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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곤 May 12. 2024

어떤 방법으로 죽을지 생각하며 공원을 걸었다

자살에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늘 어떤 방법으로 죽을지 생각하며 공원을 걸었다 5월의 비가 오지 않는 일요일 오후의 공원에는 친구 연인 가족들이 가득했다 그들 각자에게도 인생과 고난과 사연이 있겠지만 한 손에 커피를 들고 공원을 걷는 그 순간만큼은 얼굴에 그늘 따위 존재한 적 없다는 듯 웃고 있었다 내 옆을 지나가며 사진을 찍던 어떤 여자는 남자친구에게 잔디밭에서 꽃을 찾아 반지 아니면 머리끈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나는 그때 목을 매달 수 있을 만큼 두꺼운 나뭇가지를 찾고 있었다


 몇 명의 어른들이 쪼그려 앉아 한 아기를 보고 있었다 나는 지금 입은 옷 그대로의 내가 저 사이에 끼어 같이 웃고 있는 상상을 했다 그 옆에 손을 잡고 걷는 연인을 보고는 얼굴과 이름 모를 사람 형체인 무언가의 손을 잡고 떠드는 날 상상했다 그 장면은 각기 다른 잡지에서 오려 붙인 사진들의 콜라주같이 이상했고 태어나 처음 가는 결혼식에 아버지의 쥐색 정장을 빌려 입은 대학생처럼 어색했다 가장 정상적인 삶이 내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삶이라 느껴졌다 그 넓은 공원의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만이 다른 층에 있었다 난 그들이 보이지만 그들도 내가 보이는지는 모르겠다 그들은 살아있고 난 죽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실제로 계속해서 죽는 상상을 하고 있기도 했다) 난 가진 것 중 가장 추레한 옷을 입고 느리게 걸었고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가볍게 걸었다 내가 뇌를 파먹으려 그들을 쫒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좀비 영화의 초입과 비슷했다


굳이 공원까지 걸어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 이유는 집에선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머릿속으로 그려봤기 때문이다 나는 냉장고 문을 열 때면 그것이 내 위로 쓰러지는 걸 떠올렸고 위층 사람이 하필이면 커다란 피아노를 정확히 내 침대 위에 놓았는데, 낡은 천장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내 위로 떨어지는 걸 매일 밤 상상했다 또 우리 집의 커튼봉들은 절대 밧줄과 내 무게를 견딜 수 없으리라고 판단했고 아파트가 아닌 관계로 떨어지기엔 애매하다고도 결론지었다 그래서 공원에 가게 되었는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가족과 자연 친화적으로 설계된 공간은 내 예상보다 안전하고 집보다도 죽을 수 있는 레퍼토리가 적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오고 가는 길에 있는 차도를 이용하는 게 간편해 보였다


어쩌다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생각보다 자살 시도의 성공률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다 죽지 못하고 후유증만 얻는 경우도 상당하다 했다 자살조차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비춰진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자살을 시도한다 해도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그걸 바라고 있기도 하다 내 인생의 남은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지게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인데 죽게 되면 주변 모두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게 된다 그건 원하지 않는다 못 할 짓이다 그러나 가끔은 나를 이용해 남을 상처 입히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 일환으로 내 몸을 실제로 다치게도 해 봤고 며칠 사라졌다 돌아오는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다 그래봤자 결국 무기력함에 져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지만 말이다


보통의 사람들과 내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은 내게 공포로 다가온다 잘나서 위로 솟은 게 아닌 적합하지 못해 옆으로 멀어짐에서 오는, 동떨어졌다는 감각은 인류의 시작부터 존재한 두려움일 것이다 노력한다 한들 섞일 수 없고 따라 해도 같아질 수 없다 누군가는 마음속에 석연찮은 구석이 있어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고들 하지만 애초에 석연찮은 것으로만 이뤄진 마음은 도통 즐거워지지가 않는다


나는 때때로 새하얀 벽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일까 소리가 재생되는 화면을 앞에 두고 있어도 귀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고 먹먹한 느낌이다 물이 목까지 차올라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물보다 조금 진득하고 무거운 물질에 목이 짓눌리는 것도 같다 밧줄 없이도 목이 조여들어감을 느낀다


이런 생각을 한참 하고 나서 거울을 보면 깜짝 놀랄 만큼 낯빛이 상해있다 우리 뇌가 먹방을 보는 것 만으로 포만감을 느끼듯 죽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가까워지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문장을 속으로 읖조리면서 세수를 하고 밥을 먹었다 스스로를 배신하고 살아가기 위한 행위를 이어간다 하지만 조금 있다 자려고 눕고 나서 또다시 죽음을 곱씹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땐 아마 두꺼운 유리 또는 금속이 나를 천천히 압박하는 상상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일어나서는 또 세수를 하고 밥을 먹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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