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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곤 Jul 19. 2023

이 시대의 유행과 자아와 소속감과 존재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요즘은 자기만의 것을 가지기 참 힘든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한국에서는 더요(비난하는 건 아니고요) 그렇잖아도 세상엔 미디어가 넘쳐나고 음식이 넘쳐나고 하여튼 온갖 선택지가 넘쳐나는데 우리는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걸 교육받고 살아가느라 바빠서 선택지를 자세히 보고 고를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들 엽떡이랑 크림이 두껍게 발린 도넛을 먹고 비오의 카운팅 스타를 들어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사람은 누구나 튀는 자아를 가진 힙스터가 되기를 바랍니다. 힙스터가 되려면요 일단 멜론 탑 100은 들어서도 안되고요 팝송이나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아이돌스럽지 않은 노래를 부르는 가수를 찾아서 카카오톡 프로필 뮤직으로 정해야 합니다(그리고 그 모든 음악은 당연히 카카오가 소유한 멜론에 있습니다) 옷은 무신사를 피하면 좋지만 굳이 사용한다면 인기순 검색결과 3페이지 다음부터 골라야 하고요 인스타그램으로 모든 소식과 규칙을 정하는 식당을 찾아내서 가야 합니다 이런 게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정말 남들은 잘 안 듣는 노래가 좋게 들리는 사람도 있고 인기 많은 옷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제가 슬퍼하는 부분은 모방으로만 세상이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세상 모든 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는 걸 알아요 모방은 생존과 창작에 있어서 필수적인 개념입니다 다만 남이 썼던 문장을 씹지도 않고 그대로 뱉어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우울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요(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이기에 더 입안이 써지는 것도 있겠지요 )


 자아가 약한 사람들을 아시나요 아까도 말했지만 선택할 시간도 없이 살아온 사람들은 소속감이 부족하고 정체성이 결핍되어서 시간이 남게 되는 순간 손에 쥘 그것들을 찾으려고 주위를 살핍니다 하지만 그 방법만큼은 배운 적이 없고 해 본 적이 없기에 타인에게 의지하는 걸 택합니다 남들 눈에 비친 스스로를 보는 거예요 그러다가 모자란 부분을 발견하면 치장을 덧바릅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이만큼이나 대단하고 이만큼이나 특별한 남들과는 다른… 이렇게 타인이 나를 설명해 주는 매개체가 되면서 엠비티아이가 유행하고 마이웨이 말티즈 부끄럼쟁이 블루베리 같은 타입 테스트가 스테디가 된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나를 설명하는 어휘조차 남의 입을 빌려야 해요 나도 몰랐던 내 성격-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즐겁지만 때로는 혼자 조용히 충전할 시간이 필요해요-을 발견함과 동시에 블루베리인 나와는 상극인 딸기에 대한 혐오도 표출해야 하고요 어쩌다 같은 타입인 사람을 만나면 즐겁게 공감대 형성도 해야 하고 줄어든 희소성에 아쉬워도 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정체성이 조금 채워지면 그다음은 소속감을 채울 때가 옵니다 사람이 소속됨을 느끼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나랑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반대쪽에 있는 집단에게 분노를 쏟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찾은 방법은 민트초코를 좋아하냐 싫어하냐입니다 사실 모두가 알아요 싫으면 안 먹으면 되고 좋으면 먹으면 된다는 걸요 하지만 민트초코의 맛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하다며 화내는 그 순간에 반민초단에게 박해받지만 사실 강한 세력을 보유 중인 민초단이 되는 걸 즐기는 거겠죠 그 마음 어딘가엔 사회 시스템에 의한 소수자와 피해자가 되고 싶은 생각도 있을 거예요 민트초코를 먹는다고 모르는 사람에게 칼을 맞는 세상도 아닌데 말이에요(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이게 민트초코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닙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소수자 피해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성질을 가지게 되면 마음껏 불평할 수 있고 어느 정도의 무례와 잘못은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진짜 소수자는 가벼운 불만을 표출하기도 어려운 세상이긴 합니다만 빼앗긴 가난이라는 말처럼 다수자들에게 빼앗긴 소수자성은 그런 방패막이 되기도 합니다 장애인들의 이동권 시위가 민폐 취급받은 며칠 후 인터넷 어딘가에선 애정의 대상을 밝힌 오타쿠의 부끄러움에 사회적 자살이라는 이름이 붙어 돌아다니는 것처럼요 이런 진짜 약자와 가짜 약자를 구분하려면 자신의 처지 개선을 촉구하는 이들이 문장 안에 듣는 이를 웃기겠다는 마음을 숨기고 있는가 아닌가를 보면 됩니다(그리고 대체로 재미도 없습니다) 하지만 너는 가짜 소수자다 라고 말하는 순간 분노를 사게 되니 조심하세요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는 스스로의 존재도 의심하게 됩니다 내가 듣는 노래는 어느 멋진 사람이 좋다고 했던 노래일 수도 있고 내가 보는 영화는 자칭 매니아들만 즐긴다는 영화일 수도 있고 내가 컴퓨터로 만드는 것은 언젠가 보고 지나친 무언가의 짝퉁일 수도 있으니까요 살면서 소속감을 느낀 적도 별로 없고 느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결핍을 감추기 위한 허풍이 몸에 배여 버린 거라면 어떡하나 내가 싫어하는 것들 슬프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다 내 반사된 모습이면 어떡하나 자아조차 남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세상에서 나는 얼마만큼 나인가… 사실 이런 생각들을 떨쳐내려면 나 스스로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인정하면 됩니다 너는 특별해 이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야 같은 말보다 네 선택은 세상이 돌아가는 데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 더 용기를 주는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특별해지려는 욕망이 없는 사람보다 특별한 사람이 없는 요즘이네요



이것은 작년 초에 써둔 글입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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