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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Feb 04. 2024

오늘은 참 날이 추웠다.


오늘은 참 날이 추웠다. 겨울이지만 왠지 온화한 겨울 같다며 자만하던 차에 영하 11도까지 내려가는 한파를 맞이했다. 작업실로 가는 출근길에 볼이 따갑다고 느끼는 추위는 오랜만이었다. 이 추위가 단지 계절의 추위이면 좋았을 텐데, 올해 벌써 내게 닥친 인생의 무시무시한 한파였다.


종종걸음으로 퇴근하니 우리 집 상전 고양이 뚜이가 나를 반겼다. 무심한 고양이지만 내가 퇴근하면 자주 나를 마중 나온다. 뚜이와 짧은 재회를 하고 저녁을 먹고 내가 좋아하는 테니스 경기를 보면서 요즘 취미인 뜨개를 하고 있는데 동생이 뚜이가 있는 방에서 내게 다급하게 소리쳤다.


“마스크 끈이 없어! 두쪽 다!!!”


동물에게 선형 이물은 굉장히 위험하다. 그 끈이 내장에 걸려 장폐색이 오고 그로 인해 죽음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뚜이는 전에 실을 삼켜 수술을 한 경험이 있어 우리는 지체 없이 뚜이를 안고 24시간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뚜이를 안고 나온 바깥의 바람은 인정사정없이 차가웠다.


병원은 차로 20분 거리. 그 20분이 내게 2시간처럼 느껴졌다. 새벽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도로에는 왜 이렇게 차가 많은 건지. 애꿎은 사람들을 원망하며 그럼에도 최대한 안전하게 운전해 병원으로 향했다.


동물병원 응급실엔 아무도 없었다. 선생님은 차분하게 우리를 진료실로 안내했다. 선생님이 차분하게 대해주시니 흥분해 있던 나도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어떤 상황인지, 어떤 처치를 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결국 뚜이는 위에 남아있을 마스크 끈 2개를 뱉어내기 위해 구토유도제를 맞기로 했다. 고양이 구토유도제는 사실상 구토유도제라기보다 마취안정제의 부작용을 이용하는 거라고 했다. 아이를 어지럽게 만들어 구토하게 하는 거다. 말만 들어도 내가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그 처치를 하러 선생님 손에 들려가는 이동장 안의 뚜이를 보니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너무 무서웠다. 이미 실 때문에 위험한 경험을 했었기 때문에 평소 얼마나 조심을 했는데……  강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매일 치우고 또 치우며 살았다. 혹시 뚜이가 뭐라도 주워 먹을까 봐. 집에 있을 때도 한시도 뚜이에게 눈을 떼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아주 잠깐 사이에 뚜이가 직접 가방을 뒤져 마스크를 꺼냈고 끈을 잘라먹어버렸다. 정말 억울했다. 그동안 내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보란 듯이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다니. 한없이 냉정한 세상에 몸서리가 쳐졌다.


병원에서 구토유도제를 먹은 뚜이가 마스크를 토해내기를 기다렸다. 아무도 없는 병원은 다른 날보다 더 휑하게 느껴졌다. 의자는 불편하고 히터 바람은 너무 건조했다. 의사 선생님의 말로는 구토유도제를 먹으면 보통 10-20분 사이에 구토를 한다고 했다. 다만 너무 경계심이 높고 예민한 고양이의 경우 구토를 하지 않을 확률도 있다고. 그 고양이가 바로 우리 고양이였다. 뚜이는 구토를 참아냈다. 50분이 경과하자 의사 선생님은 뚜이가 너무 경계를 하니 편안한 장소로 돌아가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병원에 간지 약 한 시간 만에 다시 뚜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한 뚜이는 이곳저곳 불안한 듯 돌아다니다가 10분 만에 마스크 끈을 토해냈다. 뚜이가 토할 때 박수를 쳐본 건 처음이었다.


그때부터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내 손에 조금씩 온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구토유도제 때문에 뚜이는 그 이후에도 몇 번 더 구토를 했고 계속 기운이 죽 빠진 채였지만 이 증상은 24시간 정도 지나야 호전된다고 하니 좀 더 기다려 볼 일이었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제야 터덜터덜 내 방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누웠다. 잠이 쏟아졌다. 뭐니 뭐니 해도 내 집, 내 방만큼 아늑한 곳도 이 도시엔 없을 것이다.


* 박완서 작가를 오마주하며 그녀의 에세이 <겨울 산책>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인용해 이 에세이를 완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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