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을 사랑하라
모든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핵심은 ‘이웃’의 정의와, 그 이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작품 해설이 지적하듯 우리는 이제 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 안에 사는 차원을 넘어서서, 그 논리를 내면화해 우리 자신이 ‘신자유주의 그 자체’가 되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만으로 사람을 등급 매기고, 지역을 ‘상급지, 하급지’로 호명하는 데도 아무런 저항이 없지 않은가.
거주지가 곧 신분의 경계가 되는 사회에서 우리가 한 사람을 판단하는 데 어떤 잣대를 들이미는지는 일일이 설명하는 것조차 부끄럽다.
[홈 파티]의 무명 연극배우 이연은 부유한 이들이 마련한 초대받은 자리에서 낯선 취향과 암묵의 규칙을 마주하며 계급적 위화감을 정면으로 체감한다.
그는 자립청소년의 사례를 들며 “타인의 자리에서 생각해 보기”의 윤리를 강조하지만, 그것은 사실은 미세한 저항에 가깝다.
그녀가 비싼 찻잔을 깨뜨리는 실수를 하는 순간, 이연은 자신의 처참한 위치를 다시, 더 날 것으로 마주한다.
이 작품뿐 아니라 [숲속 작은 집], [좋은 이웃], [이물감]은 모두 타인과 나 사이의 보이지 않는 선, 그 경계를 건드리고 넘나드는 순간들을 촘촘히 포착한다.
‘끼리끼리’ 모여 살아도 예전처럼 쉽게 이웃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더 세밀한 등급표를 만들고 더 높은 벽을 쌓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다행히(?) [안녕이라 그랬어]와 [빗방울처럼]은 희망적이다.
‘안녕’이라는 인사가 만남과 이별, 그리고 평안을 동시에 품은 말임을 새삼 상기시키며, 인사 한마디가 관계를 제대로 열고 닫게 하는 용기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빗방울처럼] 역시 죽음을 결심한 이가 타인의 한 문장에 붙들려 다시 살아낼 힘을 얻는 순간을 그린다.
물론 이 작품들에서도 ‘상급지, 하급지’ 같은 부동산의 거친 어휘는 여전히 인물을 분류하는 눈금으로 작동하지만..
“주인공은 공간”이라는 누군가의 서평처럼,
소설에서 집, 가게, 휴양지, 파티 장소는 배경을 넘어 이웃과 우리 사이의 정체성과 계급을 투영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렇게 이 책은 우리 시대의 이웃이자 곧 우리 자신의 초상을 다층적이고도 흥미롭게 드러낸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단순한 성경 말씀이지만 우리는 이 명제가 얼마나 실현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가.
이 소설은 이웃사랑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러나 그만큼 왜 필요한지 일깨워 주고 있다.
책의 표지에서는 김애란 작가를 사회학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왜 그런 평가를 내리는지 알 것 같다.
각 에피소드들이 무척이나 흥미롭고 재미있다.
아울러 수수께끼 풀이 같은 해석을 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읽고 난 뒤, 그녀의 다른 책들을 더 찾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뒤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