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몰라서 그래
안녕하세요, 여러분. 갑작스럽지만… 혹시 ‘중꺾마’를 알고 계시나요? 중꺾마란: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뜻으로 모 프로게이머의 인터뷰에서 처음 등장했고, 그 선수의 팀이 역전승을 거두면서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카타르 월드컵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소개에도 인용되었고 어쩌고 저쩌고…. 간략히 말하자면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포기하지 말라는 멋진 시대정신이고 메세지입니다. 2022년 최고의 유행어라 할 수 있겠네요. 유행과 감성에 무딘 저도 월드컵 시즌만큼에는 확실히 그 기개에 감동받았으니까요….
작년과 올해, 많은 사람들이 중꺾마를 외치고 자기 자신 또는 서로의 성취를 응원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한계까지 굽어졌을지언정 꺾이지는 않는 마음들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보기만 했을 뿐인 저도 확실히 고무되었습니다. 가슴속에 그런 열정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돌아가고 발전하는 거겠죠. 그 열기가 식어갈 쯤 모 연예인이 던진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라는 재치 있는 변화구로 다시 한번 사람들이 일어선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
이미 꺾여버린 지 오래인 마음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창피한 이야기지만 제 마음은 타고난 탄성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너무 급하게 굽힌 탓인지 남들보다 조금 일찍 꺾여버렸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산산조각이 나버렸어요. 다시 세우려고도 해 봤지만 이미 쓸려가고 흩어진 조각들의 빈자리는 도통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느낀 건 마음이 있어야 할 공간에 아무것도 없는 채로는 평안히 살아가긴 힘들다는 것. 남들에겐 쉬운 것들이 제게는 어려워졌습니다. 제시간에 일어나기. 따뜻한 밥 먹기. 목욕하기. 나쁘지 않은 생각하기. 타인과 대화하게 등 모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걸까요? 버겁지 않나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고 있죠?
아아. 아.
정말이지 어려운 것들 모르겠는 것들 투성이에요.
마음이 꺾인 걸 인지하지 못한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결국은 꺾이기 전의 자신의 모습까지 잊어버리게 됩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든가 정말 행복할 때의 모습이라든가 하는 것들 말이에요. 저는 제 학창 시절 중 대부분을 잊어버렸습니다. 친구들과 모여 과거를 회상할 때면 아예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러나 친구들이 말하는 추억과 회상에 등장하는 저와 그걸 듣는 저는 영 다른 존재입니다. 등장인물인 저는 낯설고, 동떨어진 존재고, 이해되지 않고, 이상하고, 불쌍합니다. 또 별개의 인물로 현재에 존재하는 저 역시 낯설게 느껴집니다.
저는 저와 친하지 않아요. 어쩌면 서로 싫어할지도 모르죠. 어제의 저는 오늘의 제게 실망하고 오늘의 저는 내일의 절 포기합니다. 내일은 오늘을 한심해 할 수도 있고요. 슬픈 이야기네요.(딱히 눈물이 나진 않지만요) 그러니까, 이런 힘내는 것도 힘든 시간이 계속된 지도 몇 년째인 어느 날에. 저는 ‘중꺾마’라는 말을 알게 된 것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면서 왜 꺾이지 않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나요?
금방이라도 꺾여버릴 것만 같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꺾여버린 마음은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건가요?
등등
버릇없고, 어이없고, 어쩌면 뭇매까지도 맞을 말이지만은 저는 중꺾마라는 단어에서 세상과 사회에 갈려나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분명 멋진 말이지만 어째선지 등 뒤를 떠미는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이게 영 말이 되지 않는 꼬투리 잡기라는 걸 압니다. 이 말이 가진 힘이 누군가에겐 오르막길에서 등 뒤를 밀어주는 손 같기도 하겠죠. 하지만 눈앞이 전부 낭떠러지인 저 같은 사람에겐 그 힘이, 그 손길이 어떤 위협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약해서 이 험한 세상 어찌 살아갈래 싶으신가요? 아님 끝없는 징징댐에 한숨이 나오시나요? 죄송하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한국의 콘크리트 평지에서도 남극의 얼음 크레바스를 걱정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봐요. 애초에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이렇게’ 되지도 이 글을 쓰지도 않았겠지요.
아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중꺾마가 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