 너덜너덜한 구두가 친구들보기 창피하다고 내딴엔 결사적으로 데모를 했지만, 결국엔 떨어지고 나서야 새신을 사줬고, 옷 역시 유행 지났다고 사주는법이 없었다. 그당시 유행하는 옷을 입고 싶어 유행지난 옷을 시멘트바닥에 벅벅 긁었던 기억이난다. 이제 그만 버리고싶은 옷은 왜그리 튼튼한지 튿어지지도 않았다. 

아빠는 IMF타격으로 명예퇴직을 해야하나, 아니면 좀 더 버텨볼까라는 집안 최대의 고민거리를 넘겨오며, 

우리집은 내가 대학을 진학한 후, 그제서야 조금 숨통을 튼것같다. 

나는 국내 사립대로 진학했다가, 여차저차 중국 대학교로 옮겨갔다. 중국 대학교 학비가 훨씬 저렴했지만, 중국에서 소비되는 나의 생활비때문에 부모님은 제대로 숨통을 트지도 못한채 다시 허리띠를 졸라야했었다...


내딴엔 부유할것 없이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지냈던 날들이 누구에겐 시샘의 대상이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지만, 그녀는 경제적인 문제로 일찍 사회에 나와야했고, 집안의 가장으로서 수입의 대부분을 집에 보내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시기의 대상이었고, 분풀이의 대상이었던것 같다. 


그녀에게 미움을 받으며 같이 보냈던 삼년여의 시간동안 몸도 마음도 많이 다쳤다. 속앓이한건 말할것도 없고, 자신감 하락, 긴장성 발성장애를 시작으로 나중에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렇게 악마같았던 그녀는 신실한 교회성도로서 항상 주님을 찬양하고 다녔고 전도하고다녔다. 나도 같은 기독교인이었지만 정말 소름끼치게 역겨웠다. 십여년이 지난 지금, 내 인스타를 팔로워하고 있는 그녀는 무슨 의도일까? 그녀에겐 그저 단순한 해프닝으로 기억되는걸까? 




모든 시련은 배움을 낳는다고 했던가. 혹독한 트레이닝을거쳐 햇병아리를 탈피한 후 이직을했다. 

그나마 초짜의 모습을 탈피하고 제대로된 회사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경기도에 위치한 꽤나 규모있는 나의 두번째 회사는, 템포가 아주 빠르고 모든일이 착착 잘 맞물려서 돌아가는 태엽처럼 움직였다. 일하는만큼 성취감도 컸고, 회사 내부적으로도 유기적으로 움직였으며, 쓸데없는 부서간 알력다툼이 없었다. 


모든것이 이상적이고 좋았지만, 내 직계 보스는 아직도 사무실에서 직원들에게 욕을해대고 물건을 던지며 일부러 자존심을 긁어댔다. 평소 10시까지의 야근은 기본이었고, 야근을 끝내면 본인 집앞으로 불러내어 새벽까지 술을 먹이며,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할 수 밖에 없던 이유를 늘어놨다. 변태처럼 술마신 다음날은 새벽같이 출근해서 지각하는 직원들에게 또다시 욕을 퍼부었다. 그사람 때문에 야반도주한 직원들이 트럭으로 몇대라는말이 괜한말이 아님을 실감했다. 나의 꽃다운 삼심대초반을 매일의 야근과 주말 특근으로 보냈고, 회식과 접대로 술에 쩔어지냈다. 


찌들어가고 죽어가는 내 삶의 변화가 필요했다. 

직장생활의 꿈과 열정은 이미 죽은지 오래였다. 


난 지금 뭘하고 싶을까.

그렇게 요동치던 내 가슴은 이젠 뭘로 다시 꿈틀대고 싶을까.


혹시,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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