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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서 서평

혼모노,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모럴 없는 그녀

by 채PD

읽는 데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숨겨진 함의를 곱씹고 정리하는 데는 훨씬 긴 시간이 필요했다.

단순히 재미로 끝나는 글이 아니라, 오래도록 의미를 반추하게 만드는 글을 읽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길티 클럽 : 호랑이 만지기

첫 번째 에피소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나는 ‘모럴’이라는 단어가 인상 깊었다.

1.“모럴이 없다"라는 말의 맥락

전 남친이 그녀에게 던진 이 말은, 곧 “네겐 스스로의 판단 기준이나 신념이 없다”는 비난이다.

실제로 그녀는 자기만의 가치관 없이 타인의 기준에 휩쓸려 사는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감독 김곤과의 GV에서 그녀가 직접적인 목소리 대신 여기저기서 주워온 비평 용어들을 늘어놓으며 있어 보이려 애쓰는 장면은, 그런 ‘모럴 없음’의 정점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녀가 김곤을 열렬히 추종한 이유도 전 남친에게 지적받은 ‘모럴 없음’에 대한 무의식적 반발일지도 모른다.

2. 모럴없는? 독자의 시선

흥미로운 점은 독자가 그녀의 남친보다 오히려 그녀에게 감정이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에겐 특별한 취향이나 가치관이 없지만, 바로 그 ‘공허함’ 때문에 독자는 더 쉽게 동화되고, 남친의 독설을 과잉이라고 느낀다.

팬덤 속에서 ‘모럴이 있는 척’하는 그녀의 모습조차 묘한 연민과 지지를 불러일으킨다.

3. 무너지는 모럴

그러나 김곤 감독이 머리를 숙이고 과거를 사과하는 순간, 그녀의 가짜 모럴은 완전히 붕괴한다.

그녀가 애써 쌓아 올린 ‘척’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팬덤과 감독, 질문의 권위까지 한순간에 공허로 바뀐다.

4. 마지막 장면의 상징

수년 뒤, 치앙마이에서 그녀가 이빨 빠진 호랑이를 쓰다듬는 장면은 강렬하다.

겉으론 위험해 보이지만 실은 무력한 존재, 즉 감독이나 팬덤, 혹은 권위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태도를 그대로 투영한다.

결국 그녀는 끝내 진짜 모럴을 갖추지 못한 채, 무의미한 체험에 매달리는 인물로 남는다.

5. 작품의 질문

이 작품에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스스로의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있는가?”

“아니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있는 척’만 하고 있는가?”

“모럴이 없다"라는 말은 유치한 비난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 소설의 핵심 메시지를 가장 직설적으로 담은 문장이다.

그것은 단순히 '관심 없음'이 아니라, 자기 목소리와 기준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이 작품은 독자에게 바로 그 질문을 되돌려 던지는 건 아닐까.

워낙 다양한 해석이 있어서, 독자들의 나름의 해석을 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었다.

나의 해석도 그저 원 오브 뎀으로 이해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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