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도 잘 쓰네.. 참 쓸 만하네
최근 청룡영화제에서 가수 화사와 함께 한 퍼포먼스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배우 박정민.
사실 그는 오래전부터 글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그의 책을 직접 펼쳐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몇 개의 에피소드만 읽어도 금방 느껴진다. 이 친구, 글재주 있다!
소소한 일상을 다루지만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별것 아닌 상황에서도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능력이 제법이다. 꽤나 많이 웃으면서 읽었다.
뭐 하시는 분이세요?
배웁니다.
뭐 배우시는데요?
아니 배우라고요.
아.. 못 봤는데. 엑스트라?
그중에서도 [그린 라이트]는 진짜 진짜 웃겼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 연작은 무척 훌륭한 초단편 소설이었고,
쓸 만한 것들을 적어왔고, 앞으로도 쓸 만한 것들을 차곡차곡 모으겠다는 끝맺음 다짐은 그의 결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며 고마웠던 점이 하나 있다.
문득 ‘나도 이런 식으로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는 것.
오해는 금물이다.
그의 문장력을 따라갈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글감이란 결국 내가 보고 겪는 모든 것 속에 있다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쉽게 잊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는 의미다.
여행, 일터, 아르바이트, 처음 마주한 죽음, 스쳐 지나간 감정까지.
All of that is writing material. 물론 ‘잘 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지만.
책 곳곳에는 그가 배우라는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버티고 있는지가 담담하게 드러난다.
특히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겠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라는 다짐은 본인도 진부하다고 말하지만, 그 진부함이 오히려 멋있게 다가온다. 진심은 진부함마저 설득력으로 바꾼다.
강박증으로 인해 신경정신과를 찾고 눈물을 흘렸다는 고백도 그렇다. 그의 솔직함과 진정성은 독자의 마음을 붙잡아 두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여러 글에서 “힘내라”, “잘하고 있다”, “행복해라”, “당신은 중요한 사람이다” 같은 작은 응원을 건네는 장면들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
놀라운 건 이 글들이 10년도 훨씬 이전, 그가 스물다섯 무렵에 남긴 기록들이라는 점이다.
수첩에 뒤죽박죽 적어둔 엉뚱하고 아무말 대잔치 같은 문장마저도 이상하게 살아 있고 따뜻하다.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 감사한다고 말하는 태도는 순수하면서 단단하다.
어린 나이임에도 제법 자신만의 관찰과 통찰이 배어 있다.
마음에 남은 문장 하나 소개한다.
목이 마를 때 물을 생각하듯이,
자연스럽게 다가올 그때를 기다려.
충실히, 성실히, 절실히, 길게.
- 노력의 천재 중에서 -
나이를 먹을수록 이 말이 주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절실히 깨닫고 있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원하는 것을 시간이 없어서 이루지 못했다고 말하는 이는 없다.
조급해 하지 말자. 천천히, 꾸준히, 성실하게 쌓아 올린 것들의 힘은 그 무엇보다 강하고 단단하다.
기분 좋은 에세이다. 오래된 기록이지만 오래 남는 온기가 있다.
소소한 일상에도 진심이 깃들면 글은 이렇게까지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다시 깨닫게 된다.
배우 박정민의 호감도가 상승한 것은 당연지사.
참 쓸 만한 배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