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oriteller 토리텔러 Dec 02. 2024

[돈이야기] 사랑하는 아이에게

(프롤로그) 큰 일 없이 중2를 지나 중3을 맞이하는 아이에게

여전히 네가 학원을 마치고 들어올 때 한 번이라도 더 안고 싶어 달려들지만 너의 완력은 이미 날 밀어내기에 충분할 정도구나. 그래도 억지로 팔에 힘을 줘 본다. 대놓고 찡그리고 싫어하는 네 표정을 보면서도 끌어당겨본다. 정수리에선 달짝지근한 아기냄새가 사라지고 사춘기 청소년의 호르몬 냄새 밖에 나지 않는다. 너의 기름기 가득한 냄새를 참고 맡는 나를 보니 유전자의 힘이란 참 대단해 뵌다.


나와 같은 공간에 있기 싫어하는 티를 내며 내가 등장할 때마다 너는 다른 공간으로 재빨리 퇴장하지만, 그래도 출퇴근때마다 나에게 건조한 인사말을 건네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우리 관계가 상대적으로 매우 양호하다는 점이다. 이렇게 너에게 글을 쓰는 것은 아빠로서 경제 관련 책을 내고, 2쇄도 아닌 3쇄도 아닌 2024년 12월 현재 8쇄를 찍은 사람으로 뭔가 너에게 경제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들은 내 아이가 자기보다 잘 살기를 원할 게다. 내 아버지,너의 할아버지,가 나에게 어떻게든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 하셨듯 나 역시 그러고 싶다. 슬픈 일은 내 아버지가 재벌이 아니듯, 나 역시 재벌이 아니라 너에게 물려줄 재산이 넉넉지는 않다. 


내가 전해 줄 이야기를 네가 언제 읽고 언제 공감할지, 또는 뻔한 잔소리로 여길지 모르지만, 나같은 재벌이아닌 부모가 해줄 돈과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서 중학교 때 서울에 올라와 고학하며 돈을 모은 나의 아버지이자 너의 할아버지는 개미같이 돈을 모으는 법 밖에 모르셨지만 적어도 돈의 소중함을 알려주셨다. 개미같이 모으는 것에 더해 내가 아는 돈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대박나는 비법이나 수백 %의 수익률을 내는 찍기 과외는 할 줄 모른다. 그저 경제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돈에 대한 생각을 좀 더 다듬어 알아듣기 쉽게 전달해 주고 싶다. 


경제 관련 뉴스를 읽고, 해석하고, 경제 원리를 설명하는 책을 내면서 늘 고민했던 것은 사람들의 생각과 내가 전달하는 것 사이의 큰 거리감이었단다. 경제원리를 잘 안다고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니고, 경제원리를 몰라도 돈을 잘 버는 사람도 있으니 아무 설명없이 돈에 관심을 가지라고, 경제에 흥미를 가지라고 말하면 들릴리가 없겠지. 그렇다고 콕 찍어 이 종목을 사라고 하거나 부동산을 사라고 말하지도 않으니 답답하고 지루한 이야기처럼 들릴 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네가 가난하게 살기를 절대 바라지 않지만 돈만 좇는 모습도 절대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아이와 지금 자라는 내 아이의 친구들이 돈에 대해 무지하거나 터부시 여기지 않으면서도 돈을 최우선의 가치로 놓고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글을 써보기로 했다. 이번 글은 몇 편이 되지 모르겠지만,많이 고민하지 않고 편하게 읽을 수 있을 만큼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넣어서 편파적으로, 지극히 개인적으로, 비학문적으로 보이더라도 생각들을 조금 담고 싶다. 


혹시 아니? 마음 착한 출판사 대표님이 감동을 받아 책을 내자 연락을 하고, 내 글에 공감하는 학부모님들이 책을 많이 사줄지? 맞다. 자동선택으로 로또 5천 원어치를 사고선 1등 되기를 마음과 비슷하다는 거 잘 안다. 인생은 그런 거다. 꿈같은 상황을 상상하며 배시시 웃는, 현실에서 되지 못하더라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그런 거. 항상 현실적이라면 인생은 매우 밋밋하고 답답할 거다. 꿈은 항상 크게, 즐겁게, 현실과 동 떨어지게 꾸는 게 좋다. 단지 현실과 꿈을 혼동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려면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오늘의 이야기 주제이자 기억해 주길 바라는 것은 아래 그림이다. 

