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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D Feb 19. 2024

정확하게 불가능한 사랑

답장 + / 김동률 2019

'답장' EP 앨범 (2018) 이후 4곡의 싱글들을 함께 엮어 발매한 답장+ 리패키지 앨범 (2019)




   사랑은 세상의 모든 면적과 면적의 마디들을 하나의 초점으로 집결시키는 힘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세상의 모든 지면과 관절들을 아우르고 진찰하는 것도 사랑이라는 편재(遍在) 여야 할 터. 초점을 도모하는 동시 분산을 감행하는 일은 마치 과녁의 중심을 겨냥하는 총기의 조준선을 불일치시키는 것과 같다. 그렇게 사랑은 이런 오묘한 기술로 모든 잠재적 정의에서 빠져나간다. 우리의 가여운 눈으로는 이 기이한 존재를 식별할 수 없다.  

   사랑이라는 딜레마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사랑의 역사는 초점으로 집결되는 곳에서 쓰이는 것뿐만 아니라 초점의 대상들이 전체를 응시하는 곳에서도 쓰인다는 것이다. 초점의 대상과 대상이 바라보는 전체의 오고 가는 눈-맞춤이 없는 사랑은 보살피지 않는 사랑, 곧 자의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일 수밖에 없다.


   생텍쥐페리는 '사랑은 두 사람이 마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Love does not consist in gazing at each other, but in looking together in the same direction)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 눈-맞춤은 서로 보고 싶은 얼굴을 주야장천 뚫어져 보는 것 (초점)에서부터 함께 상대방의 이면에 도사린 사랑의 행방 (분산)까지 바라볼 수 있는 '보살핌의 눈빛'이라는 것이다. 사랑의 오고 감을 통해 사랑의 발생지와 현재시제에서 종결점까지, 하나의 일렬 된 방향을 '함께'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정현종 시인의 말처럼 '사람은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가 함께 일생으로 찾아오기 때문에' (시 '방문객' )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실로 지금 그 사람 (초점)과 그의 잠재적 여럿 (분산)을 사랑하는 이 안에서 공생하게 하는 것이다. 삼위일체적 존재로 거듭난 이 연인은 마치 다양한 시선들을 조화롭고 객관적으로 기술하고자 했던 입체주의 작품 속에 등장할 만큼 혼잡한 존재이다. 하지만 그 혼잡함 속에서 우리는 사랑의 엄연한 구조를 발견한다. 일차원에 국한된 눈으로는 감히 식별할 수 없어도 눈-맞춤이라는 통로를 통해 발견되는 사랑의 광활한 면적들을 말이다.    


    김동률의 '답장'은 사랑의 정확한 행방을 묻는다. 서로만을 바라보는 눈이 이젠 함께 어딘가를 힘껏 주시하기를 원한다. 그 어딘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도, 또 부정할 수도 없는 곳. 하지만 그것이 지속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바로 당신이라는 존재 때문. 당신과 함께라면 그 어딘가는 그 어디어도 좋다. 장담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그 어딘가가 바로 내 옆의 사랑하는 당신이기에. 그렇게 분산된 초점을 다시 모으고 모아진 초점을 다시 분산시키며 광활한 당신의 면적을 훑는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1.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 말을 미룬다 (“나 아무래도 내일 쓸까 봐 또 미룰래” - from ‘답장’)
2. 닿아있기 위해 거리를 둔다 (“그 눈빛이 머무는 그곳은 난 헤아릴 수 없이 먼데” - from ‘사랑한다 말해도’)
3. 알기 위해 모른다고 한다 (“난 아무도 아니고 네 손끝에서 다시 태어나고” - from ‘Contact’)

    그의 머뭇거림과 어설픔이 사랑의 다방면의 견적을 훑고 한 마디의 고백으로 태어나는 순간, 그의 진실한 ‘보살핌’이 느껴지는 것은 그가 여전히 자신을 모른다고 온 마음을 다해 고백하기 때문이다. (“내 안의 움찔거리는 그게 뭔지는 몰라도” - from ‘노래’). 그의 무지는 하나의 거대한 역설로 태어난다. 사랑을 진정으로 알려고 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모르는 법. 진정으로 모르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역량을 가질 자격이 있는 법이다. 단 한 번의 시간에 ‘널 사랑해’라고 말하기 위해 김동률의 목소리는 쩔쩔매는 악단과 함께 사랑의 광활한 마디마디를 응시하는 중이다.


2020년 10월 1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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