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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별 Jul 26. 2023

야성이 흐르는 세계

다섯 코미디언, 다섯 농담, 여자들이 작정하면 이렇게 웃기다니까

이곳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야성이 흐르는 곳이었다. 언제 시작할까 긴장이 고조되었을 때 오늘의 호스트를 소개하는 멘트가 들려왔다. 그리고 무대 위로 올라온 호스트는 이 모든 관객들의 기대와 긴장, 호기심을 동반한 열렬한 환호를 받아내고 되돌려줄 만큼 에너제틱 했다. “더- 크게! 더- 크게-!!” 라며 관객의 흥분을 증폭시키는 스킬은 이 공간 전체의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쩌렁쩌렁했다. 쩌렁쩌렁, 심장 아랫쪽이 함께 웅웅대며 울렸다. 현실에서 저렇게 큰 소리를 내는 여자는 본 적이 없어, 사람들 앞에서. 물론 나와 내 친구들도 술자리에서 흥이 오르면 —아니 술을 안 마셔도, 보통은 카페에서 그저 카페인에 취해서도— 서로 덜 웃길까 질세라, 자기 애드립이 묻힐까 고래고래 떠들긴 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마이크를 쥐고 큰 소리로 떠드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사회와 진행, 사람들의 호응을 유도하고 이끄는 일은 늘 남자들 몫이었으니까. 나는 태어나서 이렇게 타당한 명분 없이 —예를 들면 강연이라거나 연설이라거나, 의식있는 공동체의 참여를 부추겨야 한다거나, 부당함을 설파하기 위해 피를 토하는 심정이 되어야 한다거나, 투표를 독려해야 한다거나, 필요에 의해 약간의 선동을 가미해야 한다거나 등등의 구실이 없는 채로— 오로지 웃기기 위해 무대에서 전문적으로 너스레를 떠는 여자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더 마음이 갔던 것은 관객 입장에서 다소 지루할 수 있는 관람 수칙을 안내할 때에도 쉴 새 없이 웃겨주었기 때문이었다. 



“저희가 농담을 계속 재탕하기 때문에, 밥벌이라 동영상 촬영은 안 돼요~!”

“영상 찍으시면 자동으로 세이프 더 코미디언으로 연결 돼서 10년 간 자동 결제 후원이 체결 됩니다.” 

“동영상 촬영하시는 분은 핸드폰 압수해서 이따 경품 추첨 때 나눠드릴 거예요.”

“개인적으로 아이폰 텐S로 찍으시는 분 계시면 좋겠어요.” 

“잘 웃어주시는 분한테는 선물 있어요. 경품은 아까 압수한 아이폰~” 



글로만 적어놓고 보니 혹시 재수 없어 보일까 싶기도 한데 역시 농담의 완성은 그 농담을 하는 사람이 누구냐인 듯 하다. 언니들을 약 올리는 되바라진 막내처럼 굴지만 많이 고심했구나가 곳곳에서 느껴지는 멘트들과 프로페셔널한 까불거림이 마음의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항상 남의 집 문을 발로 차 부수고 들어오는 미국 경찰들처럼. 그리고 약간은 짓궂은 농담을 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는 게 좋기도 했다. 아무도 반박할 수 없고 닥치고 들어- 하는 상황에서 슬쩍슬쩍 못된 농담을 끼워넣는 게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다고 할까? 늘 혹시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는 말을 할까, 자기도 모르는 새 타인의 신경을 거스를까, 기분을 상하게 할까 노심초사하며 농담 한 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하고 결국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말은 극도로 제한적이 되고 마는 순조로운 악순환의 구조에 갇혀 있다가, 밖에서 불어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를 마신 기분이었다. 불현듯 탈출로가 있구나 직감하는 순간이었다. 



