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산만하고, 할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만 받고, 일을 잘 정리하지 못했다.
그 이유를 생각하다가 내가 너무 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있었고, 그 정보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휘둘렸음을 깨달았다.정보들이 주장하는 말에 '이래야 하나?', '내가 잘못된 건가?' 고민하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내가 자꾸 흔들렸던 이유를 한 마디로 말하면,
수동적으로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했기 때문이다.
1. 너무 많은 콘텐츠
나는 IT 서비스 기획 업무를 하고 있는 만큼, 온라인 서비스 경험은 내게는 무조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자기계발, 직무 인사이트, 재테크 관련 콘텐츠 위주로 구독하다 보니 좋은 자극을 주기도 했어서 크게 개의치 않고, 팔로우를 계속해왔다.
나는 주로 인스타그램, 유튜브, 브런치, 네이버 블로그, 티스토리, 링크드인을 돌아다니며 정보들을 보곤 하는데 자기계발 콘텐츠의 "이렇게 해라!", "이러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자주 접했고, 무의식적으로 그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충돌되는 여러 사람의 주장들은 나의 한 켠에 의문과 함께 섞여 남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구독 대상을 검열하지 않았다. '도움 되는' 것을 넘어 '도움 될 것 같으면' 쉽게 구독 버튼을 눌렀는데 최선의 선택이 아닌 정보들도 내 피드에 노출되었고, 꼭 성실하게 읽는 게 아니라 보고 스치기만 해도 내 머릿속에는 잔상으로 남았다. 그 잔상들이 나중에도 생각나며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나를 산만하게 만들었다.
이 글을 적으며 실제로 내가 얼마나 많은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었는지 세어보니 인스타그램만 2,000명 이상 팔로잉 중이었다. 약간 충격을 받았고, 다른 앱들도 내가 얼마나 많이 팔로잉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인스타그램: 2,000명 이상 팔로잉 중 유튜브: 998개 채널 구독 브런치: 196명 관심작가 설정 네이버 블로그: 438명 이웃 카카오톡: 1,860명 친구추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29개 링크드인: 180명 팔로우
총 5,701개 팔로잉 중이란 숫자를 눈으로 확인하니 내가 실제로 너무 많은 정보를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2. 너무 많은 관계
나는 원체 다른 사람들을 궁금해하는 편이다.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사람들이 본인의 일상과 생각을 올리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눌러본다. 그들이 오늘 어떤 일을 했는지 알며 즐거움을 느끼고, 멋지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응원의 메시지와 하트를 보낸다. 그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연결감을 느끼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들의 일상을 볼 수 있는 것은 즐겁지만, 동시에 나의 시선이 내 삶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삶을 향해 있음을 요즘 유독 느낀다. 내가 가장 궁금해해야 하는 건 내 삶인데 외부로 관심이 가있다 보니, 종종 내가 텅 빈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한편, 현실의 관계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를 초과한 지 오래됐다. 내가 인스타그램에서 다른 이의 삶을 보는 데에 시간을 많이 쓰는 것도 결국 현실에서 그 관계를 다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관계를 대체하게 된 것 같다.
대학시절 대내외 활동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여러 집단에 소속되었었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감사히도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나는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을 좋아했다. 꽤 친하고 소중한 관계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의 숫자도 많았다. 대학생 때는 매일 점심, 저녁 사람들을 만났고, 이외의 시간은 애인과 보냈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직장인이 된 지금은 현생이 바빠 약속을 조정해서 잡고 있어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포용할 수 있는 숫자를 넘어선 인간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온라인으로나마 그들의 삶을 보고 관계를 맺고자 했다. 그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남들에게 쓰는 시간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3. 정리되지 않고, 계속해 몰아치는 일들
마지막 세 번째는 회사의 일이다. 회사에 입사하고서 모든 것이 새로웠다. 바쁜 게 끝나고 괜찮을 즈음 하면, 새로운 일들이 생겼다. 매일매일 터지는 신박한 이슈들과 낯선 상황들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요즘은 많이 괜찮아졌지만, 아직은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일을 매니징 하기보다는 끌려 다니는 게 큰 것 같다.
계속되는 회의와 새로 들어오는 업무들에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 쌓아놓은 기록은 많지만, 정리하지 못했다. 정리되지 않고 주르륵 기록만 된 자료들이 너무 많아서 다시 찾아볼 때 어려움도 있고, 그렇다고 이를 이중으로 정리할 시간은 없었다. 소화하지 못한 많은 배움들을 매일같이 온 마음과 머리로 쏟아내 받아내고 있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면 진이 빠져 피곤해 추가로 시간을 쓰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실수를 하기도 하고, 일에 허덕이는 나를 보며 자괴감도 느꼈다. 대충 씹어 넘기고, 여차저차 처리'는' 된 일들이 쌓이며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건 맞는지, 이런 명쾌하지 않은 상황들을 언제까지 이어가야 할지 갈피를 잘 잡지 못했다.
이제는 내 중심을 잡고
너무 많은 정보를 이렇게 쉼 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는' 일상 속에서
내가 희미하고 작아져감을 느끼며 작게라도 '내 것'을 꺼내어놔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엔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이의 자문을 구하거나 정보를 찾으려 했다.
질을 담보하지 못하고, 그저 많은 양을 쏟아내는 정보에 허덕이면서도 나는 다시 해결책을 남에게 구하며 인풋으로 이를 해소하고자 했던 것이다. 인풋은 그만하고, 이제는 아웃풋을 내며 혼란스런 내 머릿속을 명쾌하게 만들고 싶다.
생각해 보면, 내가 가장 강하고 단단했을 때는 나의 말을 할 때였다.
지금은 뭔가 많은 생각들과 잔상이 머릿속에 많기는 하지만, 내 말이 아니라 남들이 하는 말이다.
내가 가진 생각과, 내가 배운 것들과,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내 언어로 표현해야겠다.
나는 이것을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의 삶이라고 말하며 브런치 글을 적는 것도 그 다짐의 실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