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베트 Apr 02. 2020

쿼런틴과 사순절

[Quaranta Storie] 카니발 마친 인류, 금식과 절제를 배울까

14세기 유럽에 최초로 흑사병을 날라온 배는 이탈리아 항구도시 제네바의 상선이었다. 이 배는 실크로드 북단 크리미아 반도의 카파에서 중국 상품들을 이탈리아로 나르기로 되어 있었다. 


1347년 훈족이 카파를 포위했다. 흑사병은 이 때 이미 훈족 병사들 사이에 퍼져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인도와 아시아지역이 1346년 흑사병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이 제노바의 상선은 훈족에게 둘러 쌓인 이 항구도시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이 배가 시칠리아에 도착했을 때 선원들은 절반 이상 죽어 있었고, 살아 있던 선원들도 피부와 입에서 검은 진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를 시작으로 흑해 연안에서 이탈리아에 도착한 상선들이 속속 도착하면서 이 무서운 전염병이 유럽 전역에 퍼졌다. 


1348년 아드리아 해의 라구사는 최초로 선박격리법을 시행한다. 지금은 두브로브니크로 불리며, 왕좌의 게임 촬영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라구사는 오염된 지역에서 출항한 선박이 항구에 도착하면 격리된 작은 섬들에서 한 달을 보낸 후에야 본토에 입장할 수 있게 했다. 


이 법은 아드리아해 맞은 편 이탈리아에 트렌티노(trentino)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30일이라는 의미다. 이 숫자는 곧 40일로 연장된다. 이탈리아어로 40은 콰란티노(quarantino)이며, 이는 영어로 격리를 뜻하는 쿼런틴(quarantine)의 어원이 됐다. 


40이라는 숫자는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한 숫자다. 창세기의 대홍수 때는 40일 동안 비가 내렸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40년을 살다가 미디안에서 40년을 보낸 후 다시 이집트로 돌아갔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40년을 광야에서 보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40년 동안 만나를 먹고 살았으며, 모세는 시내 산에서 40일을 기도하고 십계명을 받았다. 이스라엘 민족은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했다. 


신약에서도 40은 중요하다. 예수는 40일을 광야에서 시험 받고, 부활 후에는 40일 동안 제자들을 이끈다. 이외에도40이라는 숫자는 특히 구약에 수없이 거듭해 등장한다. 


그러니 40이라는 숫자가 서구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것도 무리가 아니다. 30일보다는 40일이 신의 뜻에 합당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가령 서구에서는 태아가 수태되고 40일 후에 영혼이 생긴다고 믿기도 했다.  


히브리어 알파벳을 보면 40이란 숫자가 더욱 흥미롭다. 히브리어나 라틴어 알파벳에는 각각 주어진 숫자가 있다. 이것을 게마트리아라고 한다. 40이라는 게마트리아 값을 갖는 히브리어 알파벳은 멤(מ,ם)이다. 


멤은 물을 뜻한다. 예수는 말씀이고, 말씀은 생수이며, 물(말씀)로 세례 받아 거듭난다는 맥락을 생각해보면, 멤과 그 게마트리아 숫자 40이 고난 끝에 거듭난다는 의미를 갖게 된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기독교를 아는 사람들에겐 격리하는데 40이라는 숫자가 더 없이 잘 어울리게 느껴졌을 것이다. 


인간들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오늘 미국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뉴욕시 격리, 즉 쿼런틴 하는 것을 고려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격리를 두려워한다. 지금까지 인간사회는 교류와 교환에 최적화되도록 진화했다. 그런데, 이런 사회에서 한 도시가 격리된다는 것은 외부에서 물자가 공급되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100년 동안 사람들은 중세시대 웬만한 부자 나라 왕보다 몇 십 배 호사스럽게 살 수 있었다. 한겨울 식품점 진열대엔 열대과일과 푸른 채소가 즐비했다.  베링해의 랍스터, 북해의 연어, 텍사스의 암소고기가 평범한 가정의 식탁에 수시로 올랐다. 베트남에서 만든, 줄지도 색이 바래지도 않는 티셔츠는 만원 남짓 하는 가격에 색깔 별로 사서 입을 수 있었다. 


쿼런틴이라고 해서 그런 물자들의 공급이 완전히 끊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쿼런틴은 이제 과거 당연하게 여기던 그런 생산이나 공급, 유통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 그리고 그런 시스템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깨달을 소중한 기회다. 


우리가 생존에 필수적이지도 않은 값비싼 사치재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던 것은 모두 세계화의 덕분이었다. 글로벌 유통이 잠시 중단되고 국가별로 격리되는 순간, 우리가 누리던 사치는 더 이상 의미 없게 됐다. 


향수를 제조하던 루이뷔통은 손세정제를 만든다. 한 두 번 입고 버리는 패스트패션을 정착시킨 의류회사들은 마스크를 만든다. 생산하는 품목만 다를 뿐, 모든 공장들이 전시체제로 들어가 군수품만 만들던 세계대전 때와 다를 바가 없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이다. 예수가 부활하기 전까지 40일 동안 금식하고 기도하는 기간이다. 사순절 직전 사람들은 카니발을 즐기며 양껏 먹고 마신다. 장차 지낼 사순절 동안 금욕과 금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인류는 양껏 카니발을 즐겼다. 지구온난화나 공해 같은 문제는 바로 그 카니발의 후유증이다. 지금 이 쿼런틴 혹은 사순절 기간이 장차 인류가 지속가능하게 살아갈 길을 모색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조금 늦게 세계화에 뛰어들었지만 여느 기존 강대국보다 더 크게 세계경제를 뒤흔든 중국 덕분에 우리는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됐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카니발과 달리 쿼런틴은 혼자, 기껏해야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다. 현대인들은 언제나 집단의 일원으로 살아오면서 자본으로부터,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됐다고 불평했다. 이제 그 어느 때부터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진 지금이야말로 혼자서 온전한 전체로 작용해볼 절호의 기회다. 우리 인류가 이 개인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향후 세상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화장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