네가 이 그림을 보고 뭔지 바로 알아채면 좋겠다. 아직 이 책이 청소년 권장도서로 많이 읽히는 책이면 좋겠구나. 이 그림은, 적어도 내 또래에겐, 매우 유명한 것이다. '생땍쥐베리'로 기억하는데 검색해 보니 생텍쥐페리로 쓰는구나. 아무렴 어떠니. 외국어 발음 적당히 비슷하면 되지 어차피 네이티브 스피커도 아닌데 말이다. 

암튼, 생머시기 작가가 쓴 '어린 왕자'라는 책 앞부분에 등장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다. 책에서는 주인공이 무서운 그림이라고 그렸지만 어른들은 '모자가 뭐가 무섭니?'라고 되묻는 이야기가 나오지. 굳이 이 그림을 끄집어낸 것은 아래 그림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란 그림을 보는 순간 아래 '정규분포 곡선'을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연결되지 않으면 비유가 잘못된 것이겠지만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그림은 정규분포 곡선과 비슷하다고 우기련다. 더 따지지 말고 넘어가자.


정규분포 곡선을 기억하면 좋겠다는 것은 회색과 흰색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너의 부모와 이 세상 대부분의 부모들은 회색에 속한단다. 소유한 부(=돈)의 크기로 볼 때 부자, 건물주, 성공한 사람이 아마 오른쪽 흰색의 2.1%에 해당할 거다. 그리고,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들로 분명 존재하지만 나의 친구이거나, 너의 친척이 아닌 '재벌'과 '준재벌'들은 가장 끝에 있는 0.1%에 해당할 거다. 


이 그림은 보편적인 사람들을 보여준다. 회색지대인 95.4%에 속하는 대다수 보통사람들이 이 세상의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네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95.4%의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은 경제이야기다. 경제라고 하니 고상해 보이는구나.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95.4% 사람들의 돈 이야기란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네가 오른쪽 2.1%, 0.1%의 부를 갖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난 네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소박한 소원인 '재벌의 아들'이 되진 못했지만, '재벌의 아버지'가 되기 싫은 건 아니니까. 내게 '재벌의 아버지' 자리가 주어진다면 겸손하게, 거들먹거리지 않고 영광스럽게 받아들일 준비는 이미 되어 있다. 


이해해 주기 바란다. 네가 재벌이 안되어도 너를 여전히 사랑하고, 여전히 내겐 네가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란다. 100억을 줘도 너와 바꾸지 않을 거고, 1000억을 줘도 1조를 줘도 바꾸지 않을 거다. 더 큰 금액은 제시하지 말자. 생각해 본 적 없지만 혹시라도 흔들릴까 봐 무섭구나. 


이 글은 이렇게 시작을 하는데, 어떻게 끝맺음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냥 이 공간에서 좀 편하게 경제로 포장된 돈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어디로 이 이야기가 흘러갈지 지켜보자꾸나. 


그래도 네게 좋은 일 하나는 있다. 내 책의 저작권은 나의 사후 50년간 보장되고, 그 저작권은 높은 확률로 네게 상속이 될 거다. 1년에 저작권 수입료가 얼마나 될지는 따지지 말자. 뭔가 있어 보이는 자산을 줄 수 있는 것에 만족하는 나의 행복감을 돈의 가치로 환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표작인 '세상 친절한 경제상식' 초판이 7쇄를 찍었고, 개정판이 8쇄를 찍었으니 개정개정판은 9쇄를 찍지 않겠니? 3년에 한 번씩 개정판을 낸다고 하면 앞으로 6년 뒤엔 10쇄(십쐐) 저자가 될 수도 있다. 꿈은 꾸자. 내가 볼 때 미래의 창 출판사 대표님은 마음씨 좋은 분이니 개정개정판도 내주실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