쩌렁쩌렁한 소개를 받고 첫 번째로 올라온 코미디언은 미국에서 활동 중인 교포 코미디언으로, 매사 퉁명스럽고 어딘가에 늘 화나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국 토박이들에게 흔히 있는 교포 스테레오 타입 편견이지만, 내가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는데 무슨 문제 있어? 하는 그 태도가 정말 교포의 정석 같은 애티튜드였달까? 어쨌든 들어보니 그는 화가 나있을 만했다. 어릴 적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영어를 아주 잘 구사하지만 자기만 보면 “어디서 왔어요? 아니, 그래서, 진짜로 어디서 왔냐구?” 친절히 되짚어 물어보는 상냥한 미국인들 때문에. 그래, 연예인도 신인일 때 소속사 한 번 옮긴 거 가지고 데뷔한 지 30년 지났는데도 인터뷰 때마다 그 얘기 들먹이면 빡쳐 하겠다. 그리고, 옮긴 데서 30년 넘게 둥지 틀고 살았으면 거기가 집이구나- 인정해줄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래놓고 참다참다 화내면 정작 속 뒤집은 쪽은 “헤이~, 진정해, 그런 의도로 말한 거 아냐~, 화내지마. 화가 많은 스타일인가? 너 좀 피곤한 듯. 요가 해보는 거 어때? 아니면 명상이나. 거 봐, 내가 이쪽 애들하곤 안 맞는다 했잖아~” 하고 해맑게 돌아선다면. 그럼 진짜 열받지 않을까? 그래서 이 교포 스타일 “핫걸” 코미디언은 한 번은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고 했다. 사람이 기대를 받으면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심리가 들 때가 있잖아. 한번은 결혼식장에 갔는데 누가 또 물어보길래, 원하는 대로 ‘그’ 나라 출신이라고 말해주었다고. 원하는 대답이 나왔는데 긴장하는 이유는 뭐람? 자기는 컨셉을 유지하기 위해 뷔페에서도 음식을 때려넣고, 박수칠 때도 가로로 치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하지만 진짜 웃긴 건, 미국에서 온갖 차별을 당하며 이젠 정말 질린다 질려 하던 그가 한국에 와서 날것의 친밀함—오지랖과 무례함 사이 그 어딘가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을 접하고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세상이 있었구나, 자기가 살던 세상이 와장창 부서졌다는 듯한 태도로 말했을 때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이 한국 명절 공식 질문 3선 “왜 이렇게 살이 쪘어? 그래, 남자친구는 있고?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한다고?” 를 연달아 던졌을 때 ‘아, 내가 인종차별은 좀 당하지만 그래도 ‘자유’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곳에서, 구시대적 집단 공동체 주의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안전하게 살고 있었구나’ 라고 느끼고 있음이 그 대사를 따라 읊었을 뿐인 그의 목소리 톤만으로 여실히 전해졌을 때- 한 사람이 두 세계에서 각기 다른 종류와 성격의 차별을 겪고 무엇이 더 나은가, 그나마, 그저 전달할 뿐인 모습이 나에겐 재밌는 지점이었다. 그리고 그 야만의 나라, 여자의 생각과 선택, 자유와 이지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나라 한국에서 토박이로 살던 나도 같이 웃고 있었다. —이 분은 한국에서 같은 내용으로 코미디를 할 일이 없을 것 같아 내 맘대로 조금 자세히 써 보았다. 하지만 이 다음에 이어질 내용들은 조금 두루뭉술하게 쓸 예정이다— 



두 번째 코미디언은 여유로운 태도와 우아하고 교양있는 말씨가 시그니처로 여자들이 현실에서 듣는 말과 남자들의 이중성을 돌려까는 코미디를 선보였다. “여러분, 저 오늘 좋은 날이에요. 축하해주세요. 생리가 끝났어요.” 로 시작해 순식간에 장내 모든 여자들의 공감을 사로잡고 분위기를 달구었다. 그치, 아무래도 생리가 끝난 날은 축하하고 넘어가야지. 그는 이어서 탐폰 쓸 때 자기가 하는 걱정, 길거리에서 보이는 꼴불견 커플들의 행태, 다이어트에 대한 사람들의 이상한 믿음, 크로스 핏 하는 남자의 희한한 자부심 등등 여자라면 누구나 해봤을 고민이나 속으로나마 비웃음을 참을 수 없던 순간들을 코미디로 풀어놓았다. 특히나 행실이 단정치 못했던 바람 핀 구남친 응징하기나 섹스할 때 남자들의 근원을 알 수 없는 자신감을 비꼬는 농담들은 이성애자 여자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고 역시나 여기저기서 진실한 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소재를 코미디로 만드는 데 재능이 있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자극적인 키보드 배틀이나 댓글에 비하면 훨씬 정제되어 있었지만 생리를 생리라 부르고, 여자를 성기로 치환하는 세상에서 육성으로 고추를 고추라 말하는 걸 듣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짜릿함이 흐르는 일이었다. 



