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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blue sky Nov 01. 2021

노랑 사랑

아홉 병아리의 사랑 이야기


어린 시절 집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친구네 양계장이 있었다.

그때는 계란 프라이도 흔하게 먹질 못했고, 요즘 아이들은 웃겠지만 소풍이며 운동회 때는 항상 삶은 계란이

빠지질 않은 시절, 그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어머니께서 양계장 한편에 석유곤로를 피우고는 프라이팬에 연신

계란 프라이를 해주셔서 맛있게 먹으며 항상 계란 프라이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친구를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하루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저녁상에 올릴 폐계 (산란을 하다 알 낳는 능력이 저하된 암탉)를 사러 양계장에

가던 길이었다.

양계장 입구에는 냄새가 지독한 큰 거름 더미가 두어 덩이 있었다.

항상 그 부근을 지날 때면 지독한 닭똥 냄새 때문에 코를 틀어막고 뛰어갔는데,

그날은 지나가는 곁눈질에 계란 껍질 사이로 노란 것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뛰던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뒤로 돌아가 보니 움직이는 것은 다름 아닌 노란 병아리.

양계장에서 계란을 부화시켜 태어난 병아리는 암수 감별을 거쳐 암컷만 산란용으로 사육이 되고,

수컷은 대부분 죽음을 맞는다.


살아있는 10마리의 병아리는 모두 이런 이유로 버려진 병아리였다.

폐계 한 마리와 병아리 10마리를 한 번에 들고 갈 수는 없어, 폐계를 어머니에게 먼저 드리고 난 뒤,

상자를 들고 다시 양계장으로 내려와서 그 병아리들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때는 초봄, 날씨가 조금은 쌀쌀했지만 거름 더미의 온기 때문에 얼어 죽지 않고 살아 있었던 것 같았다.


“야야, 그 어린 병아리 다 죽을 긴데 뭐 하러 데리고 와서 이 난리고”


어머니의 핀잔 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먼저 잠 잘 곳을 마련했다.

박스 위로 낡은 담요를 하나 덮고는 바람이 들지 않는 외양간 한편에 두고 사료와 물을 넣어 주었다.

 ‘삐약삐약’ 거리는 소리와 움직임이 너무 귀여워, 쪼그리고 앉아서 병아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1시간은 그냥 지나가기 일쑤였다.

저녁이 되면 그곳도 추워지므로 몰래 마루 안에 두었다가 아침이 되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학교에 다녀오면 병아리들을 마당에 풀어놓고, 따뜻한 봄 햇살과 함께 노란색 솜뭉치가 굴러다니듯이

줄을 지어서 돌아다니는 병아리를 보며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흘러 병아리들 중 몇몇은 날개와 꼬리에 노란 솜털 대신 하얀 깃털도 나오고,

커진 덩치만큼 울음소리도 커져 더 이상 마루에 몰래 둘 수는 없었다.


사건이 일어난 그날 밤은 마루 문 밖에 병아리 집을 내놓고 담요를 덮은 채 밤을 보냈다.

계절상으로는 봄이지만 그날 저녁은 유난히 추웠나 보다.

아침에 마루 유리문에 성에가 끼고 세면대의 물통 위에는 살얼음까지 얼었다.

보통은 아침에 인기척이 나면 ‘삐약’ 거리는 소리를 많이 내던 녀석들이 그날따라 너무 조용한 것이었다.

뭔가 이상한 기분에 담요를 들어 병아리들을 확인하는 순간, 이상환 광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큰 병아리들이 한 마리의 작은 병아리를 가운데 두고 둘러싼 채 있는 것이었다.

중앙에 있는 한 마리의 병아리만 온기가 느껴지고 눈을 깜박일 뿐, 나머지는 모두 몸이 차갑게 굳은 상태였다.

     

 ‘그냥 하루만 더 마루에서 잠을 재웠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 왜 한 마리만 저렇게 중앙에 보호받듯이 살아남았을까?’하는 복잡한 생각이 한참 동안 남아있었다.


그 당시 집에는 평범한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는데, 의지 할 곳 없는 병아리는 조금씩 커가면서

강아지와 자주 시간을 보냈고, 완전히 성계가 되고서는 마련해준 보금자리는 마다하고 강아지와 한집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닭이 낮에 강아지 집에서 쉴 때면 강아지는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밖에서 쉬면서 자신의 집을 내어주고,

닭이 자리를 비우면 그제야 집안에 들어가서 쉬곤 했다.

그러다가도 밤이 되면 서로 몸을 의지하며 같이 잠을 자는 이상한 동거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개집에서 이상한 것이 발견되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흰색의 계란.

당연히 수컷으로 알고 있던 닭은 암컷이었고, 그제야 그날 아침의 모든 의문이 풀렸다.     


초봄의 따뜻한 기운이 사라진 그날 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자 모두 자신의 체온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여러 마리의 수컷들은 한 마리의 유일한 암컷을 중앙에 둔 채, 밖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냉기를 자신의 몸으로 막고,

안으로는 자신의 온기를 전해주어 밤새 제일 암컷 병아리의 체온을 유지시켜 주었던 것이었다.  

자신의 생명이 꺼져가는 줄도 모른 채...


약한 암컷을 보호해주는 동물들의 알 수 없는 보호본능.

나이가 들고서야 아홉 마리의 수컷 병아리의 희생에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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