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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D Feb 19. 2024

메추라기 먹을 것

헤어짐과 헤아림



2022년 10월 1일

약 12시간 진행된 촬영 속

약속에 없었던 영화가 만들어졌다

 ↓

유튜브 링크 [단편 '메추라기 먹을 것']


    군대에 입대하고 3개월이 지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내가 제대할 때까지만 사는 게 소원이라 하셨다. 소원은 결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어쩌면, 약속이 '소원'해진 탓일 수도 있겠다. 약속은 깨어짐에 허약하지만 소원은 쉬이 겨누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약속은 지켜져야 성취되는 결과이지만 소원은 지켜지지 않아도 성취되는 무엇이라 할 수 있겠다. 아니, 성취의 범위에 있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할머니의 신성한 불-성취를 이제야 조금은 헤아릴 수 있다.


    단편 영화 '메추라기 먹을 것'은 헤어짐과 헤아림을 동일 선상에 두려는 지극히 사적인 시도이다. 할머니의 기일에 재회한 두 남매의 가정의 하루를 그린 이 이야기는, 동일한 하루에 얽힌 6명 제각각의 헤어짐을 묘사한다. 같은 기억 (또는 기억의 대상)을 누군가는 처분하고 누군가는 되찾으려 한다. 누군가는 가능성을 제기하고 누군가는 가능성을 경계한다. 누군가는 기억을 보존하고 누군가는 기억을 창작의 요소로 사용한다. 필연적으로 저마다의 태도는 '공유'되고, 공유되어 가는 과정에서 개개인은 보지 못하던 진실의 다각을 제공받는다.


    이들은 헤어짐, 그리고 잠재적 헤어짐을 경험하며 배워간다 - 지나가버린 시간을 묵상하며 잔여 헤어짐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들은 헤어짐의 간격에서 깨닫는다 -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타자들로 인해 보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새로운 눈이 바로 '헤아림'이라는 선물임을.


     그러니 이 영화는 여섯 가지의 시각으로 할머니의 '소원'을 헤아리려 했던 나의 뒤늦은 이별 기록이다. 지나가 버린 것들을, 사라져 버린 것들을, 그래서 더더욱 보이지 않고 보잘것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남겨진'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내고 기억해 내는 행위이다. 나의 현재는 과거를 경유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으며, 나의 미래는 지금을 경유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현재를 사랑하는 메서드에는 필연적으로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상호 인식이 동반된다. 이러한 공식을 근거한다면 과거, 현재, 미래는 직선적인 타임라인이 될 수 없다. 아직도 나를 향한 할머니의 사랑이 피부로 느껴지고 그 사랑으로 인해 나의 잔여 인생은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 그렇게 할머니의 소원이 나의 믿음을 경유하며 나의 현재를 지탱한다. 헤어진다는 것은 헤아린다는 것이기에 완전한 이별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과거의 나에게도, 그리고 미래의 할머니에게도. 그렇게 늘 우리는 현재에서 만나기를 반복할 것이다.


설익은 어른  (2023.2.14에 작성한 글)   


    올해로 할머니의 4주년 기다. 그새 내 나이는 열정에 발목 잡히던 20대에서 현실의 발목을 잡고 다녀야 하는 30대로 접어들었다. 내가 체감하는 서른이라는 나이는 ‘설익은 어른’과도 같이 미숙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故 김광석 님의 ‘서른 즈음에’ 노래 속 또래 청년은 무르익은 만남과 이별을 능숙하게 읊어낸다. 물론 시대의 변화에 따라 현실의 감도도 변하는 법이라지만 드문드문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내 안에서 움튼다.


    할머니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나는 쉽게 부끄러워진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막연한 마음으로 귀국을 했을 때, 한국에서 유일한 거처인 할머니 댁으로 임시적으로 거주할 수밖에 없었을 때, 아르바이트 때문에 늦어진 나의 귀가를 기다리셨을 때, 예전처럼 요리를 하실 수 없어 근처 반찬가게를 들러 내가 먹을 반찬들을 사 오셨을 때, 극구 사양해도 당신이 사용하시던 비단 이불을 나에게 넘겨주실 때, 돌아누우신 할머니의 등을 바라보며 일정하고 고요한 숨소리를 듣던 때를 떠올리면 나는 쉽게 먹먹해지고 쉽게 벅차오른다.


    할머니께서 갑작스레 병원으로 입원하시기 며칠 전, 전화기 옆에 사포시 놓여있던 메모 한 장에는 ‘미추라기 머글 것’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메추라기 (알) 먹을 것’을 소리 나는 대로 적은 특별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내가 집에서 밥을 먹지 않게 되는 날이 잦아지자 그에 대한 할머니의 염려와 아쉬움이 적잖이 묻어있는 메모였다. 그 순간에는 알지 못했지만 해가 거듭할수록 그 사소한 말 안에 함축된 더 깊은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다 헤아릴 수 없는 할머니의 마음이 나의 구석구석을 훑고 기어코 숨어버린다. 나는 그 숨어버린 마음을 찾는 만큼의 진력만큼 헤아릴 것이다. 부디 트라이애슬론을 목표로 한다.


    할머니의 첫 기일이 되던 해, 할머니와 함께 학교로 보이는 건물의 계단을 오르는 꿈을 꾸었었다. 한 계단, 한 계단 나란하게 걷다가 점점 나를 앞질러 가시던 할머니, 이내 한 층의 거리 차이를 둘 정도의 거리가 되었다. 옥상에 다다를 때 할머니는 아래에 있던 나를 향해 돌아서서 방긋 웃어주시곤 옥상 문을 여는 동시 당신 몸의 크기만큼의 빛을 발하며 퇴장하셨다.


    이 꿈은 나의 현재를 다시 보게 하는 원동력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엿한 본보기가 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전에 부끄러움을 잃지 않는 일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 ‘설익은 어른’의 시기를 지나며 나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필수적인 일인지를 깨닫는다. 타인의 헤아림에서 나 역시 조금은 더 안전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나에게 ‘부끄러움’이란 헤아림을 알게 해 준 일종의 계기와도 같다. 내가 더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사실만큼은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난 설익은 어른으로 기어코 다짐하는 중이다.


    "마음의 역사는 나열되거나 밝혀지지 않은 곳에서도 현재의 생을 어루만지며 지켜낸다. 그것은 즉, 메모에 적힌 ‘미추라기 머글 것’이라는 역사적 기록과 함께 메모에 적혀있지 않은 할머니 일생의 마음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from 시집 [매일의 유언]의 발문 中, 김인선, 2020

[메추라기 먹을 것, <Quail>, 김인선, 2023]

- 2023 CISFF 충주단편영화제 기획상

- 2023 CSIFF 충무로단편영화제 특별상 (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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