세 번째 코미디언은 어딘가 시니컬하고 사회생활에 찌든 만렙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외국에서 태어나 오래 살다가 한국에 정착한 사람으로서 자주 겪는 오해나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이해되지는 않지만 일단 수행해야 하는 한국식 사회생활을 주로 풍자했는데, 최대한 코미디로 승화하려 했지만 군데군데 드러나는 리얼한 답답함과 미처 다 갈무리하지 못하고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분노가 의도치 않은 웃음을 유발했다. 역시 가장 웃길 때는 진정성이 느껴질 때일까? 한 번이라도 갑질을 당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했지만 유독 직장인 관객들이 깊은 공감을 느끼며 큰 웃음을 터뜨렸다. 무대 위에서 어딘가 여유로워 보이고 특유의 약간은 애로건-트해 보이는 애티튜드가 하도 시달려 이제는 웬만한 일에는 미동도 없는, 영락없이 사회생활에 풍화된 직장인 같았는데 이게 참, 왠지 기대고 싶은 언니 같은 느낌이 들기도, 꼭 여자로서 어떤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그래, 이게 우리 삶이고 우리 살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고군분투 하지, 이런 느낌을 주는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물론 웃기는 건 기본이다. —나만 빼고 다 천주교를 믿는 가족을 둔 기분을 재치있게 비유한 농담도 내 코드를 저격했다— 



공연은 어느덧 후반부로 달려가고 네 번째 순서 코미디언이 나왔다. 아마도 오늘 가장 큰 기대를 받고 올라왔을 등장인물로, 시작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끌어낸 호스트 멤버의 차례였다. 그는 한 코미디언의 무대가 끝나면 다음 차례를 소개하기 위해 중간중간 올라와서는 짧게 코멘트를 남기곤 했는데 그게 또 묘미였다. “교회 동생이 와 있는데 무대에서 언니들이 자꾸 섹스, 보지 이런 얘기 할 때마다 동생들 있는 쪽 쳐다보면서 ‘아멘’하게 된다”, “본인 실명 말했을 때는 그렇게 깜짝 놀라면서, 상사 차종이랑 번호 공개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하신다” 이렇게 관객들과 쌓은 유대감과 호감을 바탕으로 등장할 때부터 엄청난 호기심과 환호를 받았는데 한편으로는 와, 저 어마어마한 기대감을 어떻게 충족시키지? 내가 다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 지경이었다. 아마 관객들의 마음도 시험대에 올랐을 터다. 호감에서 비롯된 기대감이 계속 우호적으로 남아있을지 아니면 실망하게 될지. 하지만 그는 엄청난 에너지로 오프닝 조크를 터뜨리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다양한 농담을 선보였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고 재미있었던 것은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지어낸 결혼에 대한 로망, 그런데 그 와중에도 엄마와 사윗감에 대한 의견이 갈렸던 것, 또 자기는 평소 스타일대로 다닌 것 뿐인데 페미니즘이 대두되면서 갑자기 탈코인의 선봉장이 된 농담들이 있었다. 그리고 초딩 시절 신화 오빠들을 좋아했을 때 오빠들을 만나는 상상을 하며 오빠들의 우렁각시가 되어야지 다짐했던 일, 근데 왜 하필 우렁각시였담? 반전의 의문을 던진 농담들도. 그는 여느 희극인 못지 않은 연기력으로 자기 농담을 맛깔나게 살리며 웃음을 뽑아냈다. 덕분에 에너지를 준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에너지를 받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다양한 여자들의 모습을 보며 저 모습은 페미니즘적으로 어떤 의의가 있지 강박적으로 분석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가 관객에게 주는 즐거운 카타르시스와 에너지를 보면서 이 사람은 그저 코미디언으로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대망의 마지막 주자, 내가 궁금해하던 그 사람의 순서였다. 그는 ‘마지막이라 기대 많이 하실텐데 제일 잘해서가 아니라 행여나 오천 원 안 내고 들어가는 사람 있을까봐 잡으려는 노예 농장주의 마음으로 돈 걷으러 밖에 앉아 있었다’고 겸손하지만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농담으로 포문을 열었다. 앗, 뭐지 이 약간은 배운 듯 하면서 역사 개그를 곁들인 신박한 비유는…? 나 말고도 다들 빵 터진 걸 보니 모두의 취향을 저격한 듯 하다. 소심한 듯 차분한 말투가 전형적인 코미디언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어떤 농담을 들려줄지 더 궁금해졌다. 제니가 ‘인간 샤넬’이라면 자기는 ‘인간 자라 세일기간’이라며 적당한 자기비하와 트렌디함도 놓치지 않고 소개한 그는, 그런 아침 신문 읽는 톤으로 농담의 조종간을 급격히 비틀어버렸다. 농담의 고도를 수직 상승시켜 ‘한국에서는 괜찮은 고추를 찾을 수 없어 바다 건너 일본까지 다녀왔다. 일본 불매 운동의 후예라서 좀 그랬는데 역시 메이드 인 재팬, 견고하더라’ 이런 아찔한 곡예쇼 같은 수위 높은 조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글쎄, 또 뻔한 섹스톡이냐고? 아니, 천만에. 그는 남자들과 섹스할 때 벌어지는 일들이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얼마나 안티 로맨틱한지, 그것을 로맨틱하게 포장하기 위해 여자들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너무나 기상천외하고 재치있는 농담으로 만들어 들려주었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대부분의 여자들이 늘 자기가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는 굴레에 얽매여 있으면서도 그 잘 보이기 위한 과정에서 반복되는 어떤 생생한 날것의 예쁘지 않은 행위들을 농담에 녹여냈다. 그게 너무 현실적이고 어딘가에 진짜 저런 사람이 있을 것만 같아, 그 비현실적인 행위의 사실적인 묘사가 충격적으로 웃겼다. 농담은 배가 찢어질 정도로 웃기고, 그 재료가 된 관찰력은 날카로웠다. 이건 앨리 웡보다 웃긴데? 이런 공연을 정말 오천 원만 주고 봐도 되는 걸까? 입장하기 전 나의 기우가 완벽하게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오늘의 헤드라이너—스탠드 업 코미디 공연의 마지막 주자—는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를 절정으로 이끌며 팡 터지는 클라이맥스를 선사하고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는 듯 쿨하게 퇴장했다. 이렇게 멋져도 돼? 웃긴 여자는 너무 멋있었다. 



