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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아한 숲길 Mar 09. 2024

어머니와 순대 국밥

우울한 날엔 순대국밥 한 그릇 어때요?

     여기저기 꽃망울이 피어나 마음 설레게 하고 햇살이 한결 포근하여 포옥 안기고 싶은 3월, 그럼에도 애매한 계절이다. 막상 나가면 콧물 날 만큼 찬 바람이 날카롭게 거리를 휘젓고 다닐 때가 많으니 말이다.

어제도 그랬다. 날씨가 어찌나 추운지 스카프와 마스크를 안 하고 나간 걸 후회했다. 그래도 어머니와 단 둘이 시장 구경 가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나가기 귀찮다는 친정어머니를 살살 꼬드겼다. 딸이랑 시장 구경 가면 기분이 한결 나아질 거라고, 어서 가자고. 마지못해 따라나선 어머니를 모시고 시장 여기저기를 누비며 다녔다. 특별히 뭔가를 사지 않아도 구경만으로 재미있는 곳이 시장이다. 춥지만 견딜만한 추위라서 어머니 손 꼭 잡고 상인들이 펼쳐놓은 자판을 두루 구경하다가 과일이랑 누룽지 그리고 반찬을 샀다.


  "나는 사는 게 재미없다. 어느 날 자다가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냥 고요하게 떠나고 싶어. 괜히 자식들 얼굴에 먹칠은 안 하고 싶어."

마음의 감기라는 우울증이 다시 엄마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예전에는 마음을 강하게 해야 한다는 둥 엄마 정도면 행복한 거라는 둥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았지만 이제는 조용히 듣는다.

<당신이 옳다 / 저자 정혜신>라는 책을 읽은 후부터 그러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듣고 나서 한마디는 한다.

"난 우리 엄마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는데..."


  "딸이랑 시장 오니 좋네."  

  "그 봐요. 나오길 잘했죠?"

어머니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것 같아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다니다 보니 점심때가 되어 어머니 단골 순대국밥집으로 향했다. 낡은 간판과 건물에 낡은 식탁과 의자, 모든 것이 옛것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이미 손님으로 가득하다. 시장 맛집인 모양이다. 섞어 국밥과 순대만 국밥을 하나씩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꽁꽁 얼어붙은 몸을 녹였다. 난로 앞에 가지 않아도 식당 내부가 따뜻해서 몸이 나른해진다.


  순대 국밥이 나왔다. 서민적이고 따끈한 음식, 모든 물가가 올라서 가격은 서민적이지 않지만 그나마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사장님이 단골이라고 더 푸짐하게 챙겨주신 모양이다. 양이 상당했다. 순대국밥을 맛있게 드시는 어머니 모습을 보니 정말 모시고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어머니가 우리 사 남매 밥 먹는 걸 보면서 니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그게 바로 사랑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마음. 더군다나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어머니와 시장 데이트를  자주 추진해야겠다. 이렇게 어머니와 함께 할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남은 기간 동안 우울함보단 행복으로 채워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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