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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그해 여름의 추억

복만아 잘지내니?

by 봄날의 햇살

1996년, 라일락 향기가 은은한 싱그러움 속에서

스물셋의 나이에 월의 신부가 되었다.

이제 막 결혼한 지 두 달 남짓 된 신혼부부가

강릉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처음으로 여름휴가를 떠나던 길이었다.


창 넘어 짙어져 가는 녹음을 바라보던

열차 창에 비친 한 소년을 보았다.

피곤에 지쳐 졸면서 서 있는 중학생 정도의 아이였다.

'복만이’라는 이름의 그 아이는 혼자서 무작정 입석으로 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무임승차는 아니었지만, 계획 없이 승차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기차에 서서 졸고 있는 복만이가 안쓰러웠던지,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자기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복만이는 주저함 없이 앉더니, 마치 오래된 소파에 기대듯 이내 잠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이 여행이 평범하지 않을 것이라 예감했다.

복만이는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엄마가 없었고 아빠는 지방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할머니, 할아버지와 지냈다는 복만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충동적으로 집을 나와 무작정 열차를 탔고 우리를 만난 것이었다.

그렇게, 복만이와 3박 4일의 여행 일정을 함께 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여행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넉넉지 않았던 살림이었지만 숙소에서 잠도 함께 자고 식사도 복만이가 원하는 것으로(비싼 것을 주로 골랐다 ㅎㅎㅎ )먹었다.

바닷가에서 파도를 보며 맨발로 함께 걷고 웃기도 하며

어느 순간 복만이가 가족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큰맘 먹고 산 남편의 선글라스를 복만이가 잃어버렸던 슬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ㅎㅎㅎ


강릉에서 3박 4일의 여행일정이 끝나고, 우리는 복만이를 청량리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우리에게 감사함을 표현하시며, 없는 형편에 돈 봉투까지 건내주셨다.

하지만 우리는 그 돈을 다시 방바닥에 두고 복만이와 맛있는 것을 사드시라고 하고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날 이후에도 복만이는 종종 우리 신혼집에 놀러 왔다.

송파 쪽, 작은 투룸으로 복만이가 오면, 롯데월드 놀이 공원을 함께 가기도 하고, 맛있는 것을 함께 먹기도 하며 그 시절을 보냈다.


얼마나 힘들고 마음 붙일 곳이 없었으면 우리를 찾아올까 하는 마음으로 우리 부부는 외롭고 방황하는 복만이에게 잠시라도 안식처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러다 우리가 아이를 갖게 되고 산본 쪽으로 이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복만이와 멀어지게 되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당시 스물 셋, 막 결혼한 나와 복만이는 10살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지금은 2020년대 중반이고, 복만이는 어느새 사십대가 넘었을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오늘따라 더욱 궁금해진다.

복만이도 가끔은 나처럼, 1996년의 그 여름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1996,그해 여름의 추억이

복만이의 외로운 삶에 조금이라도 온기가 되었기를...


복만아, 잘 지내고 있니? 보고싶다~♡*^^*


https://youtu.be/eFdnVT3WZ_A?si=-B2aInkjo0w5t_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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