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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D Feb 19. 2024

첫 인류가 우리의 끝이 되기 위해

퍼스트 맨 / 데이미언 셔젤 2018


    때는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의 냉전을 더욱 과열시킨 우주개발은 내부 전쟁의 새로운 전망을 암시한다. 두 나라의 무방비한 대립이 초래한 자아실현은 똑같이 무방비한 결과들을 불러온다. 증폭된 인종 차별, 베트남 참전의 비극적인 여파, 우주개발로 인한 막대한 예산 등, 사회의 갈등과 불안은 내부적으로 더 깊게 침투해 간다.


   닐 암스트롱이 인수받은 국가의 임무는 외부와 내부의 전쟁을 동시에 치러내는 일이었다. 그의 존재는 자국의 명예와 자존심이 걸린 경쟁에서 모든 것을 걸었던 승부사인 동시 자국민들의 기대 섞인 반감을 부추기는 자극제였다. 그렇게 한 인간이 짊어진 여럿의 고독은 어수선한 침묵과 단념으로 고착되어 간다. 영웅이자 죄수인 암스트롱의 두 얼굴은 사람들의 쾌락과 질타의 소모품으로 전락되어가고 있었으나 정작 암스트롱은 그들의 포부에 반응하려 들지 않는다. 묻지 않음으로, 스스로 그 물음에 답하지 않음으로 불화의 어느 편도 긍정하지 않는다.


   

   암스트롱이 바라보는 우주는 앞서 떠나보낸 딸과 동료들을 향하는 길이었다. 자신을 소모해 가면서 다다를 수 있는 상실과 공포의 행로, 완곡한 죽음의 중력을 위태로운 삶의 역량으로 견뎌내야 하는 오롯한 외길이었다.

   마침내 도달한 달착륙이라는 인류의 첫 성취. 낙담했던 자국은 자축하고 의아해했던 자국민들은 환호한다.

그러나 암스트롱의 침묵은 기한 없이 이어진다. 쓸모로 환원되는 삶의 모든 산술들을 무력화시키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회복하기 위해, 꿈의 종착지인 달나라에서도 암스트롱의 현실의 무게는 0kg이다.

   그를 앞서간 생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그를 이어갈 생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암스트롱은 삶에 대해 섣불리 묻지 않는다.


   영화 '퍼스트 맨'은 인류 역사의 새로운 도약이 되어준 한 개인을 주목한다. 경쟁구도를 통한 성공의 화려함과 승리의 황홀함의 간헐적 보수로서의 도약이 아니라 가치 실현을 위해 현실 밖 미지로 한도 없이 소모되어 가는 존재들을 다시 생의 터전으로 데려올 회복으로서의 도약이다. 그러나 이 거대한 약속의 배후는 상실과 죽음만이 만무한 곳이기에 첫 도약을 치러야 하는 갚은 곧 목숨 값일 수밖에 없다.

   인류의 첫걸음이 되는 일은 이전 것들을 짊어지고 저 멀리 외로운 달나라로 사라져야 하는 일. 달 표면에 찍힌 발자국, 곧 진화하는 인간상만을 예찬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는 어쩌면 한 개인의 일생을 저버린 과오를 범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전 것은 '나와 함께' 사라졌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암스트롱의 날갯짓은 불화로 인해 상실된 마음의 창공을 순례하며 위로한다.


    2000년 전, 메시아라는 무명의 이름으로 지구의 착륙한 '퍼스트 맨'은 존재하는 대립의 모든 형태들을 온몸으로 찢음으로써, 그의 모든 걸 내줌으로써 불화의 모든 불씨를 종결시켰다. '첫 인간'의 찢음 이후에도 세상은 다시 분열의 역사를 스스로 이어가고 있지만, 어쩌면 인류의 남겨진 과제는 결합이라는 이름을 폭력의 수단으로 남용하는 것이 아니라, 2000년 전의 나그네가 걸어온 외길을 따라 균열된 삶의 증상을 묵묵히, 그리고 기약 없이 인지하며 품어내는 것일 것이다.


    메시아는 모든 분열, 단절과 불화 속에서 오늘도 우리 안에 분주한 침묵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다. 부디 어설픈 나의 언어가 삶에 대해 섣불리 묻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First Man <퍼스트 맨>, Damien Chazelle, 2018]

Casts: Ryan Gosling, Claire Foy, Corey Stroll, Kyle Chandler, Jason Clarke, Patrick Fugit, Pablo Schreiber, and more.

Universal Pictures, October 18, 2018 (South Korea)  


2020년 10월 13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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