나올 때는 깜깜한 밤이었지만 세상이 이렇게나 환해 보일 수가 없었다. 정말 미친듯이 깔깔대며 배를 잡고 웃고 나온 뒤 엄마와 함께 집에 돌아가는 길 우리 둘이 동시에 느꼈던 기분은 카타르시스, 유쾌함, 해방감이었다. 30년 세월의 간격을 뛰어넘고 둘이 똑같은 것을 보고 공감하며 가장 크고 유쾌하게 떠나가라 웃어 제꼈다. 우리는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열변을 토하며 공연에 대한 감상을 떠들어댔다. 더 이상 나올 얘기가 없어 같은 얘기를 반복하더라도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엄마와 내가 친구처럼 지내며 일상을 공유하고 함께 웃고 떠든 적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이렇게나 둘 모두 ‘이건 내 얘기잖아!’라고 느끼며 웃었던 경험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같은 여자이기 이전에 우리는 아빠의 아내와 딸, 결혼한 여자와 결혼하지 않은 여자로 나뉜 세상에서, 아무리 친하더라도 상관없이 마치 대립된 존재인 것처럼 느끼도록 만들어진 세상에서 살고 있었잖아- 같은 궤도 위에 놓여있었는데도 말이야. 엄마와 내가 사실은 같은 땅을 밟고 서 있는 사람들이란 걸 이렇게 슬프거나 처량맞지 않게, 엔돌핀이 돌면서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 무언가가 있었나? 무언가 마음 속에서 들끓고 있는 게 느껴졌다. 이게 뭐지? 이게 뭘까? 이 막, 미치겠으면서 피가 끓는 느낌은 대체 뭘까. 쉽게 진정이 되지 않으면서 방금 내가 무언가 엄청난 것을 목격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지금 암시장에 몰래 온 손님 같기도, 반정부 히피 모임에 초대된 사람이 된 것 같기도, 레지스탕스 운동의 한 복판에 들어온 것 같기도 한 기분이었다. 



알겠다, 그들이 보여준 건 사라진 줄 알았던 원시적인 에너지, 여자들의 야성이었다. 아주 오래 전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야성이 심장 밑에서 펄떡대는 게 느껴졌다. 살아있다는 감각이 느껴졌다. 반쪽짜리가 아니라 완성된 온전한 하나로. 깜깜한 동굴 속, 나는 최초의 예술을 목격한 원시인이 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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