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린츠는 기차를 타고 비엔나나 잘츠부르크, 혹은 뮌헨이나 취리히를 가다가 한 번쯤 정차하게 되는 교통의 요지다. 머물기 위함보다는 환승을 위한 곳.
비엔나, 그라츠에 이어 오스트리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라는데, 관광책자에도 거의 끼지 못한다. 말하자면, 3등스럽다고 할까.
그런데 꼭 가야 할 곳도, 꼭 해야 할 일도 없는 곳이기에 얼마든지 마음 편히 지내다 가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도시. 린츠는 그런 곳이다.
린츠역에 내리면 고민 없이 택시를 타고, ‘아르코텔’을 외친다. 광고는 아니지만, 이 호텔은 린츠에서 머물러야 할 곳 중 하나다. 린츠를 가로지르는 도나우강 옆에 위치해 있어서 이른 새벽에도, 조식을 먹을 때도, 잠시 쉬러 들어와 침대에 누웠을 때도, 잠들기 전 어둑할 무렵에도, 창문으로 도나우강과 강건너 풍경을 볼 수 있다.
제공 : 미지의 세계
사실 도나우강은 별로 ‘아름답지도 푸르지도’ 않다. 호텔의 진짜 매력은 개를 데리고 산책하거나 조깅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아침저녁으로 강변을 어슬렁거릴 수 있다는 점이다. (비싼 값을 한다.) 테라스에서 조식을 먹을 때도 강아지와 참새들이 자주 들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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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텔 바로 옆에는 브루크너하우스가 있다. 매년 9월 린츠에서 태어난 작곡가 요제프 안톤 브루크너(Joseph Anton Bruckner)의 이름으로 브루크너 페스티벌이 열리고, 이 기간에는 브루크너하우스에서 거의 매일 콘서트가 열린다. 실력 있는 교향악단과 지휘자의 연주를(무려 옆집에서!) 들을 수 있다.
잘츠부르크 축제가 8월 휴가철 관광객과 클래식 팬들이 뒤섞인 분위기라면, 부르크너 축제는 훨씬 진지하고 클래식하다. 카라얀이 음향 상태에 합격점을 줬다는 부르크너하우스는 최근에 리모델링을 거쳐 현대적인 느낌이면서도 메인 콘서트홀은 아늑하다. 음악 소리가 홀 구석구석을 충실하게 채워 끝자리에서도 풍부하게 들린다.
출처 : linztourismus.at, 미지의 세계
도나우 강변 산책이나 음악 감상이 지겨워질 때쯤엔 걸어서 시내를 향해본다. 버스를 타도 되지만 걸어서도 10분 정도면 중앙광장(Hauptplatz)에 도착한다. 광장 주변 상점, 뒷골목 골동품 가게를 모두 둘러보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마음에 드는 카페나 식당을 발견했다면 잠시 노천에서 쉬어가도 좋다. 비엔나에 자허토르테가 있다면 린츠에는 린처토르테가 있다. 물론 린츠 지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슈니첼(튀긴 고기)이나 타펠슈피츠(삶은 고기) 같은 현지식을 먹어도 좋고, 그냥 피맥도 좋다. 마침 9월이라면 새콤달콤 톡 쏘는 햇와인(Sturm)도 곁들이며 햇볕을 쬐어보자. 소소해 보이지만 딱 이맘때만 누릴 수 있는 대단한 특혜다.
제공 : 미지의 세계
린츠 중심가에 있는 신성당(마리엔돔)은 꼭 한번 들러볼 만하다. 구석구석 화려한 디테일을 뽐내는 유럽의 여느 성당들과는 다른 모던하고 힘 있는 느낌의 성당으로, 운이 좋으면 거대한 파이프오르간 연주도 들어볼 수 있다. 웅장하고 아름답다.
광장에서 출발하는 트램을 타면 도나우강 건너 푀스트링베르크산에도 쉽게 오를 수 있다. 호텔에서 도나우강 너머로 보이던 그 산이다. 성당 옆 레스토랑과 카페들은 린츠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훌륭한 뷰를 자랑한다.
창가석으로 예약해 식사해 볼 것을 강추한다. 물론 그냥 전망대에서 린츠 시내를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제공 : 미지의 세계
도나우강이 흐르는 오스트리아 북부의 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도시는, 알고 보면 여기서 유년시절을 보낸 히틀러가 작정하고 키운 도시이자 세계적 철강회사가 있는 산업도시이다. 과학기술과 예술을 주제로 한 전시관 아르스일렉트로니카를 지날 때면 잠시 잊고 있던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도 린츠는 그냥 린츠다. 노랫말과는 다른 진짜 도나우강이 흐르고, 여행의 강박 따윈 날아가버리고, 9월이면 부쩍 생각나는 곳.
누군가 그랬다. 금메달은 감격해서 울고, 은메달은 원통해서 울고, 시상대 위에서 싱글벙글 웃는 건 동메달뿐이라고. 그래, 역시 린츠는 1등이 아니어서 행복한 곳이다.
"린츠, 1등이 아니라서 좋아."
당신의 심장을 설레게 할, 당장 배낭을 꾸리게 만들, 그곳으로 떠나야 할 단 '한 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