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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Dec 13. 2022

20년차 초보 주제에

운전자가 돼보니

픽사베이

대학교 2학년 때 운전면허를 땄다. 같이 딴 동생은 바로 아빠차로 '연수'를 받았는데 나는 아빠의 승합차, 그러니까 봉고차가 너무 무서웠다. 아빠는 "높은 차가 초보가 운전하기 더 좋은데"라셨지만, 어쩌나, 하는 내가 무서운 걸. 그렇게 20년 동안 운전면허증은 나한테 그냥 신분증이었다.


많은 엄마들처럼 나도 애들 때문에 결국 운전을 시작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는 일을 할 때도 안하고 버텼는데, 역시 자식은 참 대단한 존재들이다. 엄마들 사이에서 학원을 알아볼 때 "셔틀 되냐"고 묻는 건 게으르다는 뜻이라던가. 과장섞인 한탄이지만, 큰애가 중딩이 되면서 실감하는 부분이 있었다. 마음에 드는 학원들은 셔틀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히 그럴밖에. 셔틀 안되도 대기자가 줄을 서 있다.


아무튼 뭐 그런 이유로 나는 올해 5월에 정식으로 운전 연수를 받기 시작했다. 회사를 완전히 그만두면서 시간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는 6개월째, 벌써 유사고 운전자인 나는 다사다난 20년차 초보로 살고 있다.


운전연수를 맡아준 선생님은 나에게 "운전자와 보행자는 서로를 믿으면 안된다. 그런데 보행자는 차를 믿고, 차는 보행자를 믿는다"고 했다. 신뢰없는 세상, 여기선 왜 신뢰가 넘치는가. 생각해보니 보행자였던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차가 피해가겠지, 운전하는 사람이 잘 피하겠지.


그런데 운전해보니 보행자는 차를 믿어서는 안된다. 나같은 초보운전자가 한둘이겠나. 특히 초보운전자들은(사실 사람은 대부분) 돌발상황에는 당황해서 판단력이 떨어진다. 내 첫 사고도 그랬고(좁은 골목길에 잘못 들어갔다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자 당황해서 후진하다 뒤차를 들이받았다).


운전자가 되고보니 배운 것 중에 내가 보행자일 때 이렇게 하면 안되겠구나 하는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우회전하는 차를 조심하라는 거다. 남편이 충고하길 운전할 때 우회전이 진짜 위험하다 했다. 좌회전은 차만 신경쓰면 되는데 우회전은 반대편 차량과 도보의 보행자도 신경써야 한다는 얘기였다. 해보니 과연 그랬다. 초보는 도로에 들어가는게 너무 무섭다. 반대편에 차량만 확인하고 있는데 보행자가 차가 있는 도로로 진입 중인 경우가 생각보다 정말 많다. 책임은 차가 더 크게 지지만, 그렇다고 우리 몸을 덜컥 남의 보험에 내맡길 수는 없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횡단보도 앞 대기 중에 너무 차도 쪽으로 붙지 말아야겠다는 거다. 지하철 같이 탈선 위험이 없는 운송수단도 들어올 때 한걸음 뒤로 물러나라고 하지 않나. 본인도 그렇지만, 다른 것보다 본인은 한 걸음 물러나 있는데 유모차나 휠체어 등을 부지불식간에 횡단보도에 내밀고 있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그럴 수 있다. 내 몸이 횡단보도에서 한참 떨어져 있으니 멀찍이 떨어져 있다고 느낄 것 같다. 그런데 너무 위험하다.


차가 멈춰져 있더라도 차에, 특히 차 뒷부분엔 너무 가까이 붙지 않는 것이 좋다는 얘기도 꼭 하고 싶다. 특히 보행자 입장에선 차가 전진할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차는 후진할 수도 있다. 주차된 게 아닌 정차 상태의 차는 후진할 수도 있다. 슬프게도 이 역시 첫 사고로 배운 바다.

 

나는 여전히 운전자보다는 보행자일 때가 더 많다. 이런 글을 쓰는 건 운전해보니 운전하지 않는 보행자일 때 내가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절실하게 느껴져서다. 운전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대체로는 별일이 없겠지만, 혹시나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데, 돈은 운전자가 많이 물어줄 지라도 신체적 피해는 보행자 쪽이 더 크다. 사고나고 손실을 따져봤자, 손해는 내 몸이 제일 크다. 운전을 한 이후 나는 보행자일 때 차를 더 조심하게 됐다.


제까짓게 언제부터 운전했다고. 내가 운전자 입장에서 보행자에게 조심하자고 말하는 날이 오다니. 세상만사는 모를 일이다.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땀을 한바가지 흘리는 초보는 오늘도 운전자로 또 보행자로도 길에서 하나하나 배우며 